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의 추억

하숙집의 추억(5)-가짜 대학생과 룸메이트 C

Jay.B.Lee 2008. 12. 26. 12:48

하숙집 아주머니의 둘째이자 장남은  장남이면서 장녀에 눌려 집안에서의 위치가 확고하지 못햇다.

아주머니가 제일  의탁해할 큰 아들을 영 못믿어워 하게한 본인의 잘못도 있다.

어느 날은 고물 폭스바겐을  사가지고  왔다가 얼마후엔 중고 외제 오토바이로 변하는 등 한가지 깊게 정착을 못하는 아들이어서다.

용모는 TV탈렌트 못지 않게 잘생겼고 얼굴엔 늘 웃음과 익살이 가득했다.

얼굴엔  탈렌트 "현석" 씨의 분위기를 몰고 다녔다.

늘 여자들이 많이 따르는 편이라 어느 날은 명동에 한 여자, 을지로 다방에 다른 여자를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왔다 갔다 데이트 하기도 힘들다고 투덜댄적도 있다.

그렇던 큰 아들도  결혼후 미국으로 가서 무얼 해보겠다고 몇년을 보내다 한국으로 다시돌아왔단 소식을 들었다.

 실제 그와 그의 아내와 예쁜 딸을 본것은 효창동 누님집에 들려 하숙집에 인사차 들렸을 때였다.

 

하숙집에는 직장인 하숙생들이었는데  75년초 처음으로  서울 법대 2학년 학생을 받았다.

용모가 준수한 청년으로 제주도 출신이다.

 용모가 서글서글한 그 학생은  나름대로 1학년을 즐겁게 지낸듯 수첩엔 여학생들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가득했다.

어느 날 하숙생들이 안방에 모여 담소중 그가 제안을 했다.

아는 여학생의 언니를 통해 한번 하숙집 아저씨들과 미팅을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심심하던차 모두 대환영을 했다.

단 한사람 내 룸메이트만 C만 빼고.

C는 애인이 없으면서 미팅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미팅이 아닌 여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짐작하게 되었다.

룸메이트 "꺽새'가 결혼하여 하숙집을 떠난후 꺽새의 소개로 하숙집에 온 C는 그와 같은 구룹회사인 "D"제과에 다니고 있었다.

C와 동거를 하게되면서  1층 별채의 제일 큰 방이 우리차지가 되었다.

외풍도 없고 우선 방이 크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C는 강원도 K시 출신으로 대학은 K 대학을 나왔다.

그가 오기전 까지 나는 하숙생중 제일 부지런하고 깨끗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갑작스런 C의 출현으로 나의 명성은  어느 일순간 퇴색하고 그가 하숙집 아주머니가 인정하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타 하숙생들도 그점에 대해 이의가 없었다.

모두들 모인 자리에서 여자보다 더 빨래를 야무지게 한다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칭찬을 했으니 한가지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다.

그가 일등이라면 나는 2등,그것도 95점과 80점 정도의 현격한 격차를 벌린 위치이고 보면 나자신도 그에 대해서는 한수 아래임을 인정해야 했다.

작은 키에 잘생긴 그의 얼굴은 넓은 이마처럼 늘 반짝 반짝 했다.

그의 날렵한 검은 구두는 늘 번쩍거렸고 흰셔츠는 주름을 넣어 꼭 맞추어 입었다.

구두는 "금강'이나 "에스콰이어"가 너무 평범해선지 명동에서 꼭 "싸롱구두"를 맞추어 신었다.

그의 책상에는 언제나 화장품이 여러개 일렬로 정돈되어 있었다.

지금이야 남성들이 피부 마사지도 다니고 성형수술도 하는 모두가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C는 저녁에 집에오면 가끔 얼굴 마사지 펙을 바르고 마른 뒤 고무풀 뜯어내듯  턱 밑에서 부터 뜯어내곤 해서 이를 보는 나에겐 여간 우스운 광경이 아니었다.

그를 통해 피부를 곱게 하기위해 여성들이 펙을 사용한다는 것을 배운 셈이었고 그 점에선 앞선 사람이었다.

누나가 있었던 나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어서  그가 여러 누님들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의  얼굴과 옷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여성적인 면이 많이 보이는 것말고는 탓할 수 없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가 별로 없고 술을 싫어 했는지 늘 일찍 퇴근했고 직장이 근거리인 관계로 아침은 나보다 30분씩  늦게 출근 했다.

꺽새가 함께 있을 당시와 다르게 그가  전에 내가 하던 역할로 바뀐것 빼고는  평안한 날들을 보냈다.

방은 일찍 퇴근해온 그가  항상 청소했고 이불은 늦게 오는 나를 위해 미리 펴놓아 주었다.

그와 내가 공통점이 있다면 꺽새처럼 그도 담배를 피지 않는다는 거다.

워낙 조용한 C라  룸 메이트로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서로 상대방을 존중해 주었고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침해 할 일도 없었다.

술도 좋아하질 않아 그와 술을 마신다거나 한 기억도 없고 단 한번 명동에 함께 놀러갔던 기억이 있다.

