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기행·산책

인사동과 소산 박대성전

Jay.B.Lee 2021. 8. 20. 20:44

사진 : 중국산 골동품이고 오래된 시간을 감안하면 발암물질이 든  도료로 그린 것으로 간주한다.

        (30여 년 전 캐나다에서  발암 물질이 든 식기류 사용 금지에 따라 중국 음식점에서 유색 그림이든 식기가 전부 백색 식기로 바뀐 사건이 있었다)

 

 

인사동을 그렇게 많이 다녔어도  다 알 수 없는 곳이 인사동이다.

갤러리와 음식점들이 즐비하여도 들리는 곳은 몇 곳뿐이 되었다.

단골이란 개념을 타파하고 이곳저곳 무작정 들어가 보고  먹어보고 깊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마음을 좀 더 젊게 하기 위해 호기심에 대한 끈을 놓지 말아야 해서.

코로나로 인해 문들 닫은 가게들과 활기가 사라진 삭막해진 거리에 2년간의 공백이 결코 가볍지 않다.

인사동 나가는 것 자체가 시들해져가고 있다. 

중국산 골동품

어린 왕자 특별전이 있는 상가.

유료로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 같았다.

소위 이발소 그림류도 세월에 낚여 벽에

그럴듯하게 하게 걸렸다.

 

한지 봉투 

사진 : 인사 가나아트 5층에서 바라본 북쪽 풍경 

 

오늘 인사동을 찾은 목적은 가나  인사 안트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소산 박대성의 기사를 보고 전시회를 놓칠 수가 없어 달려왔다.8월 23일까지 전시

금요일 외엔 시간이 나지 않았다.

 

가나 아트 센터에서 아래 보이는 지붕이 낯선 걸 보면 허물어져가는 지붕을 고쳤고 그걸 이제야 보게 되었다.

가나아트센터 5층 휴게실.

낡은 벤치를 모두 수리해 놓았다.

소산 박대성 (1945-

경남 청송 출신

한국화의 거장이며 수묵화의 대가다.

1949년 왼쪽 팔꿈치를 잃어 한 손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건희 회장의 전속작가이기도 했다.

이 회장님은 무엇을 그려달라고 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의 작품들은 이건희 Collection에  포함되어 있다.

1984년 가나 아트 전속작가가 되었다.

2015년 그의 그림 830여 점을 기증 , 경주 "솔거 미술관"에서 상설 전시관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지방의원 반대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되지못했다 했다.

이건희는  이름 자체가 명품이 아니냐며 그의 기증 작품들을 전시할 미술관의 이름을 "이건희 미술관"으로 남겨야 함을 시사했다.

이건  기증받은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국민의견을 물어도 전부 같은 대답일 것이다

소산 박대성은 자연주의 화풍을 그린 겸제 정선 (1676-1759), 소정 변관식 (1899-1976), 청전 이상범(1897-1972)을 잇는 화가로 간주한다.

지난 3월 전시 중인 20미터짜리 작품(1억 원 상당 ) 위에 아이가 눕고 미끄럼 타고 하던 소동이 있었다.

그걸 말리기는커녕  사진 찍던 아빠가 한국의 수준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소산은 말했다.

"애들 눈에 그렇게 보일만 했다".

"훼손도 작품의 역사다"라고 말했으며 관대하게 용서하고 작품 배상문제도 거론하지 않았다

작품 훼손으로 인해 관심들을 가지게 되어 

"고놈이 내게 봉황이야'라고 했다. 

 

분황사-2021

금강 설경 -2019

추정-

만월

분황사 

구룡폭포-2021,천제연 폭포-2021

유루 -2020

한라산 봉우리-2021

병산 서원

한라산 봉우리-2021

불국 설경

불국 설경(부분)

금강 화개

 

인사 가나 아트 센터 입구

우측 토포  하우스  한 곳을 더 보기로 했다.

1층 전시장 

토포 하우스 2층 전시관 앞에서 본 창밖의 구도가 너무 좋다

토포 하우스 1층 작은 방에 전시 중인 옻칠 작품 전시.

 젊은 처자(작가 아님)는 옻칠을 해서 만든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해 주려했다.

작품도 좋고 옻칠이 힘든 작업인걸 안다. 

그녀가 모르는 건 그녀가 나만큼 인생을 길게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제 버릴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던 박경리 씨의 말을 늘 잊지 않고 새기고 살아간다.

버리고 버리며 마치 해외 자유 여행 시 모토처럼 가능한 한 "보고 먹는다"는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까.

소유보다 아름다운 것들도 오늘 하루 본 경험으로 충분하다.

모든 게 사라지고 덧없다는 사실에 마음에 평화를 누린다.

 수많은 여행지의  추억을 위한 기념품들이 시간이 지나자 쓰레기처럼 사라져 갔다.

내가 거기에 있었다 마음의 위로에 돈을 뿌렸던 거지

옻칠 작품 

인사동 가면 자주 찾는 카페 겸 레스토랑 " 할리우드"가 문을 열고 있다.

2층 레스토랑 문을 닫아 1층 2개의 좌석으론  불편해 그냥 나오고 말았다.

언제고 한번 들려보자던  토포 하우스 맞은편 카페.

시간대가 늦은 만큼 한산하다.

쌓인 책들은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이 아닌 홍보물 , 잡지 같은 것들이어서 읽을거리가 없었다.

 마실수 없을 만큼 너무 뜨거운 커피.

이래서 이 카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있는 거지.

카페 입구에 걸린 그림이 참 마음에 든다.

카페 내부에서 

집으로 오는 길 소도 온누리 약구 앞에서 앉아 반주에 맞추어 이렉트릭 첼로를 연주하고 있는 외국인 남자 

몇 번 마주친 우크라이나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 솜씨보다 훨씬 좋다.

한국을 감상하고 그 앞에 천 원 지폐 두장을 넣어준다.

다음에 만나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자.

사진도 다음에 찍어 보고. 

경운궁 건너편에 생긴 민속 골동품 가게 앞의 오래된 장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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