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기행·산책 616

봉황각과 선운각

평일에 안사람과  우이동 "선운각"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꽃필 때를 맞추려다가 가지 못할 수가 있어서다차보다  지하철로 가기로 했다. 우이역까지 가는 경전철을 처음 타볼 수 있고  선운각까지 도보 1.5Km 편도  30분이다.왕복 1시간이면 충분히 걷기 운동이 될 듯싶다.차로 가면 선운각 부근에서 카페 손님에 한해 주차비 3천 원을 받는다.협소한 관계로 주말은 피하는 것이 좋다.차로 가면 한가지 계곡을 보며 걷는 즐거움은 놓치게 된다.우이역 2번 출구로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현충비가 있는 공원.국제 클라이밍 센터에서 등반 중인 사람들 구경도 하고.적정한 장소에 잘 만든 시설이었다.흥미로운 건물이 보여 들어가 보았다.붉은 건물은 1921년 종로 경운동 (수은 회관옆)에 건축한 건물로 1969년 이곳..

성북동 우리옛돌 박물관

토요일 친구 둘에게  성북동 문화 탐방차  안내하기로 한날. 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과거 고급 공무원을 지낸 친구와 둘이서 산책을 해야 했다.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02번을 타면 길상사를 지나 종점 "우리 옛돌 박물관"앞에 하차한다.오늘 예정 코스는 욕심을 부렸다.우리 옛돌 박물관 -길상사-성북동 누룽지 백숙(중식)-리홀 뮤직 갤러리-심우장-수연산방-최순우의 집.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 옛돌 박물관"을 가지 못했다. 잠시 문을 닫는다 하더니 대대적인 변화를 주었다.과거 석인을 진열하던 1층 을 일반  전시실로 고쳤고 3층 전시장 역시 대대적인 손을 봤다.2층 카페도 실내에서 복도 공간으로 나왔다.그라피티의 연금 술사라 부르는 작품을 전시 중이다.작가의 이름은 어린 시절 성장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진 : 강남 대학교 벽화.포도나무를 상징해 그렸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 15:5)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 15:7) 기흥 강남 대학교에 한 달에 두 번 성경공부를 하러 간다.그 대학 교목으로 은퇴한 목사 친구에게서 교회를 다니는 교교 친구들이 10여 명 모여  성경을 배운다.친구인 목사는 대기업에 다니다 토론토에서 신학대학을 나오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대부분 분당, 용인 사는 친구들이고 멀리 일산 혹은 양평에서 오는 친구들도 있다.성경 공부 외 교교 동창들의 친목을 위한 목적도 있다.한 친구는 색..

안양 서울대 관악 수목원

사진 :수목원  입구  부친님이 산책길로 추천해 주신 수목원.5월 8일까지 한시적으로 개방한다기에 미룰 수가 없었다.서울대 수목원 혹은 서울대 관악 수목원을 찾았다. 쉽게 가기위해 집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했다.안양에 이르자 호계동 지명이 나온다.천지계벽한 곳이어서 50년이 지나는 동안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곳이고 이름만 남았다.금성통신, 금성 전선,럭키 화학이 있던 곳(나중에 럭키 구룹은 LG와 GS로 분리된다-구씨와 허씨의 분리다)  서울 효창동에서 그곳으로 짧은 기간 동안  매일 출근을 했었다.세탁기가 보급되며 세제,"하이타이"를 만들던 러키 화학에서 흘러나온던 매캐한 공기에 주위 나무들은 모두 말라죽던 시절이다.하이타이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가 반짝거린다고 머리를 감던 무지한 사람들이 존재했던..

휴일날 삼청동 산책

사진:삼청동 황생가 국숫집 대기좌석. 3.1절. 날씨가 춥거니와 연휴로 교외로 빠지는 차량의 행렬이 밀리는 날이다 안사람이 시내 외출한 지 오래되어 교외 대신 삼청동을 걷기로 했다. 종로 3가에서 인사동으로 향했다. 안사람이 몇번 들려 수제 누비옷을 샀던 가게가 없어지고 다른 남성용 상품이 채워진 채 문이 닫혀있다. 공예 박물관을 지나 황생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안사람은 Blue Bottle이 아직도 있느냐 묻는다. 커피에 대한 관심보다 지난해 아들과 경복궁에서 약속해 만나 그곳에 왔던 기억을 해낸거다. 1시. 과거 주차장 자리에 마련한 대기석이 꽉 차있고 직원은 여기서 40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추운 날씨에 처마에 달아놓은 전기난로 열기로 대기실은 따스했다. 35분을 기다린 후 방바닥 좌석은 ..

