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네팔여행기

네팔기행-포카라(4)

Jay.B.Lee 2006. 12. 18. 19:21

 

 

 사진 ; 담푸스 가는 길에 만난 산골 사람들
     포카라 시내를 나가면서 성장을 한 그네 모습들이다.

 

이곳 네팔 에서 제대로 트레킹을 하려면 2주 정도의 시간을 가져야하고 한국에서 부터 준비가 필요하나 당초 여행계획은 미니 트레킹 정도만 하는 것으로 "사랑 코트"를 다녀온뒤 "담푸스"로 가서 하루정도 산에서 자고 오기로 하였다 .
 그러나 한식당에서 만난  현지 교민은   안전을위해 가이드와 같이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한다
호텔주인에게 의뢰하여 영어할 줄아는  가이드를 고용, 하루 당일 치기로 갔다오기로 했다.
산밑까지 자가용으로 갔다가 오는 길엔 로칼버스를 이용하기로 .
현지인들이 타는 로칼 버스를 타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비용은 모두 합쳐 10불.


참고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등산이란 외국인에게 말할땐 무조건 취미가 "Mounting Climbing"이라고 하지말 일 입니다.
우리가 하는 등산이란 하이킹,트레킹 정도로 대부분 트레킹(Trekking)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마운틴 크라이밍으로 얘길 한다면 높은 산 바위에 로프를 걸고 매어 달린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쉬울터.
상상력이 더 심한 사람이라면 "미션 임파서불 2"에서 바위에 매어달린 톰 크루스나  미 로키산에서 로프에 매어 달린 "CliffHanger"의 실버스타 스텔론이나 "K-2"에서 눈사태를 헤치며 산을 오르는 마이크 베인같은 당신을 상상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K- 2"에 도전하고 있는 "Vertical Limit"의 크리스 오넬이나"Into thin Air"(Death on Everest)의 피터 호톤과 당신을 혼동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얘기해도 손해볼 일은 조금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 볼 것이기 때문에 굳이 마다 할 일도 아닙니다.
더우기 거짓말 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담푸스 가는 길에 티벹 난민촌에 잠시 들렸다.
학교와 사원과 작은 동네를 이루고있는  난민촌 .
티벹을 떠나 남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더우기 우리와 아주 흡사한 용모를 지난 사람들이다.
 나라잃고 남의나라에서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음식(모모-만두)을  팔고 관광기념품 보따리 장사로 생활하는 듯 보였다.
나라를 빼앗기고 살아 가고 있는 티벹사람들을  위해 어느 나라가 나서서 중국에 항의 할 수가 있을까.


가는 길, 햇빛이 잠시 나더니 " 마차프차레"(Fish Tale)의 봉우리가 자태를 들어내 보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하늘에서 보는 산과 달리 지상에서 올려다 본 최고봉은 카나다 록키산맥의 Robson Moutain(3950M)이었고 15년전 해발 2700미터 정도인 White Mountain(*나다니엘 호손의 "큰바위 얼굴"소재가 된 바위산이 있는 미국 뉴 헴프셔주에 있다 )에는 100년전 개통되었다는 산간 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정상까지 두 가족을 태우고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도저히 못 올라 갈 것 같습니다.
가드레일 하나없는 그곳에서 미끌어진다면 곧장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호손은  "주홍글씨"을 쓴 작가이며  단편소설  큰바위 얼굴의 원 제목은 "The GreatStone Face"다 .
뉴헴셔주에선 Old Mans Face 라고 불리운다.
큰 바위 얼굴은뉴 헴프셔주의 상징이며 도로 표지판은 노인 얼굴위에 도로번호를 표기해 놓았다.
약 2억년전 형성되었다는  노인의 옆얼굴(Profile)로 얼굴 길이는 약 12미터,옆넓이는 7.5미터로 해발 360여미터 산위에 있다.
 실제 바위얼굴을 보기 위해선 쌍안경이 필요하며 육안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다.
산 속으로 접근도 할 수 없고 접근한다해도 가까이 가보면 바위 얼굴의 모습으로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호수앞 안내판에 "No  Legend"라고 씌여진 설명을 읽으며 호손의 소설 때문에 또 다른 얘기를 기대한 것에 실망감이컸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얘기해 주기에는 호손의 소설로도 충분했다.
 10여년전 바위산이 붕괴되었고 할아버지 형상의 얼굴은 영원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중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단편 소설(피천득 번역) 속의  늙은 어니스트의 옆얼굴은 더이상 볼 수 없는 겁니다.
혹 어느 사람은 큰바위 얼굴이라면 네분의 미국 대통령 얼굴이 조각된 바위산(미국 사우스 다코다주 소재)과 혼동  할 수 있는데 알프레드 히치콕감독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에서 대통령 얼굴 위에서 총격을 피해 미남배우 "캐리 그란트"가 쫓겨 다니던 그곳과는 다른 곳입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영화 제목은 그 시절을 고려하면 멋있게 지어졌다고 볼수 있습니다.그러나 실제의 정확한 뜻은 노스웨스트 (항공사)를 타고 북쪽으로라고 합니다.

