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네팔여행기

네팔기행-카트만두(1)

Jay.B.Lee 2006. 12. 18. 19:08

 

 

 

  언젠가 꼭 티벳(Tibet)이나 네팔(Nepal)을 가고 싶었습니다.
문득 혼자 갈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더욱 그곳엘 가고 싶어진 것입니다.
인터넷을 뒤져 티벳과 네팔의 정보를 찾아봅니다.또 사진 작가 여동완씨의 "티벳 속으로(Into Tibet)"의 사진에서 보는 풍광이 나를 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일이 많지않은 8월말부터 9월초까지 13일간의 시간을 비웠습니다.
안사람은 후진국이 되어 불편할 것 같고 "뒤이"(우리집 개이름-영어로 이슬같은 "이슬이'의 의미로 딸이 지었으나 현재는장년의 나이로 13년째를 살고있어 그 이미지는 찾기 어렵다) 를 돌봐줘야하기때문 동행하지 아니한다 하였으나 몇개월 후 아파트 이웃 친구들과 수년간 모은 돈으로 뉴질랜드와 호주여행계획이 있어 특별히 생각해주는 척 한것이었습니다.
알아도 모른척 할 나이에 이르러 시비를 걸 주제가 못됩니다.
그저 일년에 해외여행을 두번간다는 것이 미안하고 과분한 생각이 들었나봅니다.
때론 남편말을 따라야하고, 때론 남편을 챙겨줘야하는 둘 만의 여행보다 친구들과 마음껏 수다떨며 여행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쇼핑도 자유럽게 하고.

 