뮤지엄 한미 삼청 -강운구 암각화 사진전

삼청동 "뮤지엄 한미 삼청 "을 찾았다. 뮤지엄 삼청 이라 붙인 이유는 방이동 한미약품 사옥에 한미 사진 미술관(사진 도서자료실로 이용)으로 시작하여 구별하기 위해서로 짐작한다. 고 한미 약품 회장의 부인 송영숙 여사가 관장이다. 2003년 "한국사진 미술관"이이 모태가 되어 "박물관 한미"로 발전 했다. 사진 전문 박물관이 서울에 있다는 건 자랑할만 일이다. "칠보사 "담벼락의 빛바래고 벗겨진 축대 색갈이 아름답던 날. 뮤지엄 주차는 2시간 까지 무료다 (그냥 무료같다) 보통 차를 가지고 오는 관람객이 적어 주차장은 올 때마다 여유롭다. 차없이 방문하여 뮤지엄을 방문하고 삼청동을 산책하길 권한다 교보빌딩에서 마을 버스 11번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관람객분이 타고온 신형 Porche 911 ,쿠페 컨버..

창덕궁과 후원 관람

사진: 창덕궁 매표소, 카페 뒤로 현대 계동 사옥이 보인다. 창덕궁에서 본 현대 계동 사옥 본관과 별관. 지금은 현대 어느 회사가 입주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단풍이 물든 가을에 사무실 창 아래로 보이는 창경궁 단풍은 장관이다. 궁내의 풍경을 내려다보려면 궁궐밖 3층 카페로 올라가면 된다. 난 하루의 일과를 미리 계획하여 그에 따르는 편임에도 안사람은 즉흥적이다. 점심 후 갑자기 고궁에 산책을 나가자는 것이다. 창경궁과 창덕궁 중 창덕궁을 걷기로 했다. 매표소 전광판에 마침 오후 3시 "후원(궁원,내원, 북원, 금원, 비원이라 부름 )' 투어 가 있다고 안사람은 당장 관람 하자는 제안이다 후원 입장료 5천 원(경로 할인 없음 ) 가을 방문이 최선이나 겨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1시간 10분의 한국..

덕수궁 돈독전에서 신세계 백화점까지

뒤늦게 신세계 백화점 야간영상 쇼를 봤으면 좋겠다는 안사람. 저녁 시간에 맞추려면 집에서 늦게 외출을 해야 했다 전에 덕수궁에 들려 안사람이 방문한 적 없는 "돈독전"을 보는 것이 적당했다. 중화전-창덕궁의 "인정전"을 본 따 지은 건물이다. 경운궁으로 불리던 덕수궁. 대한 제국 시절의 면적 3분의 1이하로 줄어들었다. 덕수궁 석조전에 열리고 있는 "장욱진"회고전 돈덕전이다. 산뜻한 색조로 인해 항상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설계도 없이 사진에 의거 건축하여 "복원"이라 하지 않고 "재건"이라 칭했다. 2018년 공사 시작하여 2023년 9월부터 개방했다. 원 건물 건축 연대:1902-1903년 고종 당시 국제 행사, 연회장, 국빈급 외국인 숙소 등으로 활용하고 순종 즉위 시에도 사용했다. 정확한 기록..

숙명여대 부근 맛집 "더함"

지하철 1 호선 숙명여대역에서 내려 500여 미터를 걸으면 마주하는 숙명여대 부근 맛집-더함에서 두 번째 식사다 점심특선 (22,000원) 한식에 맛과 멋을, 건강함을, 모던함을 "더함"이라는 상호가 반갑다. 호박죽은 뻑뻑하지도 달지도 않아 먹기에 편했다 샐러드 야채가 지난번 보다 조금 신선도가 떨어져 아쉬웠다. 애피타이저 국수. 소면이 아닌 가는 파스타에 오리엔탈 소스로 맛을 돋웠다. 먹고 난 뒤 입안이 개운하다 따끈한 접시에 나온 금방 구운 차돌 구이. 양파무침을 얹어 고춧가루에 살짝 찍어먹으면 고소하다. 구운 오리고기의 절제미. 따듯한 오리구이와 겨자소스와 부추가 조화를 이룬다 돼지고기 떡갈비. 양파 위의 떡갈비가 따끈할 때 식탁에서 그래비 소스 같은 양념을 부어준다. 달짝 지근하고 짭조름한 양념이..

송현 공원에서 청계천까지

서울 공예 미술 박물관. 전 풍문 여고자리로 풍문 여고교사를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이곳은 안국별궁(옛 황실 궁녀 숙소)이 있던 곳으로 친일파이며 가렴주구의 대명사며 악질적인 관료, 민병휘의 아들 민대식이 아버지가 여론의 질타를 받자 " 휘문의숙"을 설립한 것처럼 4,000여 평의 부지를 사들여 "경성 휘문소학교"를 설립한다 민대식(1982-1951)은 민병휘의 5번째첩 안유풍의 아들로 미국 오하이오주 웨슬리언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20년 한일 은행 취체역(이사),1932년 동일 은행(조흥 은행)을 설립했으며 1935년 민병휘 사망후 양자이며 장자였던 민형식과 유산 1200만 원을 두고 유산 소송을 벌여 승소했다. 그는 후에 어머니 안유풍의 풍자와 휘문의숙의 문자를 따서 "풍문 여학교"로 개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