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가족사(2)-증조부와 증조모

Jay.B.Lee 2010. 3. 5. 04:51

할아버지 얼굴도 뵌적이 없는 나로서 유일하게 남은 할아버지의 사진한장을 통해  거슬려 올라 간다.

족보에 남은 기록외 할머니 옆에서 자며 장손으로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사촌형.

 특권을 누리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주어들었다는  사촌형에게서도  특별한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진사 초시에 합격했다는 고조부.

그리고 3형제분이었다는 것.

고조부께서는 유일하게 증조부 한분만 두셨고 증조부께서는 화적떼를 피해 고개 너머 옆동네로 도망가시다  유탄에 맞아 돌아 가셨다.

마을의 제일 큰 기와집이선지 수시로 화적때의 공격목표가 된듯하다.

지금 같으면 금방 수술이라도 하시면 되었겠지만 납탄의 독성을 이기지 못하셨다고 했다.

사촌형이 작은 사진 한장에서 뽑아 확대해준 사진이  증조모의 유일한 사진으로 사진을 통해 조상을 뵙는다.

일화를 들어 보면 할머니에게 살림을 내어준후 증조모께서는 할머니의 살림 살이에 만족 하신것 같다.

증조모께서는 할아버지께서 재산을 정리하여 미국으로 가려하자  말리셨다고 한다

효자인 아들이라 어머니의 뜻을 받들었다고 하셨다.

간혹 그 얘기를 듣고 아 그때 미국으로 가셨어야 하는 동생이 있는데 그렇게 되었으면 우리는 태어나지 않은 거다.

서울서 집을 사서 살림 한적도 있는 할아버님이시라 여러가지 생각이 많으셨던 것 같다.

일본인들이 싫어서였는지 넓은 세상에 살고 싶으셨는지 .

 어쨋든  27명 손자들의 삼분지 일이 해외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실까.

증조부와 증조부께서는  할아버지 형제분과 딸둘(대고모)을 두셨다.

 한분은 청주 신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셨다.

청주  대가집으로 시집가셔 별명이 "호랑이 할머니"로 불리울 정도로  엄격하셨다.

호랑이 대고모 할머님덕에  친정 조카,손자들까지 충북 영동에서 청주  유학시 대부분  신세를 졌다.

집안들이 워낙 들락거려선지 진외가(할머니의친정)인 우리와 사이가 각별했다.

 

 

 1936년 ,증조모 장례를 치루고 찍은 기념 사진.

건을 쓴 두분은 상주로  작은 할아버님과 백부.

할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 사진 속에 안계시다.

74년전인데도 직계 상주만 건을 쓰고 심베옷을 입고 자손들은 요즈음처럼 희고  검은 상복을  입었다.

 십대 초반의 두 작은 아버님은 서울서  학교(당시 경기 전신인 제일고보)때문   안내려 왔는지 사진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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