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산책

대구 여행(3)-김광석 거리를 걷다

Jay.B.Lee 2022. 11. 22. 09:50

김진수 로스터리 카페에서 김광석 거리로 다음 목적지를 잡았다.

거리 구경도 할겸 천천히 걷기로 했다.

길가에 과일 야채 화분 등을 내놓고 파는 "시골 장터"의 노부부.

이런 무질서한 가게는 생전 처음이다. 

터키인들처럼 진열하는데 경지에 이르진 못할 정도라도 이건 너무 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그런 가운데 묘한 매력을 주는 가게였다.

팝 아티스트 "김경민'의 작품 같다. 

얼굴이 종전의 그의 작품과 달라보인다.

작품이 서 있는 곳이 작품과 어울리지 않게  이질적이다.

지나던 골목.  이런 골목이 너무 좋다.

개량형 지붕 기와로 인해  한옥 분위기 대신 일본 가옥의 집 지붕 같이 변화하고 있다.

따스한 분위기를 주던 이 골목 위엔 이런 간판이 붙어있다. 

"도심 명산장 "

필체가 강하다. 

서예가 "리홍재" 작업실 겸  갤러리.

한옥의 미를 제대로 보여주던 곳.

길을 걷다 보니 눈에 조금 익은 거리다.

10여 년 전 이 거리를 한번 왔었다. 

이곳 어디에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었다.

40대 후반의 여주인은 여학교 졸업 후 십여년이 지나 친구를 통해 자기를  보고 싶다던  남자 선생님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작은 카페는 위치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 봉산 문화거리.

서울의 인사동 분위기를 내고 싶었던 곳. 

 

이 갤러리를 보고서야 확신했다.

 

봉산 문화거리 벽화

사진 : 박정희 버드나무

 

마침 수성교를 향해 지나는 곳이 경북대 사대부 중고 건물이다.

학교에서 나오는 여선생님 두 분에게  혹시 박정희 나무를 아냐고 물어보았다. 

한분은 이곳이라 가르쳐 주었고 한분은 그런 게 있냐고 반문했다. 

보고 싶었던 나무를 시간을 할애 않고 지나며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옛 박정희 대통령이 학생 시절 마음이 심란하면 찾았다는 버드나무. 

수령 100여 년이다.

옛 대구 사범 본관은 현재 역사관으로 사용 중이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 "-1974년 5.20 대통령 박정희.

 

내 일생 권력과  사리사욕을 추구한  작자들과  너무나 비교되는 말이다.

사대부고의 모과나무 

수성교 방향으로 김광석 거리 가까워오자 길가 가로등에 베너가 보이기 시작했다.

"김광석 길 다시 그리기"

김광석 길은 신천 소위 뚝방길 아래 음습했던 길을말하는 것으로  11명의 작가가 벽에 김광석을 기념하는 노래 가사들과 작품들로 채웠다.

김광석길은 오른쪽 축대 아래다.

김광석은 1964년 출생으로 대구 대봉동에서 태어나 5살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싱어송 라이터로 음유 시인이자 가수였다.

노래하는 철학자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1996년 31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보낸 후 사망한다.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모타 사이클을 즐겨 탔다.

"사랑했지만 , 나의 노래, 일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등병의 노래"등의 히트곡이 있다.

월요일 점심 이 가까운 시간에 사람 한둘 지나는 이곳에 그의 노래는 계속 흘러나온다.

사랑의 자물쇠.

영원한 사랑을  기대했건만 그 사랑이 깨어졌다 해도 놀라거나 슬퍼하지 마라.

그 순간만은 진실이었음을  위로 삼아야 한다. 

또 다른 성장을 위해 모든 고통을 받아들여야 하느니.

 

사진을 찍고 있는 처자들을 한 컷.

김광석 거리에서 본 방천 시장 가는 길 

김광석 길 중간쯤 있는 김광석 동상. 

김광석 거리에서 제일 좋아 보이는 카페" 바흐의 선율" 

카페 " 봅봄"도 보였다.

저녁이나 주말이면 사람들로 붐빌 것 같은 길도 월요일 정오는 조용해서 좋았다.

김광석 길 초입.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증샷을 찍는다.

1시가 가까워 점심을 해야 했다.

삼덕동  삼덕 초등학교 방향으로 길을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