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의 추억

하숙집 아주머니(10)-후기.

Jay.B.Lee 2009. 2. 20. 10:01

며칠전 안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뜻밖에 효창동 하숙집아주머니로 샤워중이라 안사람이  받아놓은  번호로 전화를 드렸다.

전과 변함없으신 하숙집 아주머니의 목소리.

며칠전 팔순을 맞아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며 옛날 얘기를 하며 내얘기도 하여 생각이 나서 전화번호를 뒤져 전화했다는 것이다.

미국에 있던 둘째 딸이 한국으로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둘째 딸이 횡성에 500여평의 땅을 사놓고 앞에는 냇물이 흐르고 농사 짓는 밭도 있고하니 여름에  가족들이 놀러갈 때 같이 가자고 하셨다.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전화로 둘째 딸에게 전화를 했다. 

가장 오래동안 변하지 않는게  목소리여서 옛날 그대로다.

단지 목소리에  오랜 주부의 넉넉함이 베어 났다.

아주머니의  딸,사위,손자들의 자랑과 다시  둘째 딸 의 얘기로 대충 정리가 되었다.

유신 사무관으로 출발했던 첫째 사위는 분당에 살며 총영사를 마지막으로 은퇴,대학에 강의 나가며 보내고 있고 큰 손자는 미 UCLA를 나와 현재 한국의 몇개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했다.

 둘째 손자는 현재 효창동 하숙집 아래 관사에서 와서 살면서 영화 광고 일을 한다고 했다.

둘째 딸은 아이들을 미국에서 교육시키느라 12년간을 한국과 미국에 오가다 마지막 5년은 미국에  눌러 있다가   아이들을 먼저 한국에 보내고 큰 결심을 한뒤 3년전 완전히 정리하여 귀국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중,고교,대학을 모두 마친  딸은  가을  결혼할  예정이고  아들은  LG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결혼할 때부터   홀대 하던  남편(공군 대령 예편)덕에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남편이 자기가 없는 동안에도 하숙집 아주머니께 아들 노릇까지 다하여 지금은 사위가 고마운 줄안다는 것이다.

최근에야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자기를 보고 "네가 그렇게 착한 딸인줄 몰랐다"고 해서 항상 큰 딸에 가리워져 있던 섭섭함을 토로했다.

둘째 딸-마음이 너무 착했다.

오빠는 미국에 있다 들어와 중국에 가서 사업하다  사업을 접고  다시 한국에 들어와 다시 사업구상차  효창동 아주머니 댁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그도 이제 60줄로 여전히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이다

오빠의 큰 조카딸은 결혼 한지 오래 되었고 한국에 살고 있으며 아들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막내동생은  현재도 L.A에 있으며 아들은 버클리 대학에 다니고 있고 딸은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집에서 나오는 세받는 돈과 미국에서 매달 막내가 보내오는 돈으로 풍족하게 사신다고 하셨다.

다른 아들 딸들은 생활비를  한푼도 안내놓는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렷는데  둘째 딸의 얘기를 듣고 궁금증이 풀렸다.

효창동 하숙집을 막내에게 증여했고 대신 L.A의 막내가 생활비를 대기로 합의된 것이라 했다.

노인들에게 남은 것은 자식 자랑 뿐이고 실제 잘된 자식 을 보며 흐뭇한  마음으로  이젠 남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아저씨는 자기집 사정을 다 아니까 별 얘기를 다한다며 둘재 딸은 웃었다. 

하숙집 조카딸이 암 수술을 해서 아주머니께서 오랜동안 기도 하셨다는 소식에 둘재 딸로 부터 전화번호를 불러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른 사람이 얼마나 말랐었는지 안타까웠다고 했다.

방학중이라 서울에 와있는 남편 (모지방대 교수)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의 아내인 하숙집  조카 딸은 출타중이었다.

 암 수술 받은지 3년반 .

완전히 치료된 것 같은 데 아직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전에 전국 수학 경시대회에서 1,2등을 차지했던 아들 ,딸 소식이 궁금했다.

딸은 현재 서울대 건축 공학과를 나와 회사 근무하고 있고 아들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컴퓨터 를 복수 전공중 현재 군 복무중이라고 했다.

하숙집에 자주 놀러 오던 둘째 딸의 친했던 친구소식도 전해 들었다. 

얼굴이 양파같던 친구는  현재도 독신으로 살고 있고  립스틱만 발라도 얼굴이 화사했던 친구는  남편과 사별 하여 살고 있다고 좋은데 있으면 중매서라고 했다.

사별했다는 친구는 전에 KAL에  다니던 내친구에게 소개하였던 기억이 있다.

둘이서 동성 동본인 것을 왜 짐작도 못했었는지.

지금도 잡아다니면 줄줄이 딸려오는 고구마 줄기처럼 하숙집 아주머니와  그 가족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35년전3년간 있었던 하숙집의 인연으로 지금 까지 소식을 들을 수 있어 감사하다.

젊은 시절 5남매 를 키우느라 고생한 하숙집 아주머니 .

또 우리 하숙생들은 결혼해 나가면 전부 집을 사가지고 한다고 좋아했던 아주머니.

욕심많은  큰 딸,일벌리기 좋아 하던 큰 아들,친구들이 늘 주변에 꼬이던 착한 둘째딸,효도도 못하고 미국에서 죽은 둘째 아들,성실하고 쾌활해 유독히 아주머니의  사랑을 받던 막내아들.

막내아들은  자손들이 번성하고 다 잘된 것을 보면  어머니가 열심히 기도하신 공으로 돌린다고 한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해드렸으면 하숙집을 사람들이 "기도의 집"으로 부르며 드나들었겠는가.

내가 결혼후 몇년뒤 인사차 들렸을  때  하숙집 아주머니의 안방은 그렇게 변해 있었다.

3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인생유전'이란 채바퀴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참으로 끈질긴 인연을 서로 이어왔다.

정말 여름  가족들이   함께 강원도 횡성에 놀러갈 때 같이 가보고 싶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