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대전 현충원에 잠드신 처 고모부

Jay.B.Lee 2011. 7. 22. 07:57

 

사진: 대전 현충원 장교 제 3묘역

 

긴 장마비가 그치고 햇볕에 뜨겁게 달어오른 날 ,청주 부모님 산소를 다녀 오기 앞서 먼저 대전 현충원에 들려 작년 5월 사망하신 처고모부 묘지에 들리기로 했다.

장모님이 돌아가시전 한달전에 별세한 처고모부다,

 처고모부는 아내(처고모)가 치매에 걸려 병원에 모셔놓고 뒷바라지 하느라 정작 당신의 건강은 생각치 않으셨나 보다.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때 너무 늦어 한달만에 돌아가셨다.

향년 86세.

적은 나이는 아니나 워낙 젊게 사셨던 분이다.

평생 식사시 "국"을 먹지 않았으며 하루 "한잔의 우유"를 평생동안  매일 마실 정도로 조금 괴퍅하고 철저하신데가 있었다.

내가 35년전 아내와 결혼하기위해 인사차 방문하였을 때 처가에 2대 사위가 된다고 무척 반기셨다

함경도 청진 태생으로 해방후 비로 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신문배달을 하며 고학하던중 처 할머니께서 고학생을 유심히 보다가 성실함에 반해"수도 고녀"를 나온 처고모와 혼인을 시켰다.

군 장교로 입대하여 ,전쟁이 나자 제주도 훈련소에서 마침 방문한 사령관 앞에서 훈련 교육을 하다 눈에 띠어 서울로 전출되었다 한다.

처고모부를 부른 사람은 백선엽 장군이었다.

군대 시절 국방 대학원에서 만난 기업 사장이 맘에 들어해 예편후 그 회사에서 상무로 일한후 퇴사를 하셨다.

그후 노인 회관에서 노인들에게 컴퓨타 강의도 하시고 일본어가 모든 발음을 낼수 없음을 착안, 발음을 거의 완벽하게 낼수 있게 쉽게 보완적 발음 기호를 만들어 일본에 있는 교수와 교류하다 일본 교수가 공동 이름으로 연구 논문을 하자는  과욕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중단하고 말았다.

결과로 일본어가 여전히 발음을 완벽히 표현해 내지  못하는 우수하지 못한  문자로 남게 되었다.

 퇴사후 슈퍼 마켓을 경영하셨고 슬하에 아내의 고종사촌이 되는 3형제를 두었다.

오래전  아들 하나를 잃고  한 아들은 미국에, 한 아들은 서울에 살고 있다. 

 한동안 안사람의 고종들이 힘들어해 남들은 이 나이에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아야 하는데  도와주어야 하는 신세라고  조카 사위인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시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동안 요양원으로  안사람과 함께 서너번  처고모를 찾아가 보았다.

갈 때마다 십여분전을 기억못해 나를 붙잡고 "이서방,어떻게 왔어? 하나도 안변했네"하는 소리를 댓번은 들어야 했다.

노인들에게 친정 조카와 조카 사위라고 몇번을 자랑하시는지.

그러면서 병원을 나설 땐 우릴 붙잡고 우시곤 했다.

처고모부를 기억못하는 처고모가 어느 날 정신이 드셨는지 남편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왜 찾아오지않지하고 간병인에게 묻더라는

얘길 듣고  가슴이 얼마나 아리어 오던지....

처고모부가 돌아가셨다는 걸 모르는 것보다 그 기억했단 사실 조차 금방 잊어 버리고마는 그 자체가 더욱 서글프다.

 

 

 

 

 

 

 

               

 

죽어서 세줄만을  남긴다는 묘석이다.

장교 3구역 바로 옆이 마침 천안함 46용사의 묘역이다.

노년의시골 관광객  관광객들이 이 더운날  이곳에 다녀간뒤 안살람과 들려 잠시 들려 묵념을 했다.

갑자기 어린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흰물수건을 들고 나타났다. 

아이들이 묘석을 닦기 시작했다.

애국이란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전시도 아닌데 이런 저런 사유로 사망한 병사들을 본다.

모두 나라를 위하여 복무하다 사망한 젊은들이다.

묘비가 늘어나질 않기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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