국내 여행 ·산책 609

하남 당정뜰 걷기

주말 아침. 오늘은 응봉산에 올라 개나리를 보고 한강 조망을 하려 했다. 미세먼지로 하늘이 맑지 않은 날 강변 북로에서 멀리 보이는 개나리에 푸른빛이 돈다. 조금 덜 폈으면 어떤가. 응봉 공영주차장을 믿고 갔으나 주차장은 만석으로 차단기 앞에 차가 두 대 대기 중이다. 한 5분 정도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하늘이 맑은 날 다시 지하철로 오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냥 집으로 가기엔 뭣해 하남 "당정뜰"을 걷기로 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던 유니온 타워 주차장이 유료로 변했다 최초 2시간은 무료여서 우리에겐 마찬가지다. 30분에 600원이다. 당정 뜰 내려가는 길에 어느 모임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지 깃발 아래 걷고 있다. 깃발 아래 걷던 분들과 메타쉐콰이어길에서 조우. 산책길이 갑자기 어수선해진 것도 잠시..

정자역에서 서현역까지 걷다.

오늘은 안사람과 함께 정자역에서 서현역까지 탄천을 따라 걷기로 했다. 지난번에는 용인 구성역에서 분당 정자역까지 혼자 걸었다 이매역이나 야탑역까지 너무 멀고 두 정거장 거리가 적당했다. 5호선 ,8호선 ,수인 분당선 두 번을 갈아타고 정자역에서 내려 지난번 건너온 다리를 건넜다. 다리 전에 탄천으로 내려가는 길이 없다. 지난주에 비해 확연히 녹색빛이 보이나 아직 탄천 주변은 마른풀 뒤덮여있다. 오늘 한낮 온도는 22도 예상하여 옷을 가볍게 입었다. 정자역 방향 날씨가 좋은 주말이라 자전거 라이더들이 수시로 지나간다. 지금쯤 팔당 방면 자전거 전용 도로엔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달리고 있겠다. 나도 자전거를 닦고 기름칠하고 공기를 체크해야겠다. 자전거를 언제까지 탈것인가. 새 아파트 단지로 이사 가기까지..

진관사 찻집 연지원과 서관면옥

사진: 연지원의 쌍화차와 단팥죽 월요일 사위의 월차날이 안사람 휴가날이다 이런 날은 집안에 머물기보다 드라이브라도 나가야 한다. 내가 제안한 세 곳 중 안사람은 은평 한옥마을"진관사"를 택한다. 월요일은 차량 이동이 많아 먼 거리가 아님에도(38킬로) 차들이 밀려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진관사는 가을 단풍이 좋다. 그래서 가을에 오려던 곳인데 계절을 맞추어 다니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않다. 극락교를 넘어 진관사로 들어갔다. 차로 이동시 진관사입구 공영 주차장(1시간 1,200원)이나 진관사 무료 주차장(신도용)을 이용하면 된다 팬데믹 전에 북한산 둘레길 8코스를 걸으며 늦가을 들렸던 진관사다. 그사이 계곡을 뒤집어 개천을 만들어 놓았다. 오래전 파괴된 백담사 계곡을 마주했을 때 같은 처연한 느낌이다. 장마..

중미산 휴양림 산책

휴일인 3.1절날 팔당대교가 밀린다. 휴일이면 열리는 팔당댐 지름길을 택하고 닫혀 있으면 U 턴을 하자는 계획이었다. 멀리서 팔당댐 길로 좌회전하는 차량이 한대 보여 오늘은 운이 좋았다 싶었다. 팔당대교를 밀리면서 기어가며 건너는 수고를 덜은 셈이다. 오늘은 지난해 가을 우연히 지나며 보아둔 중미산 휴양림을 산책해 보기로 한 날이다. 사촌 여동생이 매제와 함께 휴양림을 다니다는 말도 귀에 남았었다. 산행 아닌 짧은 산책길이어서 이런 계절에 걷기에 적당한 곳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오셨냐는 묻는 입구 직원. 경로는 입장료 무료고 주차비는 3천 원, 천오백 원 자리가 있다고 천오백 원짜리(경차?)로 해준다고 한다. 어쨌든 작은 친절이 감사했다. 밖의 날씨와 온도와 달리 휴양림 내는 무척 추웠다. 혹시 하여 ..

의왕 백운 호수

사진: 백운 호수 공영 주차장에 서 올라오면 마주하는 산책길 초입. 물위 장식 교각이 너무 과한듯 싶다. 작년 늦가을 백운 호수를 걷으려다 근처 롯데 아웃릿 몰과 정원을 구경하는라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숙제 처럼 남았던 곳이다. 아직 공기는 차지만 걷기에 좋은 상쾌한 날씨다 . 안사람과 길을 나선 날 ,네비는 전과 다른 코스로 안내한다. 분당을 거쳐 금새 도착했다. 집에서 38키로. 원래 호수길을 걸으려면 안개긴 새벽길이 좋다 . 그래도 아침 일찍 나선편이라 데크길엔 사람이 없어 조용했다. 언제 이곳이 유원지가 되어 버렸나. 물이 많이 빠져 있어 모래톱이 들어 나있다. 아름다운 건물 . 옥상에 의자를보아 카페인 모양이다 다 이어진듯 보이던 데크길이 호수를 3분의 2정도 돌자끊어져 있고 현재 공사중이다. ..

