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베트남

하노이

Jay.B.Lee 2006. 12. 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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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하노이 호치민 묘지

 

하노이의 신흥 아파트 지구에 자리 잡은 친구의 아파트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하노이 외곽에 자리잡은 60평 규모의 고급 고층 아파트 였다.
내부 시설이야 많이 뒤쳐쳐 있으나 더운 날씨와 프랑스의 영향으로 높은 천정이 마음에 들었다.
새벽마다 언제 들어 왔는지 베트남 파출부 아줌마가 아침상을 차려 놓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아줌마는 저녁을 차려놓고 퇴근하며, 낮시간에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친구는 퍽 궁금해 했다.
식탁옆의 노트와 돈은 장보고 오면 적는 현금 기록부라고 했다.

 

친구의 사무실은 "레닌 공원" 부근의 고급빌딩에 자리 잡고 있어 출근길 기사가 나를 레닌 공원에 내려주면 아침마다  산책을 해야 했다.
그 시간에 어느 곳이고 문을 열기에는 이른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총인구의 70프로 이상이 30세 미만인 베트남의 인구 연령층을 생각하면 레닌 공원 청소부가 전부 젊은 여자들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침마다 만나는 은퇴했다는 선생님은 음악도 없이 여자들에게 운동삼아 왈츠를 가르치고 있었다.
찻집옆에서 처음 만난 나 에게 수줍어 하며 차를 권하는  노처녀들의 인정도 고마왔다
물론 공짜차다.
맛있어 보이는 베트남 "바케트(프랑스 영향으로 빵을 많이 먹는다.)"를 도시락 삼아 공원을 찾은 젊은이들이 있어 물어보니 한처녀는 여자 친구요 여학생은 여동생이라며 수줍게 웃는다.
때 묻지 않은 모습들이 너무 좋았다.
우리들도 예전엔 외국인들에게 그렇게 보였으리라.
귀국후 찍은 사진과 함께 가벼운 선물 몇개를 그네가 적어준 주소로 보냈었다.
한달후 인수 거절되어 돌아온 소포를 보며 내가 경솔하지 않았나 후회가 되었다.
 세금으로 낼돈이 그들에겐 큰 금액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해서였다.

 

이미 한번 보았다고 나만보면 달려오는 오토바이 택시 아저씨의 단골이 되어 뒤에 매달려 타고는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에 합류하여 달리는 스릴을 맛보았다.
경륜이 오래된 아저씨의 오토바이 솜씨는 감탄할만 했다.
모두다 은행 강도 처럼 매연 및 햇볕을 피해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출근길을 달려가는  광경은 장관을 이룬다.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 있었던 "문묘" 정원 연못의 분홍색갈 연꽃이 그렇게도 고왔다
옆의 작은 책점에서 *"조용한 미국인"을 찾으니 조잡한 인쇄술로 만든 문고판만한 영문 소설을 보여준다.
영화를 만든 호주의 감독은 책이 작아 처음엔 시집인줄 알았다지 않는가.
베트남은 미국의 개입을 부당하게 생각하며 베트남을 옹호해 줄수 있는 소설을 꾸준히 팔고 있나보다.


일부 남아있는 "호로아(Hoa Lo) 수용소"는 프랑스가 지은 감옥으로 베트남의 애국지사들을 감금하고 처형했던 곳으로 안에는 그들을 기리는 조각들이 있었다.
 조각 옆으로 남아 있는 두대의 단두대(길로틴)와 단두대 아래 커다란 대나무 상자들이 용도를 말해주고 있었다.
 떨어진 목과 시체를  담는 통인 셈이다.
또한 고문 기구들은 언제나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미술박물관의 그림은 전쟁과 관련된 작품이 많았다.
당시 화가들의 주머니 사정이겠지만 대부분은 유화 대신 빛바랜 수채화다.
호전적,선동적인 그림은 예상외로 하나도 없고 전쟁을 위해 떠나는 가족과의 이별,헤어지는 슬픔,고향을 뒤로하고 떠나는  아버지,아들,딸들의 모습이  애처럽게 그려져 있었다.
베트공-공산주의자들 이전에  그네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외국 지배세력에  끊임없이 저항해온 그들이 아니던가.
남의 입장에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필요도 있다.
입장을 바꾸어보면 가해자가 피해자인 경우도 많은 법이다.

