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월 아프리카 박물관 Cafe 의 Table cloth
조지아(그루지아)에서 양교수님이 귀국하고 바로 김박사님 내외가 오셨다.
양대사님은 조지아 에서 포도주를 담으며 생활하고 계시고 그곳에서 머지않은 곳에 김박사님 내외분이 산다.
여름에도 코카서스의 잔설이 하얗게 보이는 곳은 두분이 조용히 살기에 좋은 곳이다.
내가 2012년 조지아를 여행길에 양교수님을 만나고 이틀을 머문뒤 떠나오며 김박사님댁을 들려 처음 뵈었다.
마침 한국에 오셔서 "영월 세계악기악박물관 "가는 길에 동행하기로 했다.
세상은 무척 좁은 것이다.
조지아 먼곳에서 오신분들을 서울에서 다시 만나다니.
김박사님 내외분은 오랫동안 한국을 방문 않다가 2년반전 오신후 이번엔 미국에서 오는 아들 가족들과 한국에서 만나 여행할 계획이시다.
양교수님과 김박사님의 인연은 우연치곤 끈질긴 인연이다.
양교수님은 대사를 은퇴후 몬트리얼 대학에서 6년을 강의했고(그것도 독학한 불어로 ) ,우즈베키스탄 타쉬겐트 대학 총장을 만나 무보수 조건으로 학생들을 가르키고 제자들을 서울로 보내 인재를 양성했다.
그곳에서 6년을 보낸후 지금은 조지아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당초 계획으론 조지아 6개월, 한국6개월 이었으나 조지아에서 보내는 기간이 사실 더 길다.
북미,서아프리카,유럽,중남미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였으며 해외 생활이 35년이 넘는다.
아이티 대사 시절 아이티에 봉사하러 오신 김박사를 만났고 마침 손윗 처남의 부탁도 있어 열심히 도와준 모양이다.
양교수가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때 우연히도 김박사님 내외분이 이미 오셔서 선교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계셨다한다.
김박사님은 LA에 개업의로 일하며 틈틈히 해외 의료 봉사활동을 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의료 봉사시 러시아어로 ,사모님은 우즈베키스탄어를 배워 통역하며 도와주신 모양이다
결국 무슬림 사회에서 기독교 의료 선교가 문제되어 5년여의 봉사를 끝으로 추방되자 마침 먼저 와 있던 양교수가 있는 조지아로 오게되었다고 한다.
조지아는 360일 무비자 허용 국가여서 그 점에서 유리하다,
처음 조지아의 수도 "티빌리시"에 자리 잡았다가 양교수가 있는 시골로 완전히 옮겼다.
오래된 이층집(그곳은 대부분 이층집이다)을 사서 수리하고 텃밭을 만들고 넓은 땅을 사서 농부들에게 경작시켜 그 소출로 그 곳 사람들을 돕고 있다.
집에서는 그 곳 아이들에게 영어 교육을 시키며 영어 성경을 가르키고 있다.
영월 아프리카 박물관 (2009년 5월 19일 개관)조명행 관장은 서울고, 연대 정치 외교과 졸업후 1965년부터 7개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다 .
앵커리지 총영사,나이지리아 대사,칠레대사 ,재한 유엔 기념 공원 관리 처장을 지냈다.
아프리카 대사시절 서로 만나던 양교수와 인연으로 영월을 방문하며 아프리카 박물관과 세계악기 박물관장을 만나 보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박물관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표현이 딱 맞는다.
오래전 조안면 영화 촬영장 부근에 아프리카 돌조각을 팔기위한 아프리카 박물관이 있었다.
그 곳에서도 민속춤을 잠시 볼수 있었는데 소리없이 사라져 버렸다.
최근 아프리카 무용수들에 대한 인권및 체불 임금문제로 말썽이 난 포천 소홀읍 아프리카 박물관이 가장 규모가 크다.
종로구 소격동에도 작은 아프리카 박물관이 있고 북촌 "탈 "박물관에서도 아프리카의 오래된 Mask를 볼 수 있다.
지방엔 영월이 유일한 아프리카 박물관으로 원래 폐교가 있던 자리다.
인구가 급격히 빠져 나가자 많은 학교가 폐쇄되었다.
15개정도의 박물관이 있는 영월은 인구 4만 대비 현재 가장 많은 박물관 수를 자랑한다.