티벳에 가려면 우선 중국비자를 받아야하기에 시간도 없고  네팔만 가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중국본토를 거쳐가는 방법, 홍콩을 거쳐가는 방법과 인도 뭄바이를 거쳐가는 방법이 있고, 인도를 짧게 여행후 네팔로 갈수도 있었으나 많은 도시 많은 나라를 돌아봐야 할 의무도 없고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에서 업무 출장차  다녔던 홍콩을 거쳐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조금 우려가 되는 것은 네팔이 아열대 나라로 9월초가 우기의 끝이어서 비를 많이 맞으면 여행이 조금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교동에있는 로열네팔 항공 서울 대리점을 찾아 인천 -홍콩은 아시아나 항공으로,  홍콩-카트만두는 로얄네팔항공으로 귀국루트는 카트만두-방콕-인천으로 날짜를 감안하여 그렇게 여정을 잡았습니다.
항공료는  비수기여서인지(네팔의 성수기는 10-2월로 섭시20도의 기온을 유지함)왕복 82만원으로 그렇게 비싼 느낌은 들지 아니하였습니다.
홀로 여행하거나 둘이 여행하다보면 단체여행보다 쌀 수도 있고 비쌀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내가 먹고 싶은 곳,내가 머물고 싶은 곳에 더 있을수 있고 어차피 떠나는 여행이 자유롭기 위해 가는 것인 만큼 정해진 숙소,음식,강제로 들려야하는 쇼핑센터,가이드에게 한일에 비해 간혹 많이 걷어줘야하는 팁같은  것들로 여행이 피곤해지는 단체여행을 생각하노라면 불편함과 추가비용은 모두 도전과 모험입니다.
언어문제가 있고 먹는 것에 불편함이 있다면 경비면에서도 절약이 되고,편한점도 많기 때문에 페키지 여행의 장점이 있습니다.
단지 하나 여행중 일행을 불편하게하는 커플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그저 그런 불운이 따르지 않기를  기원한다면 단체여행 또한 그렇게 즐거울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 건물에 부딪칠듯 바다에 빠질듯 기수를 낮추어  비행기가 홍콩 케이택 구공항에 착륙시마다 항시 가슴이  조마조마 하였었는데 구룡지구 첵랍콕(Chek Lap KoK) 신공항에 착륙,통과여객구역에서 몇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런 때를 대비하여 읽을 거리를 준비해오는 것이 좋습니다.
소설이나 특히 진도가 빨리 나아가지않는 포켓판 영문 소설도 좋습니다.
여행지에서 바꿔 볼수도 있고 다음 여행자들을 위해 내던져놓고 짐을 줄이는 방법도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카트만두(Kathmandu)행 로열 네팔 항공에 탑승하였습니다.
여행객들은 홍콩 중국계 관광객과 네팔 현지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여름방학도 끝난 8월말이라 대학생 배낭여행자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비행기는 낡아 중고 비행기를 구입,사용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그 옛날 우리나라 대한항공도 그랬듯이.
앞좌석을 감싼 벌어진 씨트 천 사이로 베니어판이 보입니다.
네팔 고유복장을 한 여승무원의 유니폼과 실밥들이 늘어진값싼 천에서 가난한나라에 대한 연민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그네들의 종교적 환경이겠지만 북미에서 보여주는 여승무원들의 쾌할함이나 일본,한국의 여승무원처럼 도식된 친절함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비행기가 착륙할때마다 조금 겁이 납니다.
무시히 착륙할수 있도록 파이럿들을 보호 인도하소서라고 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 낡고 낡은 비행기가 고장없이 무사히 착륙할 수있게 기도했습니다.
상해보험외에 별도의 여행자 보험에 가입해놓고 오긴했으나 보험금이 많을리없는 가난한 나라의비행기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미국적 항공기라고 해도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지구상의 가난한 나라중의 하나.(50여년전 극빈국중에서도 밑에서 세어 올라오는는 것이 빨랐던 우리나라를 연상합니다)
힌두교가 90프로 정도인 힌두 왕국의 나라.
1인당GDP가 200불이 못되는 나라.
몇년전 왕과 왕비일가가 총격으로 죽고 동생이 왕위에오른 나라.
한달전 전 내무장관이 테러리스트에의해 피살된 나라.
용맹했던 용병이 있던 나라.
히말라야(자연의왕국이란 뜻)가 있는 나라-그것이 피상적으로 떠오르는 네팔의 이미지였습니다.
드디어 카트만두 국제공항에 이르렀을때 녹색의 나무들과 붉은 벽돌집들이 아름다운 전원도시처럼 펼쳐집니다.
비행기 날개에 부딪칠듯 공항활주로 옆까지 즐비한 주택들을 보노라니  아직 안전의식까지 생각하며 살 겨를이 없는 나라인 듯 싶었습니다.
지방고속버스 정류장같은 국제공항에 도착, 보따리 장수들의 마대자루처럼 생긴 가방들속에서 내 여행가방을 챙겼습니다.
입국심사직원이 비자(Visa)하고 날 쳐다보았습니다.
미리 준비해간 Visa신청서와 30불(네팔 하급 공무원 한달 급여정도다)을 내미니 돈은 앞쪽에 내라고 .
한직원이 심사하고 한명이 Slip을 끊고 한명은 돈을 받고 한명은 조잡한 인쇄물로된 입국사증을 여권에 붙여줍니다.
일자리 창출은 그렇게 하는 것임을.

 

