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청파동 원 소아과 병원 자리에 지금은 <방정환 재단>이 들어서 있다.
오랜만에 창파동을 찾고 싶었다.
작은 집이 대치동으로 이사 후 가본 적이 없어서였다.
기차로 서울역에 내려 갈월동 쌍굴다리를 지나 건너면 "원 소아과"가 나왔다.
오래전 아동문학가 강소천 씨의 수필에 "제주 약국을 지나 원소아과 보이고 골목길을 오르면 우리 집이 있었다."라고 썼다.
청파동엔 작은집이 있었고 작은 어머니께서는 작은 소아과를 하고 계셨다.
서울 사는 일가들은 아프거나 하면 소아과를 찾았고 자문을 구하고 해서 자연히 집안의 가정의가 되셨다.
병원이 별로 없던 시기라 어린이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도 수시로 들락거렸다.
아이들은 자라서 또 아이들을 낳고 그들 또한 온다고 했다.
그래서 3대가 병원에 온다고 말씀하신 작은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효창동에 누님이 살았고 나도 효창 운동장 근처에 하숙을 하던 중이라 주말 (토요일 ) 퇴근 후 약속이 없는 날 가끔 들려 작은 아버지를 뵈었다.
작은 아버님은 조카인 나와 주제를 놓고 말씀하시기를 좋아하셔서 방문시마다 반가워하시곤 했다.
얘기가 길어지면 도우미 (식모) 처녀가 밥상을 들고 왔다.
고교시절, 군대 시절부터 보아온 처녀는 나중에 결혼할 때까지 작은집에 있다가 결혼 후에도 아이들 낳고 친정처럼 드나들었다.
작은 아버지에게서 가장 많이들은 말씀은 "절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조모께서 하루 두 끼 먹고 목화씨 기름으로 호롱을 피며 그름 아래 바느질을 하셨다고 하셨다.
증조모는 방은 겨울에도 미지근할 정도로 불 때셨고 근면 절약을 통해 모은 돈으로 목화밭을 사셨다.
목화밭은 인삼밭으로 변해 당시 금값과 견줄만한 백삼으로 토지를 조금씩 늘인 결과 천석꾼이 되었다는 얘기는 사실 아버지, 작은 아버지를 통해 귀가 닳게 들은 얘기다.
할아버지 께서도 아버지 형제들에게 절대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으며 여름 참외가 많아도 하루 한 개 이상 먹지 못하게 했다는 전설적인 얘기도 있다.
그런 덕분인지 수많은 사촌들이 사치, 방탕하는 사람이 없는 건 조상이 보여주고 간 모범 사례가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준건 사실이다.
그리고 종교를 가지라는 얘기였다.
작은 아버지께서는 절에 찾아가 스님들과 대화를 즐겨 불교신자에 가까웠다.
이승만 대통령의 토지개혁으로 대부분 날아갔다.
증조할아버지 , 할머니를 기념하며 목화밭을 정원으로 만든 할아버지
큰 연못 , 작은 연못 두 개 그리고 화단과 커다란 비석 두 개가 있는 정원으로 당시 읍내 사람들도 놀러 와 사진들을 찍고 했다 한다
동네 처녀가 연못에 빠져 자살한 뒤 큰 아버지께서는 큰 연못을 메우셨고 돌보지 않는 정원은 가세만큼 황폐해졌다.
당시 제일고보와 서울 법전을 나오신 노총각 작은아버지 , 의대를 나오시 노처녀 작은 어머니는 중매결혼을 하셨다.
작은 어머니께서는 나중에 암으로 타계하셨다.
결혼했던 사촌 동생은 소아과와 집이 함께 있던 자리를 팔고 작은 아버지를 모시고 편리한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나 홀로 스페인 여행 중 돌아가셨다는 얘길 전해 듣고 귀국해서 천주교 납골당에서 작은 아버지를 찾았다.
사촌 동생은 현재 작은 어머니처럼 소아과 내과의로 서초동에서 병원을 열고 있다.
30여 년 만에 찾아 낯설어진 가운데 그래도 눈감으면 많은 추억이 떠오른 곳이 청파동이다.
서울역 뒤쪽이 되는 갈원동 , 청파동엔 철도 관사가 많았다. 사진의 집들도 일제 강점기 시대의 건물이다.
이 자리가 "제주 약국 "터다.
원 소아과 자리에서 본 청파동 골목 안 -왼편으로 가면 숙대 입구 길이다.
원 소아과 앞 골목으로 이곳을 처음 들여다보았다, 수십 년 전의 모습이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파동 주민센터 앞 동네 옛 모습
처음 이곳에 와서 이 골목이 소아과 자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 미용실에 미용를 하고 있는 80십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와 7십은 다되어 보이는 할머니 미용사가 보였다.
혹시 오래 이곳에 사셔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앞자리가 원 소아과 자리하고 확인해주었다.
김밥집과 옆의 집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건물이다.
공장형 지붕의 옛 건물.
나무 왼편이 소아과 자리
갈월동 이곳엔 서울역 방향으로 삼발이 화물차들이 대기했고 갈원동 철교 옆으로는 금형 , 선반 공장이 도열하듯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남일 농기계, 경북 종합 기계 등 흔적이 보인다
좌측 남영동 가는 길.
우측엔 가사 식당들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옛날처럼 사선 주차장이 남아 있어 반가웠다.
서울역 방향
이런 옛 건물을 아련해진다.
효창동 외인아파트 아래 골목 이 자리에 철도청 관사가 있었다.
매형은 이곳을 매입 후 2층 양옥을 짓고 반지하 하나는 세를 주었다.
시장에서 야채장수하던 분으로 십수 년을 살며 돈도 모았고 자녀들도 잘 자랐다
매형이 잠실로 이사 간 뒤에도 누나에게 계속 연락을 하며 친히 지냈다.
지금은 다시 부수고 다세대 건축 이 들어섰다.
공통점으로 같은 붉은 벽돌집으로 지었다.
'서울 기행·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페 디 스케이프(D -Scape) (0) | 2021.09.03 |
---|---|
Beatles 사진 전시회(1) (0) | 2021.09.03 |
인사동과 소산 박대성전 (0) | 2021.08.20 |
관철동 OUYA (0) | 2021.08.12 |
성내천 산책 (0) | 2021.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