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네팔여행기

네팔기행(5)

Jay.B.Lee 2006. 12. 18. 19:24
 

저풍경이 ,저돌이 ,저 꽃이 ,저 사람이 저기있다.나는 그것을 본다.
이 세상에 태어나 산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본다는 것이다.
행복은 그것을 본다는 것이다.
땅 위에서.
오직 생명있는 자만이  그것을 본다.
그래서 모든 것들은 존재한다.
본다는 것은 나의 존재와 대상의 존재에 대한 긍정이요 믿음이다.
본다는 것은 존재함이요 그 존재함의 행복감이다.
그것이 바로 `이 땅 위에서 본다는 것`이다---김 화영(알제리 기행에서)

 

포카라 "페와" 호수에서 며칠을 예정대로 보내고 "치트완(Chitwan)" 국립공원에서  사파리 투어를 하기위해 떠나야 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현재 네팔땅이지 인도가 아니다)가 포카라에서 지도상의거리로는 멀지않은 곳에 있다.
 후일 인도에 갈 기회가 있을 때 다시 네팔에 온다면 그때 들려보기로 했다.


호텔 주인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호텔 운전기사 양반이 시외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로칼 버스의 좌석까지 잡아주며 배웅해 주는  친절을 베푼다.
평상시엔 외국인을 위한 전용 버스,Green Line이 운행된다하나 비수기및 우기로 인해 산사태가 빈번한 관계로 휴업중이니 도리가 없다.
실제거리도 먼 곳이 아니었으나 도로가 2차선이라  버스가 천천히 달리므로 족히 5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차창으로 보는  농촌의 모습은 옛날 우리의 농촌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단지 척박한 땅과 우기로 인해 비료를 준다한들 매일 오는 비에 그대로 씻겨 나갈 것 같아 이곳의 농작물은 정말 보잘 것이 없었다.
크기도 작고 기후도 아열대고 하니 토마토도 바나나도 당도를 따져가며 먹는다는 것이 사치스럽게 여겨진다.
혹 살을 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곳에서 한달만 머문다면 목표랑 감량은 식은죽 먹기가 아닐까.


첫째 날씨가 8,9월은 더워서 조금만 돌아다니면 줄줄이 흐르는 땀으로 체중이 자연히 줄게되어 있다.
둘째로 쌀조차 찰기없는 밥이고 과일 야채조차 풍성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보통 먹는 음식은 저칼로리 건강식이 될 수밖에 없다.
셌째로 네팔 사람들을 이웃하며 생활하면 그들의 검소하고 소박한 식사를 보면서 돼지처럼 먹는다는 것에 대해 평상인은 죄의식을 느낄 터이다.

 


4시간을 달려 남쪽 '무그링(Mugling)" 삼거리에 이르렀을때 차들이 꼼짝않고 서 있었다. 
바라지 않던 산사태(Landslide)가 난 것이었다.
오는 차조차 없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점심을 먹을 시간이 지나자 슬슬 배가 고파오는데 행상들이 버스주변에 들고 다니는 삶은 감자가 그래도 깨끗해 보여 감자 몇알을 샀다.
50여년전 먹던 돼지 감자 보다도 더 작은 토종 감자다.
팔던 녀석은 *소금도 아니주고 가려고해 차창밖으로 소금을 내놓라고 소리를 질러 종이에 싼 *소금을 겨우 얻었다.
소금이란 것이 고운 소금이 아니고 암염을 부수어 조금 곱게 만든 소금이었다.
옛날 수십년전 경부선 3등열차에서 삶은 계란 사 먹을때도   절구에 넣고 빻은  소금을 찍어먹지 않았던가.
지금 생각컨데 완전히 그땐 천일염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엄지보다 조금 굵은, 속이 노란 감자는 먹을만 했다.

 

 

* <구약 욥기:6장6절>
But Who can eat tasteless,unsalted food?
What flavour is there in white of an egg?
소금을 치지 않은 싱거운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느냐?
달걀 흰자위가 무슨 맛이 있겠느냐?

 

*삶의 맛갈을 내려면 꼭 소금이 들어가지. -영화 "A touch of Spice"중에서

 

 차들이 꼼짝않자 사람들이 슬슬  나가기 시작한다.
무그링 삼거리는 제법 가게도 있고 차량이 많이 다니는 곳인데  눈치로 그들을 슬슬 따라가보니 집과 집 사이에 논두렁 뚝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곳이 무허가 간이 야외 화장실인 모양이었다.
이곳 현지 주민들이 그곳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 그곳에 공중화장실이 없슴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인의 장점이란 무엇인가.
서바이벌 게임에서 늘 살아남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근대와 현대문명 어디에도 쉽게 적응할 필요가 있다..
폭우로 씻겨간 지뢰밭을  흔적을 피해 그네들처럼 시원하게 볼일을 보았다.

