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지하 감옥"이란 의미를 지닌 코비랍 수도원
오늘 계획은 오전에 코비랍 수도원을 다녀오는 일이었다.
시내에서 30키로 정도로 30분정도 걸리는 곳이다.
8년전 저 곳을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돌아올 때 버스 정류장에서 홀로 서있던 나를 태워주고 Yerevan에 도착해 가까운 지하철 역에 내려 주던 친절은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코비랍 수도원을 가려면 Mesrop Nashtots Ave.오른편 정류장에서 시내 버스(5번.67번 ,259번 )를 타고 "Kilikia" 버스 터미날에 가면 되었다.
왜 버스 터미날 이름을 Kilikia 로 지었을까.
킬리키아는 기원전부터 있던 왕국으로 지금의 터키 지중해 도시인 Adana지역에 해당된다.
로마의 "속주(병역 의무는 없되 세금 납부 의무가 있다)로서 수도는 타르소스였다.
타르 소스는 베드로가 태어난 곳이다.
위로는 카파토키아 속주가 있었다
옛날부터 해적이 많아 로마 율리어스 시저가 젊은 시절 로마로 부터 도망치다시피 하여 Kilikia 에 지원했다가 해적들에게 잡혀 몸값을내고 풀려났던 곳이다.
나중에 그해적들을 잡아 모조리 사형시킨 기록이 남아 있는 곳이 Kilikia 다.
개인적으로 궁금해 아르메니아 지인에게 문의하자 한 때 아르메니아 왕국이 Adana 지역까지 세력을 뻗쳐 지배하던 시절의 지도를 보내왔다.
그리고 "from sea from ro sea"라고 부르던 영광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비록 지금은 바다없는 나라가 되어 커다란 세반호수를 "바다"라 부르며 지내는 처지가 되었지만.
버스터미날 이름을 킬리키아로 지은 연유가 우리가 "고려"같은 상호를 짓는 것처럼 여기면 될까
며칠후 아르메니아에서 조지아로 돌아갈 때 타야할 Minivan을 이곳에서 타야한다.
호스텔에서 나와 잡은 택시 기사에게 킬리키아 버스터미날까지 1,000드람(2,340원)에 가겠냐고 묻자 2,000드람을 받으려 했는데하며 씩 웃었다.
눈치는 빨라 2,000드람이면 타지 않을 손님인걸 파악했겟지.
호텔앞도 아니고 길거리 관광객이다.
기본요금이 600드람(1,400원)인 예레반의 택시 요금을 고려하면 1,000드람도 팁정도 포함하여 주는 셈이었다
3키로 정도로 간주하여 700드람 정도면 현지인들은 탈수 있을 것이다.
낡은 터미날에 뭘 기대한 건 아니나 제대로 구경할 것 없이 우선 코비랖으로 가는 미니벤을 찾았다.
(터미날은 조지아로 돌아가는 날 자세히 살펴보았다)
몇명의 손님을 태우고 있는 미니 벤들은 그 방향으로 가는게 아니다.
어느분이 친절하게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몇대의 택시가 있는 곳.
한기사가 이 코비랍까지 7,000드람(16,000원)에 가겠다고 한다.
시간을 절약해야하고 편하게 다녀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택시를 타기로 했다.
기사 Tikko(Tel:077-390-299)는 사람이 좋아 보였다.
운전도 차분하게 했고 담배를 피우거나 음악을 저 좋다고 틀지않는 조용한 운전 기사였다.
영어 단어는 몇개 아는게 전부지만 소통에 문제는 전혀 없었다.
코비랍 수도원이 보이는 주차장에 내려 티코도 따라왔다.
기도도 해야하고 사진도 찍어 주겠다한다
비들기를 날리라던 청년갔는지 새장에 갇힌 전서 비들기들. 날려줄 관광객을들이 오길 기다려야한다
"사내는 비들기 한마리를 나에게 주며 하늘로 날려보내지 않겠냐고 물었다.
내가 고개를 가로 젖자 비들기를 날려보내면 당신의 때묻은 영혼이 ,당신의 죄가 하늘로 날아가 없어진다고 했다.
비들기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얄팍한 상술을 생각하기전에 나의 신념 ,종교관과 달라 거절한 것이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Yerevan)의 마지막날 ,예레반에서 30키로 떨어진 아르메니아의 정신적 상징인 아라랏산(해발 m)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위에 세워진 코비랖 (Khor Virap monastery) 교회를 찾았다.