 

대성당을 찾기위해 지나가는 지적으로 보이던 키 큰 여성에게 물어 보니 지나는 길이니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싱가폴에서 왔으며 학교 수학선생님이라고 했다.
어쩐지 영어가 유창하다고 생각 했었다.
시내 중심에 자리잡은 호안 끼엠 호수 벤치에 앉아 있던 외국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영국인이고 은퇴후 이곳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왜 하노이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는지 알만하다고 했더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은퇴후 하노이나 호치민에서 한국어 무료 교습 봉사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은 깨끗하지 않을지라도 "호안끼엠" 호수는 하노이의 중심이요 많은 카페와 외국 명품가게로 그런대로 화려하다 할 수 있다.
카페에서 화이트 커피 한잔을 시켰다.
 밑에 연유(우유가 아니다)를 붓고 위에 커피를 넣은 것으로 휘젓을때 *흑과 백이 섞여져 혀끝을 자극하는 달콤한 맛이 여행자를 기쁘게 한다.
가격은  1달러.
더우기 마음에 드는 것은 세련되고 허리가 가는  베트남 처녀 종업원의 친절과 미소다.
호수옆 벤치의 뚱뚱한 흑인 여성은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을까.
나이는 40대초반으로 보였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왔다는 그 여성은 말 벗이 그리웠나보다.
짐바브웨에서 피해 나왔으며 현재 이곳에 선생님으로 취업 신청중이며 지금 대기 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대학은 그곳에서 나왔으며 화학을 전공했다고.
흑인이라고, 아프리카인이라고 무지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무지의 소산이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이라 친구와의 저녁 약속이 있어 더 이상 그녀의 얘기를 들어 주지 못하고 아쉽게 일어서야 했다.
참으로 먼곳까지 온 그녀에게 행운을 빌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지금도 그곳에서 사온 비싼 연꽃차(한푼도 못 깎았다)의 향기는 가끔 마실 때마다  하노이를  생각하게 한다.
*Cyclo를 타고 한가롭게 돌아보던 시간속 여행을 통해 월남전에 참전하지 않았음을 감사했다.
1970년 "맹호부대"로 왔더라면 이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여행하는 동안 맘이 편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먹을 것이 좋고 덜 복작거리는 거리며 교통문제만 제외한다면 정말로 괜찮은 도시가 하노이다.
특히 좋아하는 망고가 크고 향기로와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도시다.

 

참고로 한시간 반이 걸리는 베트남 "발마사지"는 5불이며 대성당 부근의 최고급 이발도 5불이다.
단체 관광객들은 발마사지에 20불씩 가이드에게 털려야 하며또 팁이 포함되었는데도 추가 팁문제로 시비가 붙기도 한다.
브라질 다음 커피 최대 생산국인 베트남에서 최고 품종인 "로부스타(Robusta)'"원두 커피를  "항자"시장 도매상 아주머니에게서 한봉지에 4불30전씩 3봉지를 샀다.
마지막 단체 저녁식사를 하던 서울 식당(하노이 최고급 호텔중하나인 대우 호텔부근)옆의 대형 선물 가게에선 18-20불이다.
 하노이 공항에서는 7-8불.
베트남 커피를 안먹어 봤다고 한다면 잘 못알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마시고 있는 인스탄트 커피의 대부분은 베트남 산이다.
우리나라에서 2005년 수입한 베트남 커피는 1억 4천만불(1320억원)이었다.