싸롱 구두를 맞추러가는 길에 함께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게이냐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건설 회사에 다니던 H가 법대생을 빼고 남자들 몇이서 모여있던 저녁 할 얘기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법과 출신인 그가 서울 법대생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중  무언가 어색한 부분이 있어 그가 없을 때 그의 독방을 뒤져 보았다는 것이다.

방에 놓여있는 법률관련 전공 서적과 커리큘럼등  여러가지로 미루어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검정 뿔테 안경을 쓴 H는 "뽈라르 "처럼 탐정 임무를 시작, 학교에 학적 조사를 했고 그의 본가 아버지 연락처까지 알아 놓았다.

신문에 가짜 대학생이 학교 도서관에서 절도를 하거나 ,여학생들을 속이거나 혹은 대학교 불합격하여 부모 보기 괴로워 합격하였다고 속인 기사는 가끔 신문을 통해알고 있었으나 주위에서 실제 이런일이 생길줄은 몰랐다.

일단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고 부모가 데려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대신 우리는 전혀 모르는 것으로 그의 체면을 지켜주자고 했다.

서울에 올라온 그의 아버지와 함께 짐을 꾸려 몸이 아파 휴학하기로 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날 ,우리는 모두 대문에 나와 배웅을 했다.

"몸 낫거든 놀러와"

'하숙할 때 또 이곳으로 오라구"

"아니,이사람아.미팅 주선을 안해주고 가면 어떻게해?"

한곁에서 물러나 이광경을 보고있는 아버지의 착잡한 얼굴.

우리는 언덕길을 내려가는 택시를 바라보며 잠시 연극 배우가 되었다.

우린 대문을 들어서며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 동안 부모를 속이고 하숙비,등록금 다 타쓰며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미팅 주선운운 하며 대학생들의 전화번호,주소도 대학생임을 믿게하는 거짓이었더라도  괜찮았다.

마음의 병을 앓았던 그는 정말 치유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이었다. 

인생에 있어 2,3년 늦은 것은 큰일은 아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려 재출발만 할수 있다면.

서울 법대가 아니면 어떤가.

지금은 그것도 하나의 추억으로 그가 정상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아들을 망칠번 했다

모든 일은 집착에서 온다

지나친 기대도 ,사랑도 집착일 뿐 그 집착에서 벗어 나기위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보내고 있을까.

 

 1986년, 회장님의 갑작스런 국제 금융교육의 강화지시로 구룹의 타사 직원 둘과 함께 뉴욕 Whiteplain 근처 Arrowood Citicorp 교육 연수원에서 한달간의 교육연수를 마쳤다.

 그들과 헤어져  귀국길에 나는 토론토 현지법인과  L.A현지 법인을 방문하였다.

L.A에는 하숙집 넷째,다섯째인 두아들이 와있다는것을미리 알고 막내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왔었다.

세월이 가면서 두고온 자식들이 그리웠는지 그들을 두고 떠났던 아버지가 초청을 했다고 들었다.

하숙시절 고교생으로 있다가 막 대학에 입학했던 막내는 호텔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리기만 했던 막내는아름다운 청년이 되어 있었고 미국 생활을 즐기는 듯 했다.

막내는 나의 룸 메이트였던 C를 만나보겠냐고 물었다.

아저씨가 온다는 얘기를 해놓았다는 것이다.

서울 효창동에서  하숙집 아주머니를 모시고 강원도 동해안에 자리잡은 K시의 본가에도 모시고 놀러갈 정도로 정이 많았던 C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L.A에서Liquor Store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아주머니로 부터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막내의 차를 타고 가며 그가 결혼했다는 얘기를 듣고 믿어지지 않았다.

여자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여겼는데 결혼을 했다니.

10년만에 만난 그는 별로 변한것이 없었다.

가게는  한달전에 팔고 쉬고 있다고 했다.

전보다 자신감있게 말하는 것은 세월을 통해 얻은 소산일 것이다

 결혼한지 얼마 안된다는 그의 아내와 인사를 나누었다.

키가 C보다 훨씬크고  마른 타잎으로 한눈에 보기에 조용한 여자였다.

그의 집 구경을 시켜주며 내 눈에 띈것은 그의 서재에 놓여있는 Dark Brown 색갈의 대형 책상이었다.

 마치 영화에서 보는 회장용 책상처럼 큰 것으로 카핏트 위에 단정히 놓여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이  갑자기 그가 무척 깨끗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연상시켰다.

룸메이트의 인연에서  또 L.A에서 만나게 되고 .

누가 세상은 넓고 할일도 많다 했던가 .

그 후 그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첫 대면 했던 그의 아내 얼굴에 잠시 스치던 어두운 표정이 생각났다.

 서로가 너무 늦은 결혼이었고 참 안어울리는 부부의 모습이었다.

C의 깔끔한 성격이 나이든 신부에게 너무 버거웠을까.

이혼하고 2년후인가 또 우울한 소식을 들었다.

C가 자살했다는 것이다.

왜 자살했는지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길, 짓누르는 괴로움의 정점에서 방아쇠를 당김으로 해방되고 싶었을 테니까.

생각해보면 하나의 인연으로  행복했던 순간들이 슬픔과 고통으로 이그러지고  우리의 삶이 그런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잔인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