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의 추억

하숙집의 추억(2)-하숙생들

Jay.B.Lee 2008. 12. 12. 07:52

 

20224

 

 

하숙생중에 구청에 다니던 분은 충남이 고향으로 사람이 한없이 좋았다.

담당 업무가 건축관계 업무로   주중에는 저녁을 함께 하숙집에서 먹는 기회가 별로 없는 분이었다.

오후만 되면  받지 않으려 해도 업자들이 억지로 쑤셔 넣어준  돈이 주머니에 그득해 더러운 세상, 동료들과 직장 상사들과 그 더러운 돈을 쓰는데 보낸다고 했다.

술을 마시는 시간이 그에게는 고해성사의 시간이요,죄를 씻는 의식인듯 했다.

그가 돈을 가지고 자기를 위해 쓰는 일이라곤 수시로 내의를 사는 일이었다.

빨래하기를 지독히 싫어 한다는 그는 한달에 한번씩 고향에 가는데 갈 때마다 트렁크에 세탁할 내의를 한가득 가져가곤 했다.

 

처음 내방 룸 메이트는 같은 "L "구룹 직장 입사 동기로  부산서 올라와 낯선 서울이라 나와 함께 기거를 시작했다.

젊은 시절 피곤했슴에도 불구하고 잠을 깨게 되는 것은 새벽마다 그의 이빨가는 소리였다.

꿈속에서 가끔 이를 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이를 갈았다.

새벽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빨을 가는 것도 잠시지 저렇게 원한에 사로 잡힌 사람처럼 빠드등,빠드등 갈아대면 이빨이 다 닳아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는 마치 철천지 원수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칼을 갈 듯, 온 힘을 다해 이빨을 갈았다.

빠싹 마른 타잎의 그 친구는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았을까?

세상에 대해 원망이 많았을까?

이 친구는 두달 정도 함께 있다가 직장인 안양 군포 회사 옆으로  내려 갔고 나도 몇달후 직장을 "H "그룹 H 자동차로 옮기는 바람에 그와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몇년뒤에 직장을 그만둔 후 안양에서 고기집을 내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번 다시 만 날 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아직도 이빨가는 힘이 남아 있는지?

 

그 때 다시 룸 메이트가 된 친구는 K로 대전 출신이다.

 키가 훤출나게 크고 아주 깔끔한 용모의 소유자였다.

그는 용산에 있는 "D"그룹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서소문에 직장이 있는 나에 비해 늘 나보다 출근 시간이 늦었다.

키가 큰 관계로 하숙집에서 부쳐준 그의 별명은 "꺽새"였다.

아마 하숙집 아주머니가 지은  듯 했다.

하숙생들을 빼고 아주머니나 하숙집 아들 딸들은 그가 없는 곳에서는 K를  "꺽새 혹은 꺽새 아저씨'로 불렀다.

별명아닌 애칭이 되었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특히 그와 나를 좋아 했는데 이유는 무척 깔끔한 사람들이란 것이다.

항시 깨끗한 와이셔츠,반짝이는 구두. 늘 빨래도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도 우리둘이 담배를 안피운다는 사실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있으면 아주머니는  번쩍 번쩍 만든 방이 몇년지나 시커멓게 변할까봐 걱정이었다.

이 꺽새는 한가지 비밀이 있다고 남에게 절대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약혼자가 약사로 있으며 약국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간혹 약국에 딸린 방에서 자고 올 수도  있으니까 하숙집에서나 밖에서 절대 비밀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후 그가 결혼하여 나가기까지 부탁한 일을 함구한채 나와 함께 1년 반을 지냈다.

아니  그가 없었던 날을 감안하면  8-9개월 정도였다.

그가 하숙집에 돌아오던 않던 나는 늘 그를 위해 이불을 펴놓았고 아침이면 가끔 빈 이불을 다시 개어 올리곤 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쓸고 닦는 방 청소는 내가 도맡아 했는데 한달의 반은 독방을 쓰게되는 보답이었다.

10여년전 우연히그 꺽새를 코엑스에서 만났는데 조금도 살이 붙지 않은 채 여전했다.

하숙집 둘째딸 결혼식에서 본후 30년 만이었다.

명함을 받았는데 처음 입사했던 같은 직장에서 경리 담당 중역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한번 만나자던 그에게 연락을 못한지가  10여년이 흐르고 말았다.

 

다른 하숙생 W씨는 서울대 수학과를 나온 분으로 ROTC "4期"인 분이었다.

마침 내 직장 상사였던 "R"과장과도 포병장교 동기였다.

서울대 출신 중에 종종 기인들을 많이 보아왔는데 그도 그중에 한사람이었다.

평상시 괴상한 논리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던 그는 무지하게 게으른 사람이었다.

직장 생활을 잘 하고 있을 것 같지 않아 늘 걱정이 되는 사람이었다.

당시 여름이 오기전 까지 시간이 나면 3-4일에 한번 ,늦으면일주일에 한번  파출소 앞 골목 왜정시대 철도청 사택옆에 있는 '효창 목욕탕"에  목욕을  가곤했다.

그분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느 날 목욕을 가서는 탕에 들어가 앉자마자  갑자기 목욕이 무지하게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때를 밀거나 비누칠도 않은 채 탕에서  그대로 일어나  물기만 닦고 왔다는 것이다.

 

 

한사람은 작은 "I제약회사"에 다니던 분이다.

그는  일층 안채 작은 독방을 둘이 사용하는 요금으로 들어 와 있었다.

그는 아주 명랑 쾌활한 사람으로 나이가 우리보다 조금 어렸다.

얘기하길 퍽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왠지 하숙집에서는 가끔 기가 죽었다.

나를 비롯 대기업에 다니던  하숙생들을 보면 작아지는 느낌이었을까

그 때 분위기가 그랬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밤  그가 여자를 데리고와 잔 것이었다.

일요일 아침  아무도 말을 않했지만 그는 자기를 쳐다보는 눈길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숙집에는 딱히 정하지 않았어도 불문율이 있었다.

하숙집에서 하숙생끼리는 물론  친구들을 불러와 놀음을 하면  안되고 여자를 데리고와서 함께 잔다는 것은 절대 금기였다.

며칠 후 그는 잠시 사귀던 여자였는데 여자가 헤어지자해도 떨어지지 않아 마침 버스 정류장에서 자기를 기다리던 그날  싸우다가 통금시간이 되어 집에 데려온 것 뿐이라고  변명을 늘어 놓았다.

누구하나 그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침에  하숙집을 나가던 그 여자를 모두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달 후 그는 그 여자에게서 성병을 옮았다고 고백하고 하숙을 옮겨 나가고 말았다.

 

하숙집의 식사는 큰 안방에서 아침 저녁 모두 함께 했는데 간혹 하숙집을 구하러 오는 하숙생을 저녁시간에 대하게 되었다.

그가 간후 하숙집 아주머니는 우리들의 의견을 꼭 묻곤했다.

"인상이 별로 좋지 않네요"

"그렇지, 나도 조금 그래서 망설였다니까"

그러면 이 한마디에그 하숙집을 구하러 온 사람은 무조건 탈락이었다.

방이 비어 있고를 떠나  아침 저녁 얼굴을 대하며 함께 밥을 먹고 늦은 저녁 잠잘 시간이 되어 하숙집 아주머니가 우리들과 아이들을 내 쫓을 때 까지 화기 애애하게 담소를 즐기던 우리에겐 무엇보다 "분위기"가  아주 중요했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창업 공신"들의 한마디는 거의 절대적으로 위력을 발휘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