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동유럽여행

크로아티아(E-19)

Jay.B.Lee 2007. 1. 26. 12:11

 

 

 

 

 

사진:자그레브 "성 스테판 "성당 앞

 

 

한국에서 떠나기전 사촌형은 크로아티아는 위험한 곳이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이제 거의 복구가 끝났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기 시작하고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확실한 정보를 믿고 온 것이다.
그저 막연하게 멀리서 보면 선입관이란 그렇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확한 사전 정보가 중요하다.
그네들의 과거를 보면 1941년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세르비아인,유태인,집시를 포함 35만명의 인종 청소가 있었고 독일의 괴뢰 파시스트 정권에 대항하여  2차대전이 끝날때 까지 100여만명이 죽기도 했다.
불과 15년전인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크로아티아내 독립을 원하는 크라지아 세르비아인과 이를지원한  유고 공산군(대부분 세르비아인)에 대항한 크로아티아의 인종 전쟁은 EC와 유엔의 개입으로   어렵게 해결이 된 곳이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지인 두브로부니크에도 1991년 까지도 큰 폭격이 있었으며 1995년이 되어서야  겨우 안정을 찾은 나라다.
언어가 틀리면 적으로 간주, 싸움을 일삼던 과거 파프 뉴기니아 제도의 수많은 부족에 비하면 인종 문제로 싸운다는 것은 조금 나은 편인가.
폴란드,크로아티아,항가리 모두 알고보면 기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버스를 타고 언덕길을 내려 가자 주차해있는 관광 버스들이 보였다.
무조건 내려 보는 거다.
볼거리가 있는 곳일 터이니.
성 스테판(St.Stephen)성당이다.
두개의 첨탑이 특징인 성당으로 안들어 가보면 후회될 것 같아 안에 들어가 둘러 보았다.
유럽에서 볼 것중엔 많은 궁전,성,박물관이 있지만 제일 많이 보게되는 것은 성당과 교회다.
각기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고 특징들이 있다하더라도 많은 곳을 돌아보면 다 비슷해도 보이고 그것이 그것 같은 느낌이다.
그 규모와 화려함의 차이가 있다 치더라도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수많은 사찰들을 서구인들이 돌아보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성당을 둘러보고 나오니 20명이 채 되지 않는 한국 단체 관광객이 보였다.
모두 60대 중반들로 모임에서 온것 같았다.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곳까지 관광 코스로 넣었다면 누군가 상당히 세심하게 코스를 짜 준것이다.
보통 크로아티아는 일반적인 여행 코스에는 포함이 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유럽 여행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프라하,비엔나,부다페스트를 돌아보는 일정이다

먼 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다음에는 어디로 가시냐고 물어 보았다.
바다옆 해안을 따라-아드리아해를 말하는 것이다-간다는데 어딘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자기가 갈 곳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한둘도 아닌데 내일 가는 곳을 모른다해서 이상 할 것도 없다.
아마도 동쪽으로 있는 "두브로부니크(Dubrovnik)" 아니면 서쪽의"스프릿(Split)"일 것이다.
혼자 여행하느냐고 묻더니 나더러 굉장히 용감하다고 한다.
부럽다고도 했다.
알고 보면 또 실제 해보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것을 어렵다고 생각할 뿐이다.
예를 들어보기로하자..
롤러 코스터는 상당히 무서워 보인다.
타는 것들이 전부 빠르고 무서워 보여 안타는 사람들이 있다.
타보기도 전에 괴성에 압도된다.
사실 괴성도 알고 보면 자신이 무섭다기보다 뒷줄에 앉아 있는 사람들 겁을 주는 재미로 소리지르는게 대부분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저것을 타고 죽은 사람이 있나.
의자에서 못내려 온 사람이 있나.
일단 타보고 몇 번 타다 보면 그 빠르던 공포감은 어디로 가고 롤러코스터도 점점 느리다고 느끼게 된다.
시작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자유 여행에 필요한 것은 돈과 약간의 용기와 약간의 불편을 감수할 인내심이 필요할 뿐이다.


