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동유럽여행

두브로부니크(Dubrovnik)-크로아티아(E-20)

Jay.B.Lee 2007. 2. 7. 12:17

 

 

 

 

사진:


아드리아해를 내려다 보고 있는 언덕위의 주택들

구시가지가 있는두브로부니크 성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사람이 살아 오면서 우연히든 아니든 남의 영향을 받게 된다.
고교시절 모두 충북대학교에 단체로   국회의장 *이효상씨의 강연을 들은적이 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한마디는 칠판에 써놓은 강연 제목이다.
"인생은 공짜다"
여행의 목적지를 정할때도 남의 영향을 받을 때가 있다..
특히 단체 여행도 아니고 자유여행을 함에 있어서랴.
근사한 여행잡지의 사진이나 기고가의 달콤한 소개서,TV방송에서  보여주는 이국적인의 풍경,모험에 가까운 여행기 또 영화에서 각인된 인상적인 장소들로 인해 목적지를 고르게도 된다.
두브로부니크를 알게되고 가보기로 작정한 것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여행기 "두브로부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를 쓴 *권삼윤씨의 책을 읽고 나서 7년이 지나서였다.
그는  사진 밑에 이렇게 썼다.
"사이프러스와 올리브 나무의 해변 너머로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심장 박동이 멈추는 듯 했다"
그 한마디가 나를 이 먼곳까지 오게한 이유다.


조용한 새벽 바다를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한시간여만에 도착한 두브로부니크 버스 정류장은 작고 깨끗했다.
당초 정류장에 도착하면 민박("소베"라 부른다)에서 나와 있다는 정보에 의지해 온것이지만 한국아가씨들을 만나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유스 호스텔에 예약이 되어 있다고 해서 성수기도 아니고 해서 같이 가보기로 했다.
새벽 7시 전인데도 여행객을 잡으러  민박집 아주머니 둘이서 나와 있었다.
어느 세상에나 Early Bird 들은 있게 마련이다.
두 한국인 처녀는 28,29세 정도로 되바라지지 않은 참한 아가씨들로 C양은 올리비아 핫세처럼 큰 눈에 긴 머릴하고 있었고 W양은 작은 키에 햐얀 피부를 가진 귀여운 아가씨였다.
둘은 친구로 한국에서 따로 따로 왔고 오스트리아에서 만나 같이 이곳에서 여행을 하고 C양은 다시 이곳 저곳을 여행하고 W양은 파리로 가서 공부를 할것이라고 했다.
오! 한국의 비극이다.
대학 졸업후 취직도 안되고 방황하는 고뇌가 많은 젊은이들이 아닌가.
여행에만 전념하기로  하자.
신상에 관한한 자기가 스스로 밝히는 것 말고는 묻지 않는 것이 예의다.
문제는 w양의 가방었다.
작으키에 자기 몸무게만한 가방도 무겁지만 여행가방의 네개의 바퀴중 하나가 여행중 떨어져나가 낑낑대며 가방을 미는 모습을 보니  나인 있지만 명색이 남자로서 그냥 둘 수 없었다.

 가볍고 성능 좋은 내 가방과 바꿔세바퀴로 균형을 잡으며 250미터정도를  덜덜거리며 힘들게 밀고 갔다.
방향이 이상하다고 자기 스스로 자꾸 미심적어 하는 w양의 손에서  Lonely Planet에서 나온 영문 "신발끈(shoestring)" 여행 안내서를 건네받아 호스텔 안내도를 들여다 보았다
우리가 내린 곳은 Bus Station인데 구시가지의 Bus Stop 표지를 버스 터미날로 본데서 온 오해였다.
여자가 군대 다녀오지 않아 독도법에 익숙치 않은 것을 탓하랴.
버스 정류장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호스텔은 버스 정류장에서  400여미터 정도로 언덕길이 가방을 밀고 가기엔 무리다.
크로아티아 통화 쿠나를 환전하지 않아 버스비도 없고 그냥 가방을 밀고 가겠다는 w양에게 버스비는  내가 내주기로 하고 고집장이 아가씨를 달래어 간신히 버스에 태웠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100미터 다시 간곳에서 호스텔 표시가 있었는데 50여 미터의 경사가 급한 돌계단이 떡 버티고 있었다.
50미터 계단을 걸어 올라 w양의 가방을 운반하는 것은 당연히 내몫이 되어 버렸다.
여행겸 공부겸 무거운 가방을 가져온 L양을 탓할 게재도 아니다.
역이나 버스 정류장의 짐보관소를 잘 이용하여 짐을 분리해 가지고 다니기엔 경험이 부족하다.
 다행히 여행 오기전 3개월간 아파트내  소위 헬스 클럽에서 집중적으로 훈련한 걷기와 다리 근육운동이 크게 도움이 될줄이야.
호스텔입구에 도착하니 호스텔 밑집의 할머니가 나와 숙소를 보지 않겠냐고 권한다.
35평 정도의 집으로 방을 보여 주는데 더블침대가 너무 깨끗하고 커다란 옷장이 있었다.
침대를 눌러보니 딱딱한 것이 한국인 체질에 딱 막을성 싶다.
가격은 혼자니까 아침없이 하루 100쿠나(16,000 원 상당)로 독방인 것이 좋아 그곳에 묵기로 결정했다.
윗집인 호스텔은 도미토리로 아침 포함 98쿠나에 예약했다고 한다.
남에게 좋은 일을 하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 있는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우리나라 처녀들을 돕다가 좋은 숙소를 찾게 되고 그네들도 나를 만나 오는 길이 훨씬 쉬웠을줄 믿는다.
우리 인생의 여행길에도  때론 훌륭한 동행 혹은 도반이 필요하다.
구경 잘하란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할머니에게서 다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필요한 영어를 간신히 구사하는 할머니의 얘기는 이랬다.
할머니 이름은 두브로브카(Dubravka Vnucec).
민박은 관인 민박으로 정해진 가격을 받아야 하고 시설에 대해서는 시의 감독을 받으며  내가 먼저  다녀온 앞집은 불법이고 주인 아낙이 앞뒤말이 다른 사람이라고 흉을 본다.
 할머니집은 2층 집으로 독립된 2세대 집의 1층이다.
방은 모두 3개로 화장실에는 순간 온수기가 달려 있다.
주방과 냉장고는 편하게 쓰고 화장실에 있는 소형 세탁기도 무료로 쓸수 있고  원하면 아들방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거실을 겸한 식당에는 구형 칼라  TV가 한대 있어 할머니의 유일한 소일거리로 보였다.

식당 탁자위의 투숙자 명부 옆에 있는  커다란 영어사전으로 수시로 공부한다는 할머니가 존경스럽다
 식구로는  은퇴한 영감과 아들, 방 안내시  따라 들어왔던  누런 잡종  고양이가 전부라고 했다.
 할머니 자신의 모토는 여행자 손님을  가족처럼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말이지 이틀간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할머니는  나를  가족처럼 극진히 친절하게 보살펴 주었다.

 


*이효상
       1906-1989
       1930.도쿄 제국대 독문과 졸업.
       정치가,시인,교육가,철학자,신앙인 (천주교)
       경북대학장,국회의장,영남대이사장,국회의원


*권삼윤.
      1951년 경남 고성 출생
      외대 무역학과 졸.
      1981년부터 전세계 60여개국 이상 탐방,문명 비평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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