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장모-가족사

Jay.B.Lee 2010. 3. 8. 07:25

작년 가을 딸 결혼 전 큰 처남이 7 순 기념 유럽 여행 간다 하여 우리 집에 모셨던 장모님이다.

  이번에는 맞벌이 하는 처조카 딸이 둘째를 해산하는 관계로 집에 들어온다 하여 집수리하는 동안 우리 집에 모시기로 했다.

딸도 결혼해 나간 터라    하나 밖에 없는  딸인 아내와   함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

맏며느리가 아닌 아내가 어머님  돌아가시기 까지 3년 수발들며  모신 것을  생각하면  나 역시 장모님에게 잘해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장남으로 수십년장모님을 모신 큰 처남 내외에게도  쉴틈을 주고 싶었다.

어쨌거나 부모님을 오래 모시고 산 처남이 제일 효자다.

장모님은 유관순 열사가 만세를 부르던 기미년 (1919년) 생으로 우리 나이로 아흔 둘로 98년 돌아가신 어머니와 동갑이며 원래  함경도 분이시다.

집으로 모신지 며칠 동안  식사를 거르지 않고 잘하시던 장모님께서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운명하실 실 것 같아 처남들에게 연락했다.

둘째 처남댁의 간청으로 큰 처남(교회를 다니지 않는다)의 처남인 목사 사돈이 새벽 예배를 마치고 방문했다.

목사님을 따라 아멘 아멘 아멘 세 번을 따라 하시던 장모님.

의식이 가끔 돌아와 아들과 며느리들를 알아보고 손으로  잘들 살란 이별의 인사를 한 뒤로 의식을  잃으셨다.

의식이 있을 때도 물한모금 못 넘기시더니 혼수상태에 빠지셨다.

혀는 말려들어가고 수족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마침 삼일절 휴일어서 손자와 손자사위들 까지 모두와 할머니를 뵙고 간 후 의식 없이 숨만 간신히 쉬시던   장모님.

계속 같은 상태라 하루 반을 함께 지켰던 처남들을 돌려 보내고 나중에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체중이 25키로나 될까 뼈만 앙상하게  남으신 장모님이다

링거도 맞기 어려운 상황이라 병원보다 집에서 임종하는 편이 낫다는 아내와 처가 식구들의 의견이었다.

숨 만 간신히 붙어있는 장모님을 보며 오래전 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생명"이란 단편 소설이 떠오른다.

누님의 어릴적 친구였던  *강난경 씨가   시어머니의 임종을 맞으며 쓴 소설이었다.

꺼져가는 불씨처럼 까뭇까뭇 빛을 발하는 하나의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잘 그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이틀이 지난 후 장모님은 지난밤 달게 자고 일어나신 듯 물과 식사를 찾으셨다.

죽으로 조금씩 식사를 하며 정상으로 돌아오신 장모님은 팔로 저 승사 지를 쫓으려듯   내젓던 기억이나 아들 며느리들 기억을 못 하셨다

손자들이 온 기억도 못하시고 단지 아내가 울던 것만 기억이 어슴프레 난다고 하셨다. 

수시로 식사를 조금씩 드시고 기력을  회복하여 TV를 보시기 위해 거실 안락의자에 앉으신 장모님.

그러고 보니 죄송하게도 나는 장모님이 함경도 분이라는 것 외에  너무 아는 것이 없었다.

장모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물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대답을 하신다.

장모님과 함께 살아  함경도 억양에  익숙한 아내의 통역을 거쳐 몇 가지 사실을 알았다.

장모님은 함경북도 명천읍에서 3남 4녀 중 여자 형제 중 둘째로 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셨다.

아버님은 농부이셨으나 장모님에겐  농사일은  시키지 않아해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19살 때 서울에서 양조장을 소유한 숙부를 도와 일을 하고 계셨던 동갑내기 장인과 고향에서 혼인을 치르고 서울로 오셨다 한다.

1937년경 일이다.

장인은 한산 이 씨로  집성촌이 있다는   함경북도 경성 군 어랑면(이북에는 면 단위가 없어져 현재는 어랑군 어랑 읍인 모양이다)이 고향이다.

처가는  아내의  할아버지  4형 제분들이 해방 전 이미 경성에 정착한 뒤  모두 서울에 살아 거의 서울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모님의 유일한 혈육인   막내 여동생은   서울서 사시다 10여 년 전 작고 했다.

19살에 고향을 뒤로한 뒤  고향을 가본 적이 없고 또 그나마 6.25로 막혔으니 고향이 얼마나 그리우셨을까

10여 년 전 연변에서 대학교수라는 큰오빠의 아들인 조카가 수소문해 찾아와 상면한 것이 친정 식구에 대한 전부다.

 쉬운 다섯에 장인을 먼저 보내고 굴곡진 삶을 살아오며 이제 아흔둘이 되신 장모님.

 생명의 끈질김과 경외감 속에서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시편 77;39

 

  *강난경:  43년생.   충북 영동.

영동 여고, 청주교대, 단국대 정외과 졸, 상명여대 대학원 미술과(석사), 숙명여대 대학원 국문과(석사), 카자흐스탄 국립 종합대학교 명예 문학박사 

교사, 화가, 소설 가등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지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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