 

버스안이 점점 더워지자 이젠 마치 사우나 탕처럼 변해버려 나와서 차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렸다.
참을성 많다고 감탄해 마지않던 프랑스 커플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지 튀어 나온다.
 산사태가 났다면 장비조차 제대로 없는 나라에서 인력으로 언제나 복구 할수 있을까.
지나온 길에서도 무너져내린 바위와 흙들을 치우고 있는 사람만 보았지 장비나 차량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위를 오래 참지 못하는 나는 한시간 반이 지나자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최선은 코키리를 타고 정글을 돌아 다니며 호랑이,코뿔소,악어,곰도 보고 원숭이도 보고 많은 야생동물을 보고자 했던 희망을 접는 것 뿐이었다.
그래, 말이 사파리 투어지 실제 많은 동물 보기가 그렇게 쉽더냐.
원래 여우의 포도는 신 것이 아닌가.
갈 때만이 아니고 올때도 산사태가 난다면 여행은 엉망이 되어 버리는거다.
여행은 때로 선택을 강요한다.
포카라로 돌아가 이틀을 더 푹 쉬고 네팔 국내항공으로 카트만두로 돌아가기로 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농촌 풍경을 보며 달려보고자 했던 생각을 접었다.


카트만두에서 무그링을 거쳐 포카라로 가는 버스에 올라  포카라로 돌아 가기로 했다.
4시간을 또 가야 했지만 네팔의 시골 농촌을 더보게되어 시간 낭비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거리는 멀지 않아도 시간상으로는 대구에서 다시 서울로 되돌아간 꼴이 되고 말았다.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택시기사가 바가지 요금을 부른다.
페와 호수에서 일주일을 지내다 산사태로 돌아온 사람이라고 했더니 눈치빠른 그녀석 요금을 반으로 부른다.


먼저 있던 포카라 가든 호텔로 돌아가지않고 수영장이 있는 "Barahi "호텔로 숙소를 잡았다.
하루 18불.에어컨이 있고 시설은 일류다.
먼저 있던 곳은 카투만두 여행사 소개료가 포함된 탓으로 에어컨 대신 휀이 돌아가는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15불이었다.
 '바라히"호텔 정원사는 정원의 화초 밑으로 마치 물고기 잡듯 양손을 넣어 무얼 잡고 있었는데 세상에서 그렇게 큰 달팽이들은 처음 보았다.
전라남도 벌교의 *우렁된장집의 큰 우렁보다 크며 작은 소라만 하다.
그러나 프랑스 달팽이 요리는 들어 보았어도 네팔 달팽이 요리란 소개 책자에 없는 것을 보면 먹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훗날 달팽이가 귀해지면 먹을 모양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미꾸라지가 귀해지니까 보양식으로 추어탕을  즐겨 찾는 것처럼.

 

*우렁된장집-보성 차밭(대한 다원이 제일 아름답다)에서  "봉로 녹차" 한잔으로 심신을 정화후 벌교에 오면 벌교 꼬막만큼 유명한 맛집.


 

 

땀에 젖은  옷들을 세탁하고 정원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혼자서 수영을 하노라니 늘씬한 미인들이 지나가다가 그중 동양계여자가 청바지를 입고 수영해도 괜찮겠냐고 묻는다.
반대 할 이유가 있을까 .
필립핀인 그녀는 프랑스 친구들과 함께 왔는데 수영복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
그녀가 잠시 수영을 하고 나간후 땅달만한 40대 후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심심했는지 말을 건네왔다.
자기는 뉴욕에서 왔다고 했다. 나보고 다음에는 어디 가보고 싶냐고 하기에 파키스탄 장수촌 훈자마을 같은 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했더니 그런 곳에 뭐 가볼 필요가 있느냐며 여행지로 베트남이 최고란다.
음식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돼지같이 나온 그의 배를 보며 먹는데 중점을 두고 얘기하는 그를 두고 웃었지만 후일 베트남을 방문 했을때 그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수영후 조금 서늘해진저녁  호수길을 따라 자전거로 슬슬 가다가 포카라 가든 호텔 주인을 만났다.
 그는 눈이 동그래지며 아니 미스터리 어떻게  된 것이냐는 것이다.
분명히 자기 직원을 시켜 버스에 태워 보냈는데 치트완에 있지 아니하고 포카라에서 나를 다시 본것에 귀신을 본것만큼깜짝 놀랜 모양이었다.
무그링에서  일어난 산사태로 차량통행이 막혔음을 설명하고 수영장 달린 호텔을 원해 이 호텔로 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치트완에서 나를 픽업하려고 기다릴  사파리 여행담당자에게는  미리 전화를 해두었슴도 얘길했다.


