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천안 목천초등학교 내 느티나무.
목천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여선생님이 운동장을거쳐 들어온 나에게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오래전 어머님이 1930년초 졸업 하셔서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낡고 바랜 작은 앨범을 보여주며 학교100주년 기념 교지 발행시 어머님의 앨범을 사용했다고 함께 사진을 보며 나무를 비교해 보았다.
여선생님이 오신김에 교장 선생님 만나고 가라고 권했다.
교사 본관 입구에서 체온을 혼자 재고 방문록에 기록을 남겼다.
방문 목적: " 어머님 모교방문" 그렇게 적었다.
깔끔한 복도다. 교무실 행정실을 지나 교장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젊은 4십대 후반 정도 보이는 교장이 어떻게 오셨냐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엄청 젊은 교장이다.
아니 내가 나이든거지.
교장에게 앨범을 보여주며 90여년전 4명의 졸업 여학생중 한분이 어머니라고 설명했다
현재 학생수를 물어보자 전교생이 150명이라고 한다
나에게 놀랄정도의 적은 숫자임에도 보통인양 자연스럽게 얘길했다.
농촌 인구의 감소탓이다
학교 정문앞 주택에 그려넣은 그림.
독립 기념관이 근처에 있다.
어머니의 졸업사진이다
47명의 졸업생중 여학생은 4명.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심했나 보여준다.
그 가운데 깨인 집안들은 여자들도 학교를 보냈다.
어머니는 1919년 생이시다.
유관순이 만세부른 아오네 장터에서 2Km 정도 떨어진 가전리에서 출생했다.
여학생들이 팔이 짧은 솜윗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특이하다.
길면 불편해서일까?
빨리 커버려 짧은 소매를 그대로 둔 것이 아니고 활동에 불편해서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어머니(오른 쪽)는 저고리위에 검정 스웨타를 입으셨다.
어머님 졸업 앨범 .일본 강점기 시대 ,소화 7년(1932년)에 16회로 졸업했다.
아이들의 실습지
느티나무는 운동장옆 나무와 너무 닮아 같은 나무로 간주한다
먼저 앨범의 사진 산세와 현재의 산세를 비교해보았다.
교사 뒤로 보이는 산들이 앨범의 산능선과 일치한다
천안 병천면 가전리(잿밭이라 불렀다)에서 목촌 초등학교까지 지도 도보 거리를 검색해 보면 약 5.5키로거리다.
보통 걸음으로 1시간 21분.
어린이의 발걸음으로 치면 1시간 4,5십분 거리다.
어머님이 어떻게 학교를 통학하셨는지 얘기해주신 적이없다.
당시 정규 버스가 있을리 없고 대부분 집에서 걸어 다니셨을 거라고 짐작한다.
추위와 더위속에서 어머니 아닌 어린이로 걸어다녔을 걸 생각하면 애잔하다
수령 305년이 된 느티나무.
놀이터 옆 세그루의 느티나무들은 마을 입구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수령이 300년이 넘는다.
나이를 먹어 나무 둥지 속이 파이고 들어나 시멘트로 보강까지 했다
2017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한 비석.
어머님이 출생 몇년전 일제 강점기에 개교하였다.
기념 사업으로 100주년 기념 책자 발행시 우연히 당시 황태규 부회장이 내 블로그를 통해 연락이 와서 어머니의 앨범을 보내준 적이 있다.
뒷면에 비석 제작 년도가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 전교생 171명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목천 읍내에서 시위를 했다고하며 이 만세운동이전국적으로 확산 되었다
주동자 4명이 체포, 구금되었다
학교안의 느티나무 .
세 그루의 나무보다 곧게 자랐다.
서울에서 멀지 않아 미루고 미루던 어머님의 옛 초등학교를 찾아 마음의 숙제 같던 길고 긴 여행을 마친 셈이다.
다섯의 여형제중 둘째인 어머님은 16살의 나이에 영동으로 시집을 갔다.
아버지의 나이 19살때였다.
그리고 23살에 첫아이 ,형을 낳으며 5남매를 두셨다.
어머니는 집안에서 택호로 "천안댁"으로 불렀으며 아버지는 "천안 작은 아버지"로 구분되어 불리웠다.
어머님은 당시 동서들과 지내던 시절이 행복했다고 회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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