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외할머니

Jay.B.Lee 2009. 12. 18. 17:30

*외가 -어머님의 친정.아버지의 장인 장모,즉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계신 집안이다.

*진외가-할머니의 친정, 아버지의 외가

            여자가 시집가면  출가 외인이란  지배적인 사고가 있었던 시절이어설까 아버지 손을 잡고 아버지의 외가를 가봄직도 했으련만 의외로 "진외가"란 말조차 아는 이가 드물다.

 

시집을 가 남편직장을  따라가 광양에 사는 이종 사촌 여동생이 있다.

7살 정도 아래인 동생은 오빠인 나에게  매실 짱아지를 보내왔다.

달고 짭잘한 것이 피클 수준이다.

대전 사시는 이모의 안부를 묻자 오늘이 외할머니 제사라 병천(충남)에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외할머니께서  99세로  식탁의자에서 넘어져 허벅지 뼈가  부러진후 한달이 못되 돌아가신지 15년이 넘은 것 같다.

외할머니의 묘소를 다녀온지도 12-3년이 되었다.

어머니를 잊지 않고자 하면서 정작 외할머니를 잊고 있었다.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커서보다  대여섯살 때 기억이 더 선명하다.

겨울에 갈 때마다 외손자인 나를 를 위해 갱엿을 만들어 주셨다.

 콩고물위에 넙적하게 만들어 주던 갱엿을 눈깔사탕 처럼 동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떼쓰며  외할머니를 괴롭혔던 나다.

삼했다(어린아이의 성질이 순하지 않고 사납다의 뜻)는 나의 유년시절을 기억하는 집안 친척 아주머니들은 큰 뒤에도 오랫만에 들릴 때마다 나를 보면 한마디씩 했다.

기억에도 없는 아기 때는 무죄인거다.

우는 아기나 짖는 개를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은 소인배라고 한 조선시대 학자  "이덕무"의 말이 퍽 마음에 든다.

외사촌 동생에게  전화를 하자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이미 어두어진 고속도로를 달려 병천읍 가전리에 도착했다.

유관순 열사가 만세를 부르던 아우네 장터는 병천 순대 타운 이 되었다.

 돌아가시기전  외할머니는 천안  단국대 병원에 입원하셨었는데 그동안 병원이라곤 다녀 보시지 않을 만큼 건강하셨던거다.

진찰하려 하의을 벗으라는 남자 의사말에 한산 이씨 양반 후예를 보고 옷을 벗란다고 나무라셨다는  외할머니.

외할머니께 오랫만에 온 외손이 술잔을 올리고 절을 올렸다. 

기독교인인 나지만 외할머니께 술잔을 올리고 싶었다.

추모의 술잔이다.

19명의 외손과 7명의 친손을 남기신 외 할머니 .

그러고 보니 외할머니 친정은 어디인지 들어 본적이 없다.

이제  남은 두분 이모께 물어보아야 겠다.

친 할머니의 친정-진외가는 무주라고  들어서  안다.

무남 독녀로 천석꾼 집안에 시집오셔서 충북 영동에서 고고히 사시다 가신 할머니.

그러나 실제로 아버지의 외가인 진외가를 가볼 기회는 없어 단어로만 존재하는 '진외가"다.

나에게 먼 단어이나 실제 할머니의 형제들이 계셨다면 자손들은 아버님에게는 이종사촌이요 외사촌들로 촌수로는 엄청 가까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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