교회 언덕 입구에 처음 주인 없는 비들기장에 갇혀 있는 비들기들을 보며 옛 풍습대로 비들기를 산제물로 바쳐 비들기 피를 제단에 뿌리나 엉뚱한 생각을 했다.
마침 11월7일 일요일 아침이어서 아르메니아 정교회 미사를 처음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참관했다.
하늘색 가운을 입은 몇명 안되는 소년소녀 성가대의 노래가 높이 솟은 천정을 행해 울려 마치 하늘에 들릴듯 퍼져 나갔다.
수놓은 화려한 미색옷을 걸치고 붉은 공단으로 만든 왕관 같은 모자를 쓴 신부와 검은 옷을 입은 신부가 주고 받은 기도문속에서 내가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멘밖에 없었다.
미사를 처음 부터 서서 참여하고있는 사십여명의 일반 신도들.
신부들과 소년 둘이 높이올라있는 단상에 올라가 커튼이 닫혀졌을 때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성막을 상징하는 곳의 예배를 일반신도들은 못보게 하는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3세기 기독교를 최초로 국교로 받아들인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세속화된 유럽 교회와 달리 오랜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코비랍 교회에서 미사전 행해진 세례식에선 신부가 성수로 성호를 그리며 이마 ,코,입술 ,귀,목 그리고 무릅에 성수를 뿌리며 세례를 주고 있었다.
요단강에서 예수가 세례를 준 요한과 함께 있는 그림아래서 세례받은 두젊은 청년과 한 처녀는 기쁨의 미소를 띄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마가:16:16)
세례를 통해 그들의 영혼이 정화됨과 같이 나의 영혼도 여행을 통해 정화되기를 빌었다.
세상의 소식과 결별한채 떠도는 가운데 분노와 미움보다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채울수 있다면..... "
--2010 10월 첫 방문시 여행기 기록을 다시 올려본다.
수도원 아래 주차장 .
주차장 뒤로 8년 전 당시에 비해 많은 사람이 묻혀선지 묘지가 크게자리를 잡았다
멀리 보이는 포도원
아르메니아 석비 "하치카르(Khachkar)".
아르메니아와 국외의 아르메니아 공동체에서 장인들이 깎아 실외에 세우는 석비를 이른다.
추모비 역할도 하며 속세와 신을 잇는 성유물및 기념석이기고 해서 신을 섬기는 데 있어 중심 역할을 한다.
중앙에는 태양과 영원의 수레 바퀴 상징이 있고 그 위에조각한 십자가와 주변에는 기하학적 문양이나 식물 ,성인,동물등을 새긴다.
높이는 보통 1.5미터.
석비는 돌에 새긴후 고운 모래로 다듬은 후 진흙등을 발라 색칠을 한다.
구름처럼 공중에 뜬 것 처럼 보이는 아라랏 산.해발 5,165미터. 작은 아라랏 산은 3,896미터다
4세기경 라틴 성경엔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곳은 monte Armeniae로 되어있다 5세기경 라틴어 새 성경에 Montes Ararat 으로 변경하였다.
2010년 방문시에도 한낮이라 뚜렸하지 않았다.
운전 기사 티코와 함께
멀리 구름처럼 보이는 아라랏산. 날씨가 맑은 날엔 하늘에 뜬 산처럼 보인다.
소박한 교회 내부.
코비랍 교회는 아르메니아 기독교 가 탄생한 곳으로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Gregor Luisavoric(St.Gregory the Illumination:257-331 ) 동안 감옥에 갇혀있다가 그를 가둔 왕(트리나데스 3세)의 병을 낫게하여 A.D 301년 아르메니아는 기독교를국교로 삼았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건 콘스탄티누스 1세의 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A,D 313 년이었다.
포도원.
아르메니아도 포도주가 좋다하나 "아라랏 브렌디 "명성뒤에 숨어 조지아 와인 보다 알려지지 않았다.
조지아 와인은 많은 기회를 통해 조지아와 서울에서 마셨으나 아르메니아 와인은 한잔도 시음을 못해 돌이켜보니 미안한 일이다.
돌아 오는 길 -이곳 가게들은 도로에서 반층올라가 있어 참 불편해 보인다.
Yerevan 으로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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