교장 사택자리에 살고 잇는 조관장의 박물관 건립 이야기는 한 개인의 의지의 산물이었다.
시골에 사는 삶과 은퇴후의 삶의 본보기 이기도 했다
미래를 생각하며 이 많은 물건들을 어떻게 수집했는지 그 정열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집가들은 사실 반 미친사람들로 간주된다.
돈을 벌려고 하면 하지 못하는 사업이 박물관 사업이라고 한다..
오로지 봉사와 희생 정신이 없다면 하지 못할 일이다.
학교 마당에 조성한 잔디밭을 가꾸고 잡초를 뽑는 일조차 끊임없는 전쟁이라고 했다.
이 모든 일이 오래전 부터 준비한 김 관장님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지방 자치제에 맡겼더라면 개성없는 박물관이 되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모두 특이한 삶을 살고 있는 세분들이다.
모두 오랜 해외 생활을 통해 세상에 대한 그분들의 시야는 남다르고 넓다.
이번 영월 여행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살아가는 분들과 함께하며 좋은 여행이 된 셈이다.
옛 학교 운동장은 잔디밭으로 바뀌었다.
봄이 오며 푸른 빛을 띄면 산아래 동강의 파란 물길이 함께 할 것이다.
건뭉 외벽을 얼룩말 무늬를 응용 ,아프리카란 이미지를 금방 떠올리게 지었다.
1층의 아프리카 복식
아직 장작을 넣는 난로의 열기가 그리운 시기다.
아프리카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견공도 보인다,
아프리카 멋장이 인형들
사막 텐트
잔디밭엔 사막경험을 할수 있게 텐트와 낙타,그리고 나무 위에 올라 나뭇잎을 먹는 염소를 만들어 두었다.
아프리카 박물관 건물의 천정
"요르바"풍속(목판)
Mask 실
이페(IFE)청동 두상-Nigeria
15세기 이전에 요르바 지방의 이페 왕국에 주물기술이 도입된 것으로 추정.
이페 왕국의 장례용품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짐.
얼굴의 길다란 줄무늬들은 왕의 얼굴을 가린 베일로 묘사.구멍은 머리와 수염을 달기위한 것임
오론 (Igbo-Oron) 조상 인물상-나이지리어,여인을 조각한 것으로 추정한다.
상아장식.수출 금지 품목이나 당시 외교관신분이라 통관이 가능했다고 한다.
상아에 세긴 세밀 조각
호박 목걸이
야생 소머리-나이지리아
민속춤(카메룬) - 김동호 전 카메룬 대사 기증
우리를 위해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는 박물 관장님.
물건 구입하기까지 에피소드조차 스토리가 있어 얘기하자면 끝도 없다는 관장님
바그다리 포구-1990, 니이지리아의 작은 포구
명화급은 아니나 아프리카 풍물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그림이다.
학생들을 위한 체험 학습실
아이들 작품.영월의 박물관은 보기 보다 교육적 ,체험 위주로 되어 있어 어른 보다 아이들에게 유익하다
쿠스쿠스 요리법
카핏 제작 과정
카피트
사막사진으로 뒤집으면 문제가 있어 사막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게 재미난 학습 방법을 개발했다.
알제리
모로코
헤나
헤나 원료
조 관장님의 창고까지 보여주었다.
트랙터와 잔디짞는 기계들 그리고 탑차.
모두가 조관장님의 직접 사용하고 탑차를 이용,수집품들을 운반했다고 하니 그 노고가 상상하기 어렵다.
뉴욕에서 수집한 아프리카 풍물 사진 .지금은 많이 사라진 풍습들이라고 한다.
2층에서 내려다본 1층 로비
형제들 .나무 하나로 만든 조각이다.
관장님 사모님이 난로 곁에서 재미난 얘기를 많이 해 주셨다.
시간이 너무 많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박물관내 카페.커피가 무척 맛있다.
기부금함-어차피 무료로 본 것이라 Unicef 기부함에 돈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국내 여행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월 세계 민속악기 박물관을 찾아서 (0) | 2014.03.05 |
---|---|
맛갈스런 강원도 영월 칡국수 (0) | 2014.03.04 |
명주사 고판화 박물관 (0) | 2013.12.26 |
겨울에 찾은 횡성 자작나무 미술관과 수구레 국밥 (0) | 2013.12.26 |
횡성 풍수원 성당 (0) | 2013.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