중학교 시절 감동을 준 김찬삼씨(후일 세종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여행기를 기억 할 것입니다.
 여행이 자유럽지 않던 시절 해외 여행기를 읽으며 참으로 많은 꿈을 간직했던  소년시절이 있엇습니다.
우리나라는 1973년만 해도 부부나이 합이 120세가 넘어야 해외여행이 가능 했습니다.-가지말란 얘기다.
  1987년 12월 한영 경제인 친선 협회에서 초청을 받아  힐튼 호텔에서 열린 X-Mas파티에서 행운상 추첨에서 안사람이1등상으로 Cathay Pacific 홍콩왕복 티켓2장을 받았으나 당시 규정으로는 부부가 갈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보물찾기조차 운이 없었던 나와는 달리 안사람은 뭘 추첨하면 잘 당첨되는 타잎이다.-그것도 같이 사는 이유중의 하나다.혹 누가 아는가 로또라도 될런지 ). 
1등상 추첨을 자기가 당첨된것처럼 같이 기뻐해주던  옆자리 영국친구들은 저기 앉아계신 정세영 회장님께 휴가요청하고 저쪽에 계신 외무장관(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용식장관)께 여권부탁하면 된다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농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새해 1월1일  법규정 변경으로 남자나이 만40세(배우자 나이는 무관)가 넘으면 해외여행이 가능해짐에따라 2월말 노태우대통령 취임일과 휴가와 3.1절휴일등을 이용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함께 해외자유여행(업무출장이 아닌 순수 관광여행)을 갔었고 홍콩을 거쳐 대만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안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여 행운의 항공권을 추첨해준 영화배우,내가 싫어하던  장미희씨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고 있습니다-영화"겨울여자"이래로 사실 그녀의 가식적 목소리는 늘 거부감을 주어왔었다.
 그해 6월 해외발령으로 캐나다로 떠났지만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외여행은 나이 제한없이 완전 자유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찬삼씨가 해외여행을 하며 지킨 기본 정신은 남의나라를 우리나라와 비교하려는 문화적 우월주의나 자기비하적인 사고를 갖지 않는 것이며 현지인이 먹는 대중적음식을 먹고 현지인들이 보통 머무는 곳에서 잠자리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배낭 여행 대가의 가르침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진 :카투만두 타밀의 릭샤

 

 

공항앞은 짧은 해로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늘어선 낡은 택시들은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택시를 탈만한 승객도 별로 없어보이고 느긋하게 "타멜"(한국의 이태원처럼 호텔과 쇼핑지역으로 외국인들이 많이묵는 곳) 150루피를 불러봅니다.
택시기사들은 입간판에 써있는 요금표를 가르킵니다.300루피(3달러 상당).
이녀석들아 지금은 정보화시대-그요금이 바가지 요금임을 잘알고 있는 터.
목에 관광안내원 자격ID사진을 목에건 안내원이 가자고 하더니 기사는10미터도 못가서 못가겠다하고.
다른 택시에 200루피에 흥정  타멜로 향했다.(귀국시엔 80루피에  잔돈처리겸  30루피를 팁으로 주었습니다)                  
70년대 도요다 택시로 계기판이 작동 되리란 기대는 않지만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니 청결이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관광안내원은 공항은 마호이스트(공산주의자-그네들은 보통 Mountain People이라고 부른다)들과의싸움으로 보안관리가  철저한 관계로 자기네같은 정식안내원만이 출입할수 있으며 산이나 레프팅 기타 여행을 원하면 연락주시고 또 호텔 주선까지 해 주겠다고 열심히 판매활동을 했습니다.
팜프렛의 호텔이 멋져보이고 비수기니만큼 가격도 매력적이나 처음 얻은  정보대로 유럽인들이 많이 묵는다는 타멜 게스트 하우스로 가기로 했습니다.
카트만두는 네팔의 수도이나 작으마한 도시로 옛날 서울처럼 김포공항에 서울 들어올 때 여기 저기로 빙빙돌아 외국인에게 바가지 씌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돌아갈곳도 없는 그런 작은도시였습니다.
어차피 환전을 하지못해 150루피를 줄 수도없어 2불(당시210루피상당)을 택시 기사에게 쥐어 주었습니다.
수염이 잘생긴  경비가 외국인임을 확인하고 호텔밖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생각보다  호텔방과 시설들은 깨끗했습니다.우기여서 바싹 마르지않는 눅눅한 침대 씨트를 몸의 체온으로 말리며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새벽 비둘기들의 구구대는 소리에 잠을 깨어 검정 탕약 색갈을 한 네팔커피와 계란후라이, 우유(꼭 물탄듯 멀건한맛이다),빵과 빵에 발라지지도 않는 붉은  색의 잼(딸기잼이라고하나 딸기향조차 없고 맛도 나지 않는다)으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커피는 색갈에 비해 맛과 향이 아주 좋았습니다.
우선 호텔옆의 여행사에 들려 영어가 유창하고  성실해보이는 여행사 사장과 여행일정을 상의,다음날 호수도시 포카라(Pokara)의 호텔과 치트완 국립공원 사파리 여행을 예약해 놓았습니다.
접대한다고 끓인 우유에 홍차를 탄 "찌아"를 다방커피처럼 배달해 주었는데 설탕을 많이 넣어 무더운 날씨 탓인지 홍차의향과 달콤한 맛이 어울려져 상당히 인상적인 차였습니다. 생전 처음 마셔보는 것이기도했고.


