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처 고모부

Jay.B.Lee 2010. 5. 15. 22:28

 처 고모부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향년 84세.

아들과  함께 병원을 찾았을 때는 너무 늦어 대장뿐 아니라 몸전체로 번져있어  수술 중단후 4시간 후 사망하셨다.

예전 같으면 팔십대면 웬만큼 살았다는 느낌을 주더니 내자신이 나일 먹고 또 수명이 늘어나며 90대는 되야 향년을 누리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모부는  이북에서 혼자 내려와 신문배달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착실하고 잘생긴  학생을 눈여겨 보던 처가쪽 할머니께서 나중에 서울의 명문여고를 나온 자기 손녀을 주어 사위로 맞았다.

남한에 일가 친척 하나없던 고모부에겐 처음 이룬 가정이었으며 처가의 함경도 고향분들이 친척이었던 셈이었다.

군 장교로  근무중 국방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알게된 기업인의 권유로 중령으로  예편을 하고 지금은 대기업이 된그 분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은퇴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강직하고 청렴했던 그분은 군대가 더 생리에 맞아 보였다.

6.25 당시 제주 훈련소 교육담당 소위의 교육시간에 참관했던 분이 고모부의   탁월한 교육능력을 높이사 연고없이 육군 참모 총장실에 부관으로 불리워가 계속 승승 장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나고 보니 그냥 군대에 남아 있었던 편이 더 좋았지 않았을 까 하는 후회가  든다고 했다.

한번 택한길 ,되돌아 보아서는 안되면서도 말이다.

고모부는 식사를 하며 평생 국을 안먹었다.

반찬과 밥으로만 먹는  습관 때문에 성격까지 까다로운 것으로 오해를 받았다. 

하긴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신 분들은 모든 이의 환영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늘 우유를 즐겨 마셨다.

평상시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것이 문제였다.

 건강 검진도 종종 받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

그동안 치매가 온 처 고모를 몇년간  돌보느라 당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나 보다.

 얼마전 요양 병원에 두고온  처고모를 면회하고 온 다음 날이다.

 간신히 남편을 알아본 처고모가 왜 이렇게 말랐냐고 하던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되고 말았다.

결혼후 늦게 둔 아들 삼형제.

자폐증이 있던 막내 아들은  손자 하나만 남긴채 10여년전 세상을 떠났고 둘째는 20여년전 미국에 갔으나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되어  장례식에 오지  못했다.

 장남 하나만 다복하게 서울에 살고 있다.

그 동안 건강하시다 치매가 온 처 고모를 간호하며 뒷바라지 하다가  먼저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아들들에게 용돈을 받아야 할 나이에 아직도 자식들에게 돈을 보태주어야 한다며 불평하시던 때가 어제 같다.

내가 처가의 사위가 되었을 때 첫번째 사위였던 처 고모부는 2세대 사위를 무척이나 반겼다.

당신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던 나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는데.

이것이 조카 사위가 쓸 수 있는 처고모부의 인생기다.

이제 세상의 짐 모두 내려 놓고 고통과 슬픔이 없는 세상에서 영면하시길 기원한다.

 

 

 

'인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갑자기 아들이 결혼한다는 친구의 전화  (0) 2011.07.24
대전 현충원에 잠드신 처 고모부  (0) 2011.07.22
당고모  (0) 2010.01.23
손자의 유아 세례  (0) 2009.12.26
외할머니  (0) 2009.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