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박종호,백건우 대화의 시간

Jay.B.Lee 2013. 10. 20. 21:10

 

사진: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있는 풍월당 입구.

 

풍월당(2003년 오픈)에서 이메일이 왔다.

<박종호(풍월당 대표)씨와 백건우씨의 대화시간>을 알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자 백건우선생의 대담을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00명이 꽉들어찬 풍월당 아카데미(2007년오픈)에는 그의 클래식 애호가들로  꽉 찼다.

일찍 도착한 덕에 앞줄 부근에 앉을 수 있었다. 

청중들은 대부분 여성으로 남성들은  20명정도다.

먼저  문을 닫은 메이져  음반사"EMI" 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풍월당에서 만든 5-6분

짜리 필름을 보았다.

백건우씨가 연주한 슈베르트 곡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옛 Brand,한때는 명성을 날렸을 옛 연주자들의 흑백 사진이 영상 속에 잠시 잠시 흘러갔다.

짧지만 잘만든 영상이다.

박종호씨는 이제 음악을 듣지 않고 보는 시대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음반사가 사라지는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박종호씨는 40여년전 중학교 2학년때  어머니가방에서 돈을 꺼내 부산에 온 백건우씨 연주회에 갔던 추억담을 꺼내었다.

당시 외국에서 이름을 내기 시작한 한국 음악가들을 초청하여 연주회를 가졌는데 바이올린 연주자 김영욱씨도 있었고 백건우씨는 20대 였다고 한다.

그 당시 왔던 분들은 사망했거나 지도자인 교수로 혹은  은퇴했거나 지휘자로 변신(아마 정명훈씨를 이름)하였는데 아직 현역으로 연주활동을 하며

음반까지 내는 분은 백건우씨가 유일하다고 했다.

백건우씨는 검은 스웨드 점퍼를 걸치고 나왔는데 마이크를 들었음에도 연주시의 정열과 달리 목소리가 낮았다.

박종호씨는 백건우씨에겐 '음악이 종교 같은 일상'이라고 정의했다.

박종호씨의 얘기가 끝나고 청중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어느 분이 사랑이야기를 하자 저 뒤에 있는 분에게 물어 보라하는데 부인 윤정희씨가 제일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15살에 뉴욕으로 공부하러 갔다는 백건우씨.

원래는 음악을 공부하러 간것이지 피아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번 슈베르트 곡은 베토벤이나 모자르트에 비해 인기있는 곡이 아니나 마치 '겨울 나그네' 처럼 슈베르트의 세계를 탐험하는 심정으로 연습에 몰두 했다고 한다.

파리의 생활은 어떻냐고 묻는 질문에 저녁에 바케트 사러가는 것이 일과라고 청중을 웃겼다.

하루에 연주 연습을 얼마나 하시느냐는 질문에는 시간 개념없이 어떤 때는 10시간도 연주속에 파묻혀 지낸다고 했다.

그 만큼 음악이 좋다고 한다.

화가가 첫 붓을 어떻게 타치할 것인가,작가가 글의 첫줄을 어떻게 시작할까하는 것처럼 연주자에겐 첫 시작을 어떻게 끌고 나가냐가 고민이라고 했다

악보를 보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 재창조란 작업에 몰두하다보면 건반 두드리기가 두려워 어떤 때는 한시간 동안 피아노만 쳐다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떤 피아노를 가장 선호하냐고 묻는 질문에 선호하는 피아노로 스타인웨이가 있지만 장소에  따라 준비가 되지 않을 수 있어 다른 피아노엔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제일 앞줄에 앉은 여자분(10여년전 안양에서 백건우씨 연주회에 갔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왕펜은 분명하다)이 타인에 대한 배려란 조금도 없이 여러번 길게 독점하여 참다못한  젊은  남자분이 독점을 은근히 힐난하며 조금 엉뚱한 질문을 했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모자르트 와 다른 유럽음악가의 음악이 제국주의  음악이라고 불태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음악이 이젠 어느 국가, 어느 시대에 국한 되지않고 세계인의 음악이 된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항상 유머가 많은 박종호씨가 옆에서 거들었다.

날아가는 새를 아름다운 새라고 하지 독일새라고 부르지는  않는다고.

욕심 많은 앞여자.

자신의 교양과  유식함을 강조하려 말을 어렵게 가리다 보니 "어떤"이란 수식어가 왜 그렇게 많이 달리는지 웃음이 났다.

다른 장소 같았으면 야유가 터졌겠지만  클래식 애호가들은 애써 참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백건우 선생을 도와주기 위해 내가 나서기로 했다.

마지막 질문으로 드린다고< 대못>을 박아 놓고 혹시 연주전 식사를 하실 경우 기피하는 음식이 있냐고 물었다.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연주시에 변화를 주셨는데 어떤 의미로 그렇게 하셨는지 하는등의  전문적인 질문과는 거리가 있어서다.

백건우씨는 웃으며 음악의" 본론"에 해당되는 얘기라며 실제로 연주전엔 식사를 잘 못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연주시는 김밥 한줄로 때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연주를 위한 몰입과정이 험난하다.

 의도대로 대담시간이 바로 끝났고 아카데미 아래층 매장에서 <펜 사인회>가 있었다.

연주자는 연주시보다 사인 할 때가 더 즐거운 법이라고  박종호씨가 멘트를 날렸다.

우선 슈베르트곡에 한장 받고 모두  끝난 다음 슈베르트 곡 다른 한장과  집에서 가져간 쇼팽곡에 사인을 받았다.

슈베르트  타이틀에 백건우씨의 30대 사진이 붙은 것은  31세에 요절한 슈베르트의 고뇌의 시절에 한걸음 다가가고 싶어서였을까

나중에 손자들이 크면 선물로 나눠줄 생각이다.

우라나라에 위대한 피아노 연주자 백건우씨가 있었음을 기억하라고.

 

 

 

 

 

싸인을 받기위해 줄을 선 사람들.대부분 여성들로 피아노 연주를 하거나  펜들로 짐작한다.

음반에 사인 중인 백건우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