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일상의 날들(1)

Jay.B.Lee 2023. 10. 7. 10:59

사진: 서소문 단골집 "고려 삼계탕''-19,000원

 

오랜만에 전 직장 친구를 만나 점심을 하기로 했다.

중국집과 삼계탕집중 친구들이 슬슬 삼계탕으로 자리를 옮긴다 

당뇨병으로 분식을 피하기 시작한다.

친구는 우리가 배재빌딩 4층에 근무했다고 했다. 

50여 년 가까이 되니 총기가 많이 떨어졌나 보다.

아니 7.8.9층을 사용했고 9층엔 식당이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맛있는 삼계탕을 먹으며 말실수까지 한다

집에서 안사람이 만드는 삼계탕이 더 맛있다고.ㅎㅎ

 

 

코로나로 집에서 자가치료 중이다. 

오늘 마지막으로 "팍스 로비드"를 먹으면 된다.  다 나았어도 투약을 중지하지 말라 약사가 당부했다.

대신 아내가 나에게서 감염 되어 이틀 후 증상이 나타나 회복 중이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주에 저장된 사진을 꺼내 정리해 본다.

걷고 먹고 맑은 푸른 하늘구름을 올려다보면 행복인 것을. 

 

 

배재 대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중학교 글씨가 붙어 있는 대형 건물. 

처음 와 보는 사람들은 이곳이 대학, 고교, 중학교가 있는 줄 착각한다.

배재대학교는 대전에 , 고교와 중학은 강동구 고덕동에 있다.

기념관의 일부에 전시관에 임진우 건축가의 서울 스케치전이 열리고 있었다. 

건축가의 그림에선 건축가의 특성이 나타난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아펜셀러의 동상.

 

헨리 아펜셀러(1858-1902)

1885년 선교사로 입국하여 배재학당을 세웠고 정동 교회를 설립했다

고종 황제가 배재학당이란 현판을 하사했으며 최초의 서양식 학교가 되었다.

당시 선교사들은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활동을 했다.

딸 역시 이화학당(이화여자 대학교)을 발전시키는데 공헌했으며  아들도 한국에서 선교사로 일했다.

그는 44세에  어청도 부근에서 배의 충돌로 침몰하던 배에서 여학생을 구하다 사망했다.

영화진에 그의 묘가 있으며 "가묘"다.

그들이 헌신한 덕분에 학교와 교회는 발전했고 한국은 그들이 배출한 인재들의 밑바탕에서 오늘날의 부를 이루었다.

배재학당은 이승만대통령, 주시경. 김소월, 지정천 같은 인물을 배출했다.

우리 한국도 해외에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병원을 짓고 장학금을 주고 의대를 만들어주고 있다. 

해당 개발 도상국들도 100년 후 한국처럼 번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이 아니며 한국과 같은 파도타기를 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대한 제국의 멸망, 일본의 식민지 지배, 한국전쟁, 월남전 파병, 중동 특수, 농업 국가에서 중화학공업국가로 대전환.

한국인의 학구열

또 한국인과 같은  지도자가  없으며 모험적인 기업가가 없어서다.

 

그의 동상에서 우리나라의 조각가들이 배울 점이 있다면 실물대로 만들어 위인들을  우습게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랩이다.

실물보다 커야 먼 거리에서 실재 크기로 느껴지며 존경심이 울어 나는 법이다

러시아 대사관 근처 공원 조형물.

 "서울 시립 미술관 서소문점"-전 서소문 대법원자리

서소문 미술관은  무료입장이라 잠시 둘러 보았다.

서소문 미술관 작품전

이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안사람, 누님, 조카와  함께 양평 서종면에서 오래된 청국장 집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나름 이쪽에 올 때마다 단골로 자주 오던 곳이다. 

게장과 고등어 백반을 주문했다. 

반찬을 정성스럽게  만든다고  늘 맛있다고 늘 칭찬해 온  안사람이 이번에 아니라고 했다.