우선 네팔에 도착하자마 귀국 비행편을 확인(Reconfirm)해야하고 전화로 아니되며 반드시 항공사에들려 비행기티켓에 확인을을 받아야 한다는 서울 네팔 항공 대리점의 권유에 따라  네팔 항공사엘 가기로 했습니다.
로마엘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자의 지혜입니다.
점심시간까지 시간이 있어 릭샤(자전거로 된인력거)를 탔습니다.
마이후렌드 ,마이후렌드를 외쳐대는 넉살좋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릭샤 기사는 마누라가 둘이라고 자랑이 대단합니다.
 No problem을 자주사용한다는 인도인들이나 My friend 를 자주사용하는네팔인들은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네게서,없는자가 있는자 에게서 돈을 좀 뜯어내려하니 준비해주시고 섭섭하게 생각말란 의미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도인이 자주 사용한다는 No Problem은 모든게 문제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여행자도 있습니다.
어쨋든 자기같은 놈때문에 장가도 못가고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박애주의자는 아닌것 같았습니다.
현행법으로는 일부일처주의지만  실제로는 능력에 따라 다처주의가 가능해 보입니다.
방글라데시건설현장에서 있다온  친구 손병호동문에게서 배운 말 ,찌기찌기는 잘하느냐고 물었더니  이곳에서도 그말을 사용하는지  두 마누라 찌기찌기 자신있게 해주고 있고 마누라 둘다 행복해한다고.
네힘보다는 돈 잘버는 남편이기에 존경을 하겠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차와 릭샤와 오토바이와 사람들로 뒤범벅인 타멜거리를 한시간반이나 돌아다닌후 1불에 흥정을 했었으나 씩씩거리며힘들게 나를 잘모신다고 다닌 웃는 낯을생각하니 2불을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모질지 못하고 인정에 약해서.
 


12시반부터 저녁까지 10불에 호텔에서 대기중인  자가용을 기사달려 전세를 내었습니다.
이 자가용 기사 녀석도 마누라가 둘이고 자식이 둘이라고 가족얘길 하는데 이곳에선 확실히 마누라가 하나인 사람은 못난이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여행사에선 고급승용차(10년은 더된 것이다)하루 전세가 20불이랍니다.
  New Road에 위치한  로열 네팔항공사본사를 찾아가며 카트만두 거리를 달리는 동안 네팔에 와 있슴을 실감했습니다.
1시 15분전에 도착한 항공사 사무실에 점심시간중이어서 -우리나라 처럼 고객위주의 교대근무는 없었습니다-
기다려야 한다며 경비는 외국인이라고 나만 사무실에 들어가라고 하고 찾아온 네팔 자국인들은  밖에서 기다리라고했습니다.
선진국들은 자국민을 대접하고 잘 보호하지만 후진국들은 외국인을 우대하고 자국민들을 푸대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외국에서 자국민의 보호에는 무관심하고 골프약속만 중하게 생각하는 영사들이 근무하는 후진국형 나라도 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벽에붙은 실종자 광고들을 보았습니다.
일본인 남자도 있고.대개가 어느곳에서 마지막으로 있었다며 아시는 분은 대사관으로 연락바란다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산에서 실종되었을까.혹은 납치되어 죽었을까?
이곳에서 죽어 갈수는 없는 노릇이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처자가 있는 몸이고 아직도 가보아야 할 곳이 많거늘!
1시가 되자 사리로 몸을 칭칭 감은 둣한 여직원 -유부녀들이 천천히 들어와 한참만에 티켓에 확인 고무인을 찍고 서명을 해주었습니다.
 휘감은 천사이로 들어난 검은 뱃살과 얼굴로 자연히 유부녀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부란 희던지 검던지, 거무튀튀한 피부는 매력이 덜합니다.