우리는 향후의 베트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발전 속도는 과거의 한국과 유사할 것이다.
젊은 연령의 8천만명의 인구.
3면이 바다이며. 3모작내지 농작물을 바꿔가며 심는 3기작이 가능한나라.
풍부한 자원과 수산물.석유자원까지.
국민은 영리하고 근면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훌륭한 지도자 뿐이다.
죽은자의 시신(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호치민" 할아버지로 하노이 호치민 기념관에 모셔져 있다.)을 붙잡지 아니하고도 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지도자.
현재도 "인도차이나"에서는 제일 잘 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조용한 미국인(the Quiet American)>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을 영화한 것으로 호주 필립 노이스 감독 작품(2002년도)
영국 배우 마이클 케인,브렌든 프레이져,도티 하이엔 주연.

1952년,사이공 특파원 런던 타임스 기자 "파울러"(마이클 케인)는 본국의 본처와는 멀어진채 술집 댄스홀에 나오던 "퐁"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우연히 미국인 사업가 "파일"을 알게 되고 이들은 삼각관계로 이어지며 그 사이 사이공의 "테"장군은 프랑스군과 "호치민"에게 개인 군대를 조직하여 대항하게 된다.
그 배후에는 사업가 아닌 OSS(현 CIA)요원 파일이 있음을 알게되고 파울러는 결심을 하고 파일을 살해한다.
그것이 베트남이 "조용한 미국인"을 좋아 하는 이유다
 통킹만에 정박한 미국선박을 베트남이 공격하였다는 소위 조작된(?)"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하였다고 믿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흑과백>

 

토니 커티스와 시드니 포이티에가 주연한 영화로 죄수인 그들은 호송중 수갑에 같이 손이 묵인채 탈출한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60년대 영화로 영화에서도 백인과 흑인인 그들은  비록 손은 같이 묶였어도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한다.
그러나 어쩌랴 그들은 공동 운명체인 것을.
스토리는 다 기억이 나지않지만 그들은도주를 계속하며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고 나중에는 우정이 싹터간다는 그런영화로 영화 자체도 흑백영화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토니 커티스는 작크 레몬과 함게  "뜨거운 것이 좋아",커크 다그러스와 "바이킹"에 출연하였으며
시드니 포이티에는 60년대 대 스타로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초대받지 않은 손님","밤의 열기 속에서"열연후 그 이후는 특별한 작품이 없다.
그 이후 이어온 유명한 흑인 배우가 없었으나  덴젤 와싱톤이  시드니 포이티에 이상의 연기로  허리우드에서
 명성을 쌓아가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Cyclo

 

세발로 된 택시 자전거를 의미하며 영화 "그린 파파야향기(The Scent of Green Papaya)"를 감독한 트런 안 홍 감독(베트남계 프랑스인) 작품으로 1995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양조위,레반 록 및감독의 아내 트란 누 엔-케가 주인공이다.

호치민 빈민가 출신의 소년은 유일한 생계수단인 Cyclo를 건달들에게 빼앗긴다.
시클로 대여료를 갚기 위해 자신의 수하에서 일하라는 갱두목의 권유에 소년은 조직에 가담하여 서서히 악의 세력, 범죄세계로 빠져든다.
소년은 마침내 "시인"이며 갱조직의 두목인 양조위의 조직에 가담하게 되고, 말이 없고 음울한 시인은 소년의 누나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매춘을 알선한다.
소년의 누나는 시인을 사랑하며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받아 그를 위해 매춘까지 나서게 된다.
소년은 범죄조직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어느날 시인이 알선한 매춘에서 소년의 누나는 순결을 잃고 만다.
 이를 안 시인은  화염속으로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만다.
파국으로 치닫은 결말뒤 소년은 오늘도 마약운반을 위해 Cyclo의 페달을 밟는다.

사랑하는 여자를 매춘-몸을 파는 것은 아닐지라도ㅡ시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영화를 보고 난뒤 뒷맛이 개운치 않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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