내입에도 반찬 맛이 달라졌다 

주방의 반찬 만드시는 아주머니가 바뀌셨나.

이제 그만 가야 할  음식점이다.

항상 뜸이 덜들것 같은  꼬돌거리는 밥도 싫어진다

다른 곳을 개척해야 한다  

전망이 좋은 베이커리 카페.

 메인 3층이 시끄러워  주로 식당 자리로 쓰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손님이 나간 후 치우지 않은 탁자에 빵가루가 가득하다.

오늘 아침 만든 빵이 아닐까 빵까지  부드럽지 않고 마른 종이처럼  퍽퍽하다

이 카페도 안녕을 고하고 다음엔 부근  전망 좋은 프랜차이즈 카페를 이용하기로 한다.

점심식사, 디저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 

혹시 내입이 변한 것 아닐까

덕수궁 앞에서 친구를 만나는 날.

광화문 사거리.

해는 나지 않고 밝은 날이어서 걷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확실히 전보다 거리에 외국자유 여행자들이 많아졌다.

서대문 방향.

나무에 가려 흥국생명 앞 조형물 'Hammering Man"이 보이지 않는다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광화문의 중심이다

어떻게 지키고 세운 나라인데 나라 말아먹을 행동을 하냐고 주시하고 계신 것 아닌지

청계천의 시작 

조선 앞  호텔 시티 투어버스 승강장.

교보 문고 지하 앞에서 스마트 폰을 들고 어쩔 줄 모르는 흑인 모녀를 만나 알려준 곳이다.

미네소타에서 왔다고 했다.

시청 신청사

 아무리 오래 자주보고 다른 각도에서  좋게 보려도  서울 시청으로서 위용이 없다.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괴이한 건물로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려본다.

 

오늘 만난 친구도 점심을 <복성각> 보다 <남도추탕>으로 하자고 한다. 

이 친구도 당뇨에 고혈압 환자다.

이곳에 오면 식사 후 정동 극장 옆 "전광수커피"집을 찾는다. 

커피 맛이 정직하거니와 커피를 자리에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받고 싶어 간다.

치워도 주고.

전처럼 리필이 되지 않으나 오르지 않은 가격을 받는다.

친구는 "콜럼비아"난 "과테말라" 드립커피를 주문했다.

 

커피 후 미술관 관람을 위해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위해 덕수궁 가까운 북문으로 갔다.

전에는 이곳에서 입장권을 팔아왔었는데 지금은 그냥 출구로만 이용한다. 

경비  직원은 지팡이를 두 개나 짚은 친구를 보더니 노인에 대한  예의로 그냥 들어가시라고 친절을 베푼다.

이런 융통성은 한국에서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석조전 미술관에 가기 위해 800여 미터를 더 걸어야 했다.

새로 재현한 "돈덕전"

설계도 없이 사진등 자료에 의해 건축해 "복원"이라 할 수 없다고 한다

 

고종의 즉위 40년 기념(1902)으로 칭경예식의 서양식 연회를 위해 신축한 건물이다.

조선의 가장 무능한 왕으로 평가되는  고종은 < "망국의 책임이 있는 유약한 군주"를 넘어 백성을 살육한 피로 권좌를 유지하다 살다 간 전제군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적합하다.

국고낭비도 컸다. 

  장욱진 회고전이 열리는 석조전.

장욱진 화가의 작품은 원래 다작이기도 해서 장흥 "장욱진 미술관', 현대미술관 "이건희 기증 전" , 용인 장욱진 특별전을 비롯 이번 "특별 기획전"으로 많은 작품을 보았다.

거목. 1954-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출품작

자갈치 시장. 1951(부산 피난시절)

공기놀이 , 1938-양정 고보 5년. 전 조선 학생 미술전람회 특선작

이만익-"생각에 잠긴 장욱진"

집. 1969

문경 김용사, 1978

무제-수안보 풍경

가족.,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