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산책

대구 여행(5)-이상화 생가터

Jay.B.Lee 2022. 11. 22. 10:00

사진:커피 로스터리

 

 머머리섬 꽃집에서 이상화 생가터인 '카페 라이락 뜨락 1956"까지거리가 제법 멀어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요금 6,000원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네비가 가르키는 대로 따라걷자 택시가 나를 내려준 곳으로 다시 나왔다.

 

 

 

고봉식당 정면 골목길에 "라이락 뜨락 1956" 안내표지판이 마침 눈에들어왔다.

 

이상화 생가터 입구 

이상화는 1901년에  대구시 중구 서문로 2가 11번지에서 태어나 7세에 부친 이시우를  잃고  큰아버지  이일우 아래서 자랐다.

일제 강점기시 "나의 침실로"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등을 저술한 시인이다. 

옛 생가터는 현재 지번이 분할되어 생가터 전체는 볼 수가 없다.

카페 "라이락 뜨락 1956년"이 있는 곳이 생가 안채 자리에 해당한다.

이곳에서 32년을 ,고택(중구 계산동 2가)에서 4년을 살았다.

 

카페에 도착하자 월요일 휴무다.

이런 낭패가 있을까 .

대문위로  카메라를 넣어 안을 찍어보려하자 내 인기척에 누가 문을 열어 준다.

카페 주인이다.

오늘 휴무인데 마침 약속이 있어 나왔다며 서울서 내려왔다는 나에게 친절히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안채 자리.

수령 200년정도라는 라이락. 분명 이상화는 라이락꽃이 피고 지는 걸  보며 자랐을 것이다.

주인장이 권유해 라이락 아래에서 찍어준 사진. 

카페< 라이락 뜨락 1956>은 작은 문화공간이면서  이상화의 생가터를 지키고 있다.

라이락 꽃 아래 시인 이상화를 그린 그림

고교시절.

우린 시와 수필등을 외워야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 " 

민태원의 수필 " 청춘 예찬"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김소월의 "진달래"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봅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1926년 "개벽" 6월호에 실었다.

골목길엔 과거의 역사와 흔적이 남아있다. 

머잖아 사라질 풍경이다. 

모두가 사라지면 그리움 조차 희미해진다.

이곳저곳 재개발이란 이름아래 고층 아파트 건축으로 대구를 온통 들쑤셔놓고 있는 것으로보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