사진:파슈파미나트

 

항공사 사무실을 나와 "파슈파미나트"엘 갔습니다.그곳은 힌두교 성지로 유명하며 화장터가 있습니다.
혼자 온 여행자이선지 가이드가 따라붙어 어느나라에서 왔냐며 끈질기게 말을 붙이며 그곳을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고급 알바인 셈입니다.
처음에는 귀찮았으나 그냥 내버려두고 나중에 돈을 주기로 작정하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화장터는 네곳으로 왕족과 귀족등의 신분차이에 따라 화장장소가 틀리며 왕족의 화장시엔 좋은 나무를 사용하는데 장작값만 3000불정도라고합니다.
화장터 앞으로는 계곡의 물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화장터 앞 언덕위 사원안에는 남근석들이 일렬로 모시어 있었으나 그 의미를 이젠 기억하지 못합니다.
성인이 기거한다는 작은 사원앞엔 축복의식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화장터 앞 언덕위에는 죽음의 의식-통과의례를 담담히 보고있는 사람들 사이로 원숭이들이 뻔뻔하게 돌아다닐 뿐이었습니다.
죽음의 의식을 본다는 것은 좋은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자기의 남은 날들이 보다 변화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다음날 군인들로 경비가 삼엄한 공항에 도착 네팔 제2의 도시이며 호수도시인 포카라(POKARA)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우기가 아니면 외국인 전용 관광버스가 운행되어 네팔의 시골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비행기를 탄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
24인승  비행기 우측 창으로 펼쳐진 히말라야산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20여분을 흰산들을 옆으로 비행하며 지나는 동안 햋빛에 반짝이며 펼쳐진 장엄한 산과 빙하를 보며 창에서 눈을 땔 수 없었습니다.
하늘 높이 상공에서 내려다보던 굽이굽이 뻗어나간 알라스카 빙하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높은 산들이 많겠지만 랑탕(7245M),마나슬루(8156M)의 영봉도 그중에 있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히말라야 최고봉으로 알려진 에베레스트는 해발 8848M이나 최근 인공위성 측정결과에 의하면 K-2가 8886M로 밝혀졌다 합니다.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니 그냥 참고 바람니다.
그렇게 히말라야의 감동을 안은 채 네팔의 휴양도시 포카라공항에 도착, 과거 히피들로 인해 유명해진"페와(Phewa)"호수로 가기위해 택시를  잡았습니다.
원래 호텔에서 픽엎을 나오기로 되어 있었으나  출발시간 비행기보다 한시간 먼저 떠나는 앞비행기에 빈좌석이 하나있어 일행없는 내가 탓기 때문이었습니다.
 

  *본 여행기는 2003년 9월 네팔여행의 희미해져가는 기억과 추억을 되살려 돌아본 것입니다*

 


 


 

'해외여행기 > 네팔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팔기행(6)  (0) 2006.12.18
네팔기행(5)  (0) 2006.12.18
네팔기행-포카라(4)  (0) 2006.12.18
네팔기행-포카라(3)  (0) 2006.12.18
네팔기행-포카라(2)  (0) 2006.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