성당을 뒤로 경사진 길을 따라 걸어 가니 바로 다운 타운이다.
자그레브는 한마디로 옛것과 현대가 잘 어울려 가는 도시였다.
88 올림픽 직전 술한잔 얻어 먹고는 조선 호텔이나 플라자 호텔에서 덕수궁을 내려다 보며 서울은 12차선 도로에 옛것과 현대가 잘 조화 된 도시라고 아부하고 가던 외국 기자들 보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다.
퇴근 무렵이 되어선지 도시는 활기 찼고 뒷골목 넓은 공터에는 수많은 노천 카페는 유쾌하게 떠드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모든 모습들이 선진국 못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잡아 가는 듯 보인다.
낡은 트렘과 옛 건물 사이로 최신형의 트렘이 달리고 현대식 건물들도 자릴 잡고 있다.
이 나라의 정책이 새것은 최 첨단을 지향하는 한 향후 많은 발전을 할 것으로 보였다.
도시의 젊은 남녀들은 골격들이 상당히 좋았다.
키들은 모두 크고 뚱뚱한 사람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단지 피부 고운 예쁜 미인들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유감이었지만.

뒷골목으로 돌아가자 우리나라 "모닝 글로리"문구점 간판이 눈에 보였다.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현대 "포니"를 보고 반갑다더니 내가 그랬다.
자동차나 집집에 달린 LG 에어컨 보다도 더 반가웠다.
한국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며 왜 내가 이 노트를 한국에서 아니사고 크로아티아에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계산대 여종업원이 내말의 의미를 아는지 웃는다.


보는 것이 남는 것이다라고 젊은 시절 해외 출장을 가서는 업무가 끝나기 무섭게 밤늦게까지 돌아 다니던 동료의 정열이 이젠 부럽다.
돌아 다니는 것 만큼 휴식도 중요한 나이가 되어 버렸다..
자그레브 오페라 하우스 옆 카페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노란 건물의 오페라 하우스는 외관상 소박한 모습이다.
웅장함,화려함보다 단아한 모습이다.
오페라 하우스를 둘러싼 화단에는 보기힘든 보라빛 튤립이 활짝 피어 있다.
흔히 보는 빨강,노란,하얀 빛갈의 튤립보다 보랏빛이 은은하게 건물과 잘 어울렸다.
여행중의 커피 한잔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여유와 휴식을 스스로 취하며 다음 일정을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
카페는 바로 오페라 하우스 옆인데도 실내 장식은 수수했고 깔끔한 탁자들이 마음에 들었다.
화려하게 눈길을 끄는 장식이 없으면 어떠한가.
커피만 잘끓여 내고 깨끗하면 그만이다.
카페를 둘러 보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젊은 비지니스 맨들이 컴퓨터를 꺼내 놓고 일을 하고 있고 한 학생은 노트를 꺼내 공부를 하고 있고 남녀들이 만나 노닥거리는 모습은 없다.
커피값은 1유로(1,200원)였다.
서울에서 Coffee Shop에서 커피 마시기가 겁이 나는데 여행을 나오면 부담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어 얼마나 좋은가 .
확실히 우리나라 커피값,음식값은 문제가 있다.
고급 음식점이 아닌 대중 음식점도 음식과 커피를 함께 주문하여 먹고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숫가락 놓자 마자 일어서줘야 하니 먹는 것도 전쟁이다.
언제 부터인가 사람을 만날때 12시 40분경에 만나 1시에 점심을 먹는 습관이 생겼다.
스스로 여유있는 점심도 들고 싶고 이젠 젊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않는 것도 예의요 지혜이지 않을까.