 

 "마차프차레"는  신비한 모습으로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걸려 있었다.
그 높은 하늘에 걸린 달처럼.
차로 달리다보면 가까이 점점 다가오던 롭슨과는 달리 고고히 멀리 구름위에 걸쳐있었다.
그러나 그 행운도 잠시,서너장의 사진을 찍은 뒤엔 영영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페디(Phedi)에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산행을 시작.
나를 안내한 가이드는 이곳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그는 정치보다도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음을 개탄했다.
일자리가 없는 탓에 우선 급한대로 가이더가 되는 길이 쉽긴하나 자신의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다고 했다.
며칠 뒤 카트만두 교외 "나갈코트"전망대에서 만난 카트만두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다는 세명의 대학생들도 같은 얘길 했다.
한국에 가서 일할 자리가 많느냐며 한국을 무척 동경했다.
그러나 그네는 한국이 얼마나 발전한 나라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어 보였다.
모든 물자가 국경을 통해 인도에서 오듯 모든 소식조차 대부분 인도를 통해 듣는 것은 아닌지.
당시 군권력을 장악,왕권 통치를 할 때이니 그럴수도 있슴을 상상해 봅니다. 
한국이 자동차 생산능력이 세계6위인지,아니 자동차를 생산이나 하는지 조선업이 세계1위인지 전자산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한국에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었고 그저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있다는 얘기만 들은 듯.

 

산에서 만난 네팔 여인들의 삶이란 정말로 고달퍼 보였다.
햇볕에 그을은 얼굴에 들어나 보이는 이는 유난히 더 희게보였다.
등에는 소먹일 풀이 가득 든  바구니를 메고 소를 몰고 바싹 마른 몸으로  좁은 산길을 걷는 모습을 보노라니 안쓰럽기가 그지 없었다.
실제로 바구니는 멘것이 아니고 바구니에 메어 있는 띠를 두손으로 잡고 이마로 지탱하며 소먹일 풀을 운반하고 있었다.
그니들의 표정은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며 살고 있는 지친 모습이다.
소는 검은소로 동남아나 필립핀의 소처럼 진회색이었으나 물소로 부르지 아니하고 바팔로로 부르고 있었다.
가이드 뿐만 아니고 모두 바팔로로 부르고 있으니까 바팔로가 맞겠지만  캐빈 코스트너주연의 "늑대와 함께 춤을 "에서 미평원을 달리던 우람한 바팔로완 거리가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을 말살 시키기 위해 주식량인 바팔로를 살육하며 근대에 이르러 수백만이상의 아메리카 인디언 대학살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인권을 주장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되었슴은 아이러니하다.
인디안을 그저 살인자 ,멍청한 사람들로 묘사하던 5,60년대 웨스턴 영화조차 더 이상 방영하지 않는 것을 보면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럽기 때문이 아닐까. 
어쨋든 만약 한국의 여자들이 이곳 네팔에 오면 여자로 태어 나지 않았음을 감사하리라.