 
"바라히"호텔 에서 먹은 아침식사가 너무 맛이 없어 다음날 아침  현지인이 하는 빵집에서 금방구워 나온 시네몬이 들어간 빵에 커피로 식사를 대신했다.
빵모양은 볼품 없었어도 따끈한 빵이란 늘 맛있는 법이다.
점심은 현지인이 하는 간이식당을 누가 알려주어 "뚝빠"(Thukpa-국수)로 먹었다.
배추 김치를 주는데 세콤하게 잘 익어 국수와 먹으니 여간 맜잇는 것이 아니었다.
주인은 한국에 가본적은 없고  한국인에게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훌륭한 한국인이다.
꼭 생김새가 홍콩 귀신 영화에 자주 나오던 똥똥한 홍콩배우 홍금보( 80년대 홍콩 강시영화 "귀타귀"의 주인공) 를 닮았다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한국인들이 홍금보 아저씨라고 별명을 지어주었다고 했다.
점심 식사후 보트장 옆 나무 그늘에 6,7명의 사람들이 잡담을 하고 있다.
낚시를 하고 싶어 누구 낚시대를 빌려 줄만한 사람이 있냐고 물어 보았다.
한 사람이 릴 낚시대가 집에 있다며 2불에 빌려 주겠다고 한다.
2불이면 이곳 물가를 감안, 그렇게 싼 것도 아닌것 같기도 하다.
낚시대와 미끼로 빵을 가져온 그에게 내가 제안을 했다.
만약 고기를 잡으면 3불을 주고 못 잡으면 1불을 주면 어떻겠냐고 진지하게 얘기했더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표정이었다.
농담이었다는 말에 모두들 웃는다.


그네들이 묻는다.내 나이가 몇이냐 되었냐고.
56살(당시)이란 말에 굉장히 몸이좋고 건강하다며 지금도 한국에서 일을 하냐고 묻는다 .
대부분 마른 체격들을 가진 그네들이라 나의 작은 체격도 커 보이는 모양이었다.
몸에 조금 근육이 있었던 것은 아파트 헬스 크럽에서 직장을그만 두고 부터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이나 일을
하고 있다는 말에 부러워할 필요가 있을까.
그중 한사람이 자기들은 그 나이가 되면 전부 집에 들어 앉아 손자보며 소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내나이 혹은 서너살쯤 아래로 보았더니 생각보다 얼굴에 비해 나인 젊은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그네들의 평균 수명이 길지 않을 것으로 보면 60세면 완전 할아버지였던 우리의 옛시절과 비슷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모습이 수십년전의 우리 모습처럼.


다음날 포카라 공항에서 카트만두까지 작은 경비행기를 탔다.
카트만두 공항에서는 택시기사에게 부탁하여  옛고도인 "박타풀(Bhaktapur)"행 버스를 탔다.
버스엔 꼭 남자 차장이 있는데  그는 새로 승객이 탈때마다 돈을 받곤 했는데 손에 들고 있는 돈을 보고서야 갑자기 네팔 돈 얘기가 생각이 났다.
네팔의 돈은 거의 색갈이 회색으로 아무리 시커먼 색갈을 했어도 돈을 안 받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차장이 손에 쥐고 있는 돈이란 전부다 나뭇재통에 담아 흔들어 낸 색갈처럼 옛날 기와 색갈이었다.
 때묻어 시커멓게 생긴 돈을 단위별로 구분가능한지 신기할 지경이다.
호텔에서 환전시나 환전상에서는 비교적 색갈이 있는  돈이지만 지갑들을 사용 아니하며 유통기한도 없이 사용하는 것 같았다.
벌써 폐기 처분 했어야 하지만 가난한 나라임을 생각해야 했다.
신규 화폐발행예산도 힘들터인데  화폐의 색깔이나 화폐에 얼마의 병균이 있는지 따져볼 처지가 아니다.

박타폴 버스 정류장에 내려 축구를 하고 있는 중학생에게 "나갈코트"행 버스 정류장을 물으니 안내해 주겠다면서 하던 축구를 중단하고 앞장을 선다.
착하고 친절하기도 하지. 네팔인들은 모두 친절하다.
"나갈코트"는  카트만두에서 약30Km 떨어진 곳으로 그곳에 간것은 순전히 히말라야 전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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