자그레브를 떠나기전 처조카 시누이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공중전화를 해야 하는지 몇번 시도 하다 포기를 했다.
영어 설명이 없는 탓으로 돌리자.
내가 언제 오는 지도 모르는 와중에 공연히 부담만 줄것 같아 그냥 떠나기로 했다.
짐을 찾아 버스 아랫칸에 실었다.
요금이 7쿠나(1,100원)로 기사가 별도로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여행가방 운반비를 별도 청구했다가는 맞아죽을 일이요 그 회사는 즉시 망하고 말 것이다.
하기는 북미에서도 예를 들어 운동화를 사면 여벌의 운동화끈(Shoelace)은 별도로 돈을 지불해야 하고 컴퓨터를 사도 모든 연결 케이블은 별도로 대금을 지불해야 한다.
문화의 차이이다
밤버스엔 손님이 많지 않아 두개의 시트에 한사람꼴로 앉았다.
무조건 잠을 자는 것이 급 선무였다.
어두운 바깥 구경을 할 것도 아니요 잠을 자는 동안 누가 훔쳐 갈 것도 없어 안심하고 긴장을 푼채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을 청했다.
버스 기사들은 거의 두시간 간격으로 교대 운전을 했고 쉬는 기사는 짐을 내려주고 새로탄 승객에게 표를 팔고 하는 것이 임무였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훌륭한 제도다.
잠이 좀 깨자 2인용 의자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만들어 보려 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꼬부라진 등을 펴보고자 이런 자세 저런 자세를 만들어 보아도 편한 자세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졸다 깨다 졸다 깨다 날이 어스프레 밝아올 무렵 휴게소에 도착했다.
새벽 5시반.식당과 매점을 겸한 한집뿐인 마지막 휴게소다.
버스라곤 우리가 탄 단 한대 뿐.
8시간 동안 꼬부라진 등을 펴는 길은 나가서 팔다리를 흔들어 주는 일이다.
에스프레소와 물한잔을 주문하고 (600원) 화장실로 달려 갔다.
우선 무료인 것이 무척 기쁘다.
돈을 내다 공짜로 일을 보니 횡재한 것이다.
여행중의 요령.
공짜 화장실은 무조건 들려 항시 빈 탱크 상태로 만들어 둘 일이다.
커피를 마시고 나오니 동양 아가씨가 가게 앞을 기웃거린다.
남자들만 카운터에 앉아 커피들을 마시고 있어 물어보기가 민망한 모양이었다.
한국 아가씨가 틀림없다.
한국인이죠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동포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 왼편으로 가면 무료 화장실이 있다고 친절히 일러 주었다.
급한 사람을 돕는 것은 기본 예의요 여행중 화장실을 잘 일러주는 것,물어보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언젠가 말하지 않았던가.
여행이란 먹는 것,자는 것,싸는 것이 편해야 즐거운 것이라고.
버스 옆에선 세명의 외국인 젊은이들이 떠들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어디서 왔냐고 물어 보았다.
그중 한명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토론토 "마캄"(Markham-서울로치면 의정부시 정도)에서 일한적이 있다고 하자 정확히는 토론토 북쪽 "오를리아 "에서 왔다고 했다.
그곳 호수에서 가족과 함께 작은 모터보트를 렌트해 낚시를 한적이 있었다.-고기가 물려 올라 오느것이 지겨울 정도 였으니 그걸 보고 물반 고기반 이라는거다.
그는 참 이상한 인연이라고 했다.
자기도 한국 "진주"에서 영어 선생을 했었다고 했다.
각각 상대방의 나라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먼 크로아티아 여행길에 한버스를 타다니.

What a small world!

때론 세상이 얼마나 좁은 것인지 그는 한참을 더 살아 보아야 한다.
화장실을 다녀온 아가씨는 친구라고 옆의 아가씨를 인사 시켰다.
세수도 아니한 부시시한 얼굴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그래도 반가웠다.
25명 정도의 여행객중 3명이 한국인이라면 결코 낮은 인구 분포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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