 

가이드는 이 시기에 산행을 할때는 풀섶의 Leech(거머리)를 주의 하라고 한다.
거머리.
거머리에 대한 추억이란 어릴때 논두렁에서 놀때 종아리에 붙었던 기억과 고등학교때 봉사 활동가서 모내기 할때 뿐이었던 것 같다.
당시 누나가 없었던 친구들은 헌 스타킹을 못구해 거머리에 많이 물렸었다.
논에 들어가 거머리에 물리는 것이 싫어 못줄을 잡았던 친구들은 얼마후 잔머리를 굴렸던  자신이 후회스러웠으리라.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해본 사람만이 안다.
한때 인기 절정의 연속극 '허준"에서 피고름을 빨아 내던 중요한 역할 담당으로 거머리에 대한 위신이 조금 회복되었지만 거머리는 인간에겐 해로운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거머리 같은 놈.
그것도 찰 거머리 같은놈이 되면 이미 구제 받기엔 늦은 놈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남의 피를 빨아 먹고 살도록 된 거머리에 대해 너무 비난이 심한 것이 아닌지.


우리나라 거머린 작지만 북미의 거머리는 엄청나게 큽니다 .
대체로 거의 모든 생물은 땅크기에 비례하여 커 보입니다.
움크리고 있을땐 초등학교에서 쓰는 고무 지우개만 합니다.
어째 사람으로  태어나 낚시바늘에 요상한 것들을 꿰어 가지고 고기를 속여 잡아올리는 일이 만물의 영장이 할 짓이냐고 비양거리던 친구가 생각나는 낚시지만 어쨋든 호수에서 낚시할때 미끼로 구더기,지렁이외에 북미에서는 거머리를 미끼로도 많이 씁니다.
물속에서 금방 축쳐지는 지렁이와 달리 생고무 처럼 오랜 시간을 꿈틀거리며 고기를 유혹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용면에서도 좋을 뿐 아니라 만져도 지렁이처럼 냄새가 나지않아 좋았습니다.
캐나다의 지렁이는 우리나라 지렁이와는  달리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비누로 몇번을 씻어도  잘 가시질 않습니다.
지렁이 하면 캐나다 초기 한국 이민자들의 애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밤중 골프장 잔디밭에 나가 달빛을 보며 양무릅에 매달린 큰 깡통에 지렁이를 잡아 넣으며 생계를 유지했던 어렵던 시절을 회상하던 이민자들.
눈가에 비치는 눈물이란 못본척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참을 걸어 산장에 도착  바지에 달라붙은 거머리 몇마리를 떼어냈다.
실지렁이 처럼 작은 녀석들이었다.
곧 비가 올듯하여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하산하기로 .
점심을 주문한뒤 우선 땀을 씻을 겸 샤워를 하기로 했다.
 태양열 장치로 미지근한 물이 그런대로 샤워기를 통해 나와 샤워를 한 뒤 새 셔츠로 갈아 입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샤워장과 같이 있는 화장실은 좌변기로 수도 꼭지 달린 곳에 손으로 뒷처리 할 수 있도록 얌전히 물그릇이 놓여 있었다.

 

주문한 음식은 달밧으로 네팔 사람들의 주식이다.
주식이라도 거의 세끼를 먹는 주식이다.
말만 들었지 처음으로 먹어볼 네팔 전통음식이 기다려졌다.
안주인 아주머니가  밥을 하는 동안 주인 아저씨는 칼을 들고 텃밭으로 나가는 것을 보니 야채를 잘라올 모양이었다.
마치 토종닭 잡으러 가는 모습이다.
내가 고기가 먹고 싶었던 걸까.

