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횡성에서 콘테이너에 사는 친구

Jay.B.Lee 2011. 7. 27. 08:23

*살면서 인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해보고 싶다.

그네들의 요약된 삶이고 또  나와의 인연으로 해서 나의 삶에 매듭 매듭 끈을 이어온 사람들이다. 

 

 

갑자기 횡성에 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핸드폰 전화 신호음에 대답이 없다.

밭일을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저녁에 전화가 왔다.

그렇지 않아도 네 생각나더라고 .이심전심이다.

횡성 江가에 콘테이너를 놓고 사는 친구다.

강물이 불어나 위험하지 않냐고 안부를 묻는다.

지대가 높아 전혀 걱정이 없다는 말에 안심이 된다.

그의 집에 처음 간 것은 아마 초등학교 5학년때 였을 것이다.

아버님과 그의 부친은 공무원으로 같은 직장에 다니셨고 나에게 토끼 분양을 해준다고 해서 집으로 토끼를 얻으러가 처음 그를  만났다.

그는 학교만 다를 뿐 같은 5학년이었다.

그 친구가 분양해준 토끼 두마리로  20여마리까지 키웠다가 6학년 가을에 되어 형이 몽땅 처분해 주어  6학년생으로 거금(?)을 쥐게 되었다.

그 돈의 일부로  강아지를 한마리를 샀다.

토끼를 키우며 아카시아잎을 뜯으러 다니던 여름날의 상긋한  풀내가 지금도 코끝에서 나는 것 같다.

형이 구해다준 4H 구락부에서 나온 토끼 사육법이 큰 도움이 되었고 귀가 축 늘어지는 토끼를 보고 근친 교배가 왜 나뿐지도 배우게 되었다. 또 토끼들도 서로 살점이 뜯어지게 물며 피를 흘리며 무섭게  싸우는 동물임을 처음 알았다. 

그와 다시 만난것은 중학교 입학시험 때로  아버지와 친구 부친은 우리들  점심으로" 빵 "을 사오셨다.

"빵"을 먹고도 다행히 둘다  지방의 명문 중학교에 합격했고 이어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함께 다녔다.

그러나  매년 바뀌는 반편성에서 한번도 같은 반이 된적도 없고 대학에서도 같은 학과는  아니었다. 

그는 중,고교 재학시절 검도를 했었는데 마침 시내에 있는 그의 집앞에 유도와 검도를 가르치던 "상무관"이 있었다.

고교 졸업 앨범에도 진검을 든 그의 멋진 모습이 실려있다. 

나는 재학중 사병으로 입대하여 복무중  그는 졸업후 ROTC장교로  복무했다.

재학시  사고(?)를 저절러 그는 장교복을 입고 임관과  동시 배부른 신부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지금 같아서는  훌륭한 "예단" 이 되겠지만 친구의 아버님은 "양반집에서..." 하며  혼전 임신을  퍽 부끄러워 하셨다고 군복무시 들었다.

일찍 두게된 그의 딸은 현재 마흔 한살로 미혼이다.

동창생중  제일 먼저 자녀를 둔 기록을 남겼다.

그래도 임신을 시키면 남자가 책임질 줄 아는 그 시대가 진정 남자들이 살던 시대였다.

요즈음처럼 무책임하고 ,책임을 떠 넘기려는 비열한 시대는 아니었다.

그는 제대후 재벌회사에 입사했고 나는 H구룹에 입사 했다.

그가 기획실 부장을 끝으로 나온후 문구 제조 회사 공장장으로 근무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혹시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일년후 그만두며 결국 장래 없는 사업에 투자할 필요성을 못느껴 발목을 잡히기전에 털고 나왔다고 했다.

어느 날 그가 갑자기  불쑥 정수기 카다로그를 들고 나를  찾아온게 벌써 15년 전이다.

 점심을 함께하며 그간 얘기를 풀어 놓았다.

자기 소유로  딸이 피아노 학원을 하고 세준 3층자리 작은 빌딩이 있었는데 어느 날 빚장이들이 몰려 왔다고 했다.

모든 재정문제를 안사람에게 일임한동안 안사람이 그동안 동네에서 이집 저집에서 돈을 많이 끌어다 쓴 모양이었다.

그 사유야 고치꼬치 물을 수 없어도  방임한 네책임도 크다고 하는 내말에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재벌 회사 간부에  딸이 피아노 학원을 하는 3층 짜리 빌딩을 소유하고 있고  신용있지,   한동네에 수십년 산 안사람이 돈 부탁을 하면 안빌려줄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빚쟁이인 이웃들이 그동안의  정리를 생각 ,살면서 조금씩 갚아 달라고 요구하자 그는 그러면  죽을 때 까지 다 못 받을 거라고 해결하겠다 약속했다 한다.

다행히 부동산 거래가 뜸한 시장에서 빌딩이 적당한 가격에 팔려 빚쟁이들을 모두 불러 빚잔치를 하고 행방을 감추었던 부인을 몇개월 수소문해 집에 데려 왔다고 했다.

소행은 괘씸하지만 얼굴을 들지 못하는 아내를 이제 버릴수도 없다고 빈털털이가 된 그는 허탈해 했다.

 나는 그를 위해 200만원자리 정수기를 선뜻 사주었다 .

그후 그는 몇몇 친구들에게  정수기를 판 뒤 그만두고  친구 회사에 3년여 잠시 몸을 담았다.

그 동안 그는 작은 딸을 시집 보냈다.

그 후 그는 오래전에 사두었다는  횡성 작은 땅에 콘테이너 하우스를  가져다 놓고  봄부터 가을까지 그곳에서 산다. 

주변을 이쁘게 가꾸어 놓았고  농작물로 이것 저것 먹을거리 만들어 놓았다고 놀러와 박하차를 마시고 자기가 끓여주는 된장찌개 먹고 가라고 한지가 몇번이다.

그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서울로 돌아와 일주일에 한번씩  관악산을 오른다.

그리고 봄이 되면 또 횡성으로 돌아 갈 것이다.

차로 멀지 않은 곳이고 이번 비가 그치면 꼭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는 마치 그의 "산막"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반딧불을 보며 탁한 세상을 멀리하여 살고 있다.

한 때의 영광과 투쟁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그는 잘 알것이다. 

긴 장맛비가 그치면 쇠고기와 소주병을  들고서 횡성으로 친구를 찾을 생각이다.

우리가 친구로서 서로 연을 맺은지가 50년.

앞으로 우리가 만나면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그를 만나면  아련한 추억을 더듬으며 우리가 살아온 세상 얘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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