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동유럽여행

크로아티아(E-18)-자그레브

Jay.B.Lee 2007. 1. 1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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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미로고이(Mirogoi)묘
       국민이 사랑한 유명 농구 선수였는지 큰 묘비석(Tombstone)이 인상적이다.


"자그레브."
금번 여행의 주 목적지인 두부로부니크를 가기위해  크로아티아에 도착했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도착한 역에 내리는 승객은 많지 않았다.
우선 크지 않은 역밖으로 나왔다.
어느 역앞이나 그렇듯 택시들이 줄서 있고 멀리 동상과 광장이 보인다.
아무도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곳.
혼자서 광장을  바라보자니 갑자기 30여년전 낯선 미국땅에 가방 하나와 단돈 260불을 들고 이민갔다던 사람 생각이 났다.
생존을 걱정하는 이민자와 여행자와 비교할 수 없음에도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은 혼자이기 때문일게다.
역사 안으로 다시 들어가 유로화를 크로아티아 통화 "쿠나"로 환전한뒤 5월의 밝은 빛이 내려쪼이는 역앞으로 걸어 나왔다.
무엇보다 먼저 시외버스 터미날을 찾아 가야 한다.

처음 만나는 남녀의 상면시  첫인상은 30초 이내에 결정되어 결혼에 이르기도 하고 그날로 헤어지기도 한다.
낯선 곳의 첫인상이란 도시의 청결함과 사람들의 친절에서 결정된다.
좋은 인상을 가지고 스스로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친절해 보이는 사람,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선별할줄 알아야 한다.
첫출발이 좋아야 하는 법이니까.
인상이 좋아뵈는 청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준수한 청년은 6번 Tram을 타고 오른쪽 방향으로 1키로미터 가면 되며 약 5분 정도 소요 된다고 했다.
"흐발라(Hvala)"
감사하다는 크로아티아 말이다.
버스 터미날을 그는 "아우토부스니 콜로드바"라고 했다.
길건너 Kisok에서 승차권을 샀다.
8쿠나로 약1,300원 정도니 교통요금이 비싼 나라다
정말 5분뒤에   큰 건물에 "Autobusni Kolodvor Zagreb"라고 씌인 버스 터미날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자를 위한 Information 창구에서 버스 출발시간을 확인하고 짐 보관소를 물었다.
버스표를 사고 아래층에 위치한 짐보관소에 짐을 맡겼다.
버스는 자그레브에서 저녁 9시 5분 출발,두브로브니크에 아침 6시 21분에 도착하는 것으로  요금은 186.6쿠나(약30,000원)다.
보관소에서는 여권을 제시하고 여권 번호를 기재한뒤 여권과 물표를 받았다.
몇시까지 여느냐는 질문에 24시간 개방하는 곳이라며 나이든 두 아저씨가 능숙한 솜씨로 선반으로 여행 가방을 옮겼다.
시간 절약을 위해 버스표의 버스 승강장을 확인해 두었다.
기차나 버스표를 사면 승강장의 정확한 위치를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그러면 서두를 필요가 없어지니까.
장거리 버스들은  화장실까지 있는 최고급 버스로 긴 시간 여행을 하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이제 이곳에서 6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반나절 정도면 자그레브 관광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먼저 유럽에서 아름다운 묘지중의 하나인 미로고이(Mirogoi)묘지를 가보기로 했다.
트렘을 타고 갈아타야 할 곳을 친절히 가르쳐주는 가르쳐주던 중년 부인은 영어도 잘했고 참으로 자태가 우아했다.
그리고 자그레브는  큰 곳이 아니라서 볼 것이 많지 않다고 미안한듯  덧 붙였다.
갈아탄 트렘에서 할아버지가 내려야 할곳을 또 가르쳐 주었다.
길을 따라 5분을 걷자  꽃과 유리병에 담긴 초를 파는 가게가 보였다.
유리병 색갈은 빨간색 아니면 보라색이었다.
바로 미로고이 묘지 입구였다.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길을 따라 다 돌아 보기에는 벅찰 듯 싶어 입구에서 가까운 곳 몇 곳을 돌아 보기로 했다.
국내 여류 작가로 외국 유명 문학가의 묘지를 돌아보며 묘지 기행을 쓴 분이 있다.
죽음에 대한 성찰이 주는 안식이란 참으로 묘하다.
실제 묘지를 둘러보면서 죽은 자들과 가까이 대화하고 싶었던 것일까.
묘지는  어릴때 가졌던 더 이상의 두려움이 아니다.
어린시절을 보낸 충북 영동에서 역 뒷편 산밑에 위치한 2층짜리 구세군 병원 건물뒤의 공동묘지와 밤에 울어대는 부엉이 울음소리는 어린 마음에 얼마나 공포감을  주었던가.
이젠 잠든 그네들을 기억하며 죽음으로 평화를 얻은 그들을 보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살아있는 동안 그들은 죽은 것이 아니다.
한 묘지 앞에서  흐느끼며 기도하고 있는 청년은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걸까
손자, 손녀를 데려와  돌아간 남편의 검은 묘석를 닦고 치우며 조화와 초가든  붉은병을 정리하는  허리 굽은 노부인은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안다.
커다란 검은 묘석위의 남편 이름뒤엔 1925-2000.
Nada 할머니의 이름뒤엔 1929- 공란으로 되어 있음을 본다.
부근에 자리 잡은 화려한 묘비의 사진엔 긴 머리를 한 처녀가 해맑게 웃고 있다.
1973 출생-1993 사망
그녀의 이름은 Marijana.
어찌 이 아름다운 세상을 20년 밖에 못살고 부모의 가슴에 지을 수 없는 슬픔을 남기고 떠난 것이냐.
내일일을 모르는 모르는 세상에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떠났다.
우리의 삶의 모습도 여러가지인것처럼.

 

 

걷던 길에서 방향을 틀자 젊은 인부 둘이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콘크리트로 깊게 벽을 치고 있던 그들에게 몇명이나 안치하느냐 물어보았다.
4명을 넣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가족 묘지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미로고이 묘지는 구릉을 이용해 아득하게 만들어진 공원같은 묘지였다.
비엔나 중앙묘지처럼 화려하지 않고 아담한 느낌을 주는 곳이라고 할까.
묘지가 아름답기로는 붉은 대리석으로 화려한 몬트리얼 시내를 내려다보는 몽로얄 묘지다.
보스톤의 묘지들은  광택이 없는 검은 돌들로 기괴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묘지를 사는 곳에서 멀리 만들고 일본과 북미는 늘 사는 곳에 가까이 만들려고 한다.
사는 동안 죽음을 가까이하고 친해져야 남은 삶이 더욱 행복하지 않을까.
미로고이 묘지를 나서자  지붕이 둥근 아취형의 고색 창연한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었다.
성당인 줄 알았는데 들여다보니 장례식장 건물이다.
버스종점인 곳에서 어느 버스나 Downtown으로 지날 갈 것 같아 버스 승차권을 기사에게 사려하자 기사는 거스름 없다고 웃으며 그냥 타라고 한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그렇게 모두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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