달은 밥을 뜻하고 밧은 이곳 녹두 비슷한 것으로  식탁에 앉아 정말로 "소박한 밥상"을 받았다.
접시에 한공기 정도의 밥과 야채와 감자와 콩류가 들어가 구수한 맛을 내는 밧이든  공기 한그릇이 전부였다.
가이드는 밥에 밧을 넣어 손가락으로 잘도 주물러 버무려 먹는다.
이미 그네들의 식습관을 알고 있으면서도 솔직히 손가락으로 먹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외국의 문화,전통에 익숙해야하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난 외국인이라고 스픈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저 국물이 좀 부족한 찌게같이 맜있게 먹었다.
가이드와는 달리 달과 밧을 섞지 않고 따로 따로 먹은 것이다.
따로 국밥에 익숙한 편이니 불편은 없었다.
식사후 커피를 시키고 가이드에겐 한국 인스턴트 봉지커피" 맥심골드"를 맛보게하면 어떨가해서 그냥 끓는 물 한컵을 부탁 커피를 타주었다.
맛이 어떻냐는 질문에  좋다고(Good) 하는데 진심인지 예의상 그런것인지 .
원래 영어의 Good 이란 수우미양가 정도에서 "미"에 해당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상황에 따라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인스턴트 커피 한잔에 "Fantastic","Terrific"이나 "Excellent"란 대답을 기대했다면 무리겠지요.

 

돌아 오는 길에 산밑에서 포카라행 마이크로 버스를 탔다
 포카라시내 나가는 길에 남자들은 거의없고 전부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엄마들이 대부분 승객이었다.
100여미터 밖에서 손을 흔들고 오는 승객은 빨리 걸을 생각도 없고 천천히 걸어오고 기사도 독촉하는 기색이 전혀없다.
참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이었다.
꼬마들이 많아 배낭을 뒤져 사탕과 껌을 꺼내 아이들에게 한개씩 나누어 주었더니 엄마들이 미소를 짓는다.
한 정류장에서 5살 가량의 아들과 함께 엄마가 차에 올라 왔다.
아이의 머리는 전부 곪아 이곳 저곳 누르면 금방 터질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많이 보았던 모습이었다.
옛날 어머니들은 대추나무 가시를 따다가 찔러 고름을 터트려  짜주곤 했었다.
아이는 아픈지 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영양실조와 불결한 위생상태 에서 오는 것들이다.
끓인 물만 먹고 손만 늘 씻어도 예방되는 것들이 무지한 부모들 때문에 아이들이 고통을 받는거다.
네팔에 오는 동안 기내에서 나누어준 신문 사설에선 네팔에서 우선 해결해야 할일은 폐결핵 치료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을 막아보자고 역설하고 있었다.
 30,40여년전 떠들던 우리나라와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한지.
아이들에게 또 시급한 것은 구충제 복용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줄을서서 반장이  커다란 알루미늄 주전자로 따라주는 물을 컵에 받아 가지고  선생님이 주시는 구충제 한알씩을 선생님 앞에서 삼키고 자리에 가서 앉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알약은 어찌 큰지  목구멍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었다.
지금도 가격이 싼 미제 비타민은 어른이 된 지금도 삼키려면 많은 물을 먹어야 한다.
미국인의 목구멍을 기준으로 표준화 되었기 때문이다.
후에 어린이들이 좀더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산토닌 카라멜로 대체 되어   달고 쓴 카라멜을 억지로 씹어 먹고는 다음날 변소 밑을 들여다보고  선생님께 죽은 회충의 양을 보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여행지침서엔 후진국을 여행후에는 꼭 구충제 복용을  권하고 있다.
특수한 놈을 제외하곤 1000원에 두알인 구충제 한알,1회 복용이면 대부분 전멸하고 만다-종근당 제품이 좋다.
 좋은 세상이긴 하지만 아직도 이곳에선 기본조차 아니되어 있다.
 
 

비상용으로 준비해온 연고 새것을 꺼내어 아이 엄마에게 건네주고 가이드에게 통역시켜 소금물로 아이 머릴 깨끗이 감긴 다음 연고를 발라 주도록 했다.
연고를 받아든 엄마의 눈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곳 사람들은 수줍어 하는 탓인지 외국인 남자라 그런지 말로 표현을 못하는 듯 했다.
감사하단 말을 기대하고 준 것은 아니니 무슨 상관이랴.
 아파서 찡그린 아이의 얼굴만 활짝 펴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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