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7세로 별세하신 작은 아버님이 계셨다.
일정시대 제일 고보(경기고 전신)를 나와 학도병 징용을 피해 이리 저리 도망다니다 시피 하셨다.
결국 일본 유학중 학도병으로 끌려나가 훈련후 군복을 지급받고 배에 승선 직전 ,해방이 되어 돌아 오셨었다고 한다
서울서 학업을 마치신후 노총각으로 당시로는 노처녀였던 작은 어머니와 중매로 결혼 ,서로를 구원하신 셈이다.
천주교를 믿으셨던 작은 어머니와 달리 작은 아버지는 무교였지만 불교를 믿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 안깎은 스님과 같았다.
거실겸 안방에는 마리아 그림이 걸려 있었고 작은 아버님 서재에는 불교 서적이 가득했다.
한 가정에 종교간의 평화를 이루며 두 종교가 공존한 괴이한 집안이었다.
작은 아버님은 젊은 날 스님들을 만나 진리를 추구,배우고자 하셨고 죽음에 대한 해답을 얻고져 하셨다.
내가 이십대 후반 작은 아버님을 뵈면 늘 나에게 한가지 종교를 가지라고 권하곤 하셨다.
작은 어머님이 암으로 돌아가신후 홀로 묘지에서 눈물로 찬송가를 부르며 작은 어머니를 보내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어느 날 사촌 동생인 아들과 함께 자리를 한 적이 있었다.
작은 아버님은 평소의 생각을 나와 동생에게 말씀 하셨다.
당신이 죽으면 내몸에 손대지 말고 옷입은 채로 깨끗한 무명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화장해 달라고 당부 하셨다.
"작은 아버지,동생이 그렇게 안해줄까봐 못돌아 가시는 거지요?
제가 꼭 옆에서 그렇게 해드리도록 할터이니 돌아가실 때가 되면 안심하고 돌아가십시요"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어차피 돌아가시면 유언이나 부탁이 별로 소용없는것을 알기때문이다.
고인의 의사보다 살아있는 자식들의 의사가 더 큰 법이다.
몇년후, 2008년 모로코 여행중 집에 안부 전화를 하다가 작은 아버지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확정된 한달간의 여행 일정과 항공 예약등을 취소 할수 없어 나는 여행을 계속했다.
여행후 돌아와 사촌 동생과 함께 작은 아버님의 묘소 납골당을 찾았다.
천주교 성당 납골당이었다.
결국 수의는 남들처럼 입힌 장례식이 되었고 당신이 평소 원하던 대로 화장만을 하여드린 셈이었다.
살아 생전 몇번이나 유언 삼아 말씀 하신 수의 문제는 허사가 되어 버렸다.
종교를 가지라고 내가 20대때부터 말씀 하시던 작은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얼마전 나에게 죽는게 무섭다고 고백하셨다.
아니 그렇게 오랜 시간공부하시며 죽음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셨냐고 반문했다.
병원을 하시던 작은 어머님을 찾은 환자중에는 작은 아버님의 행색이 너무 남루해 병원에서 일하는 분이냐고 묻는이도 있었다.
요즈음 사기도 힘든 검정 고무신을 신으시고 옷은 직접 실로 꿰맨 남방 셔츠를 입으셨던 작은 아버지 .
결혼식장에 오실 때도 작은 어머님이 사드린 새 양복은 집에 놓아두고 헌 양복을 입고 오시곤 하셨다..
강북에서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온 뒤 아들 내외의 아파트에서 살면서도 평소의 모습이 바뀌지 않으셨다.
그렇게 입고 다니시면 아들 내외가 아버지 학대한다고 아파트 이웃들이 말한다고 말씀 드려도 소신을 바꾸지 않는 분이셨다.
오죽하면 지하철 에 탔더니 어느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난다고 3,000원을 손에 쥐어 주더란 얘기를 하시던 작은 아버지.
마르시긴 했어도 키가 크고 인물이 좋으신 작은 아버지를 옛날에 잘살았고 많이 배우신 분이 몰락하셨나보다 하는 생각이들게 차림이 늘 그러하셨다.
아니 그것을 자랑이라고 말씀하시냐고 조카인 나의 힐난을 들으시며 빙긋이 웃으시던 작은 아버지다.
작은 아버님은 작은 어머님이 남기신 재산까지 굉장히 부자이시면서도 고조모님의 검소,근면을 늘 말씀하셨다 .
병적으로 보일 만큼 당신은 평생을 청빈하게 ,아니 기인으로 사시다 가셨다.
생전 크게 돈쓰신 거시라곤 시어머니를 3년간 모시며 수발한 나의 아내(질부)를 갑자기 불러 내어 점심을 사주고 금방에 데려가 효부라고 새긴 세돈 짜리 금반지를 사주신 것이다.
돌아 가시기전 엔 홀로된 시아버지인 당신을 신혼 새댁때부터 십 육여년을 모신 며느리(제수씨)에게도 상으로 금반지를 사주셨다 한다.
'살아온,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 감상 (0) | 2010.03.31 |
---|---|
법정 스님과 조주선사 (0) | 2010.03.23 |
장모-가족사 (0) | 2010.03.08 |
가족사(2)-증조부와 증조모 (0) | 2010.03.05 |
구속 (0) | 2010.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