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의 추억 10

하숙집의 추억(9)-그녀,나의 아내

갈월동 쌍굴다리를 지나 길을 건너 100여 미터 올라가면 제주 약국이 보인다. "제주 약국을 보고 우측으로 돌면 왼쪽에 '원소아과' 간판이 보이고 그 골목길을 조금 더 따라 올라가면 우리 집이 있다.." 마해송 선생님과 쌍벽을 이루던 우리나라 동화작가 강소천 선생님이 청파동 자택이 있던 동네를 묘사하며 그렇게 썼다. "원 소아과"는 작은 어머니께서 30여 년 넘게 청파동에서 병원을 여셨던 곳이라 우연히 읽은 글을 기억한다. 80년대 중반 암으로 돌아가신 뒤에도 빈 집에 간판이 쓸쓸히 매달려 있었다. 안채의 작은 아버님을 뵈려면 대문 안으로 손을 넣어 밖에서 보이지 않게 달려있는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하숙집에 가는 도중 종종 들려 숙부님과 얘기도 나누고 밥도 먹고 숙대 앞 길로 슬슬 걸어..

하숙집의 추억 2008.12.30

하숙집의 추억(3)-큰 딸

다른 기억나는 하숙생을 얘기하기 전에 하숙집 여주인의 아들,딸들을 좀더 자세히 얘기해해야겠다. 하숙집의 큰 딸은 당시 나보다 두살 정도 아래였다. 어머니를 닮아 피부가 곱고 코가 좀 작아 요즈음 같아서는 성형외과로 금방 달려갔을 것이다. 무역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 드물게 모자쓰기를 좋아했다. 특히 검정색 모자를 쓰고 검정 옷을 입고 나가면 길에서 금방 눈에 뜨일 정도로 그녀의 흰피부에 빨간 맆스틱은 남성들의 눈을 확 끌었다. 요즈음 말로 아주 튀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분위기가" 카트리느 드느브"를 연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당시 회사에 처음 입사하여 은행에 Nego(Negotiation) 서류를 가져가면 남자들이 맡는 업무를 여자가,그것도 화려한 여자가 맆스틱 짙게 바르고 오면 은행 차장이 쫓아 ..

하숙집의 추억 2008.12.18

하숙집의 추억(2)-하숙생들

20224 하숙생중에 구청에 다니던 분은 충남이 고향으로 사람이 한없이 좋았다. 담당 업무가 건축관계 업무로 주중에는 저녁을 함께 하숙집에서 먹는 기회가 별로 없는 분이었다. 오후만 되면 받지 않으려 해도 업자들이 억지로 쑤셔 넣어준 돈이 주머니에 그득해 더러운 세상, 동료들과 직장 상사들과 그 더러운 돈을 쓰는데 보낸다고 했다. 술을 마시는 시간이 그에게는 고해성사의 시간이요,죄를 씻는 의식인듯 했다. 그가 돈을 가지고 자기를 위해 쓰는 일이라곤 수시로 내의를 사는 일이었다. 빨래하기를 지독히 싫어 한다는 그는 한달에 한번씩 고향에 가는데 갈 때마다 트렁크에 세탁할 내의를 한가득 가져가곤 했다. 처음 내방 룸 메이트는 같은 "L "구룹 직장 입사 동기로 부산서 올라와 낯선 서울이라 나와 함께 기거를 시..

하숙집의 추억 2008.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