강화 동검리 미니 채플

사진: 강화 동검도 미니채플 제주도 미니교회. 가평 아침 교요 수목원등에도 미니교회가 있다. 기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제일 작은 교회는 토론토 나이가라 폭포 부근에 있다. 실제 사용했던 교회란 전제하에. 강화도에 있다는 미니 채플 사진을 보는 순간, 당장 가보고 싶었다. 주소: 강화군 길상면 동검리 245 갯벌이 펼쳐진 바닷가여서 스치는 바람에 냉기가 스며있다. 미니 채플옆 갤러리는 월요일 휴무라고 닫혀있다. 미니 채플문을 밀어보자 닫혀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채플밑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하던 분이 인사를 한다. 주임 신부 조광호 신부님일 거라고 짐작한다 채플벽의 십자가가 유리창을 대신한다 오른쪽은 갤러리 건물. 미니 채플 내부 창밖과 바다 .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형상. 작은 채플이나 웅장한 성당만큼..

월요일의 강화 나들이

월요일 사위가 월차를 낸날은 안사람에게 휴일이다. 차가 밀리는주말 아닌 평일이어서 두곳을 목적지로 삼았다. 강화 동검도 미니 채플과 인천에 있는 처남 방문. 네비를 좇아 초지대교를 건넌다. 건너자마자 보이는 초지진이다 너무 오래전 방문 한 곳이라 기억이 없다 초지진에서 본 초지대교. 마침 간조 시간대여서 바닷물이 빠지고 있는 중이다 1871년 신미양요시 미국 대령의 기록. "조선군은 근대적인 무기를 한자루도 보유하지 못한 채 노후한 전근대적인 무기를 가지고 근대적인 화기로 미군에 대항하여 용감히 싸웠다.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위해 용맹스럽게 싸우다 모두 전사했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그렇게 강력하게 싸우다 죽은 국민을 다시는 볼수 없을 것이다" 빈약한 대포 ,활과 창과 칼로 대항했..

퇴촌 천진암

사진: 천진암 오르는 길-자동차 길 안사람이 잠시 드라이브하고 싶다던 날. 양평 대신 퇴촌 천진암을 택했다. 하남 스타필드, 팔당댐을 지나 퇴촌으로 들어가 천진암으로 향한다. 눈여겨둔 계곡옆 큰 카페 건물은 여전히 문이 닫혀있다. 온 김에 천진암까지 가기로 했다. 천진암엔 종종 주차장에서 돌아가곤 하다 오늘은 걷기로 했다. 십자가의 길이 너무 가파르게 보이는 날. 경사길을 피해 자동차 다니는 길을 택해 걸었다. 도중에 만난 작은 연못에 얼음이 얼어 있다. 천진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1700년대 약 300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던 천진암. 이곳에 2079년까지 세계 최대의 성단을 짓는다. 눈에 익지 않은 성모상의 왕관. 2018년 10월에 대관식이 있었다 하면 그동안 주차장까지 왔다가 올라오지 ..

두물머리와 스타벅스 더 북한 R.

사위가 연말부터 연초(1월 3일)까지 휴가다. 외손자 돌봄이로 가까이 있는 딸 집에 출근하는 안사람에겐 간혹 주어지는 반가운 휴가다. 이런 경우 외손자와 사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얼 먹는지 안사람은 신경을 끈다. 사위가 음식을 곧 잘하여 만들어 먹거나 배달음식으로 때우리라 짐작한다. 손자에게는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을 체득하는 과정이다. 오늘은 수원방향 /양평중 양평을 택한 아내와 오랜만에 두물머리를 가기로 했다. 10여 년 만의 방문이다. 첫 번째 공영주차장에 주차 후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얼어붙은 강물 위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완연 겨울이다. 강 건너가 3-4년 만에 한번 방문하는 세미원 신양수대교. 산책길 이름이 문화생태 탐방로 "물래길"이다 양수역까지 1.8키로 사람들이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대구 여행(6)-이상화와 서상돈 고택

이상화 생가터에서 이상화 고택까지 멀지않아 걷기로 했다. 걷는다는건 불편한 일이 아닌 좋은 일이다. 살아있다는것과 행복함이 같이 한다, 걷는 길에 보이는 "계산 성당" 보고는 싶었어도 일정에 넣지 않은 곳들이 수시로 보이는 걸 보면 운이 좋아서보다 대구 중심가에 몰려있어 그렇지 않나 싶다. 계산 성당 가까이 근대 문화 체험관과 이상화가 4년간 살았던 복원된 고택과 서상돈 고택이 있다. 서상돈 고택역시 복원된 형태다 이상화 시인 이상화 고택 옆으로 서상돈 고택이 있다. 서상돈(1850-1931) 조선 고종때 민족 운동가. 명문 문벌 집안으로 고조부가 천주교로 개종함에 따라 박해를 받아 이곳저곳 이사를하면 지냈다. 서상돈은 대구에 돌아와 등짐을 지며 노동을 하다 사업에 손을 대 보부상 800명을 거느린 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