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프란 볼루의 대장간에 서 만든 전쟁 무기.
하나는 목재로 만든 것이고 하나는 쇠로 만든 것이다.
골동품 가게라 하기엔 어색한 가게. 주인이 어디 갔는지 없다.
그저 근대의 생활용품이나 잡다하게 많았다.
꼭 1976년 개발된이래 사라진 포니(웨곤)을 닮았다.
당시 수출을 담당한 분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후드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현대 포니는 아니란 결론이다.
안개등이 철제 범퍼 밑에 달린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주 흡사하다.
대장간 골목에 들려 대장간 아저씨와 인사하자 나를 기억하는 그는 차를마시자고 한다.
세번이나 만난 분.가게를 두개 가지고 있다 악수만 한채 사진을 찍는 걸 잊고 말았다
왼쪽에 보이는 자미가" 쾨프 룰루 파샤 자미" 오른편이 "이젯파샤 자미"다.
차르시 광장과 자미를 벗어나 조금 한적한 폐가가 많은 곳에서 스케치하다
집이 반이나 무너져 내려 세개의 섯가래만 덜렁 남았다.캘러 그라피 펜으로 그려보았다.
시골 고양이 태가 난다.
터키인들은 고양이를 잘 보살핀다.
그들이 거두고 있는 길양이 밥통이나 물통이 더러운 경우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터키의 길양이들은 우리나라 고양이에 비해 행복한 셈이다.
수리한 전형적인 전통 가옥
차르시 광장의 카페로 돌아와 "네스커피( 인스탄트커피에 우유 넣은 커피를 그들은 그렇게 부른다)"한잔을 주문 .
5리라(2,500원)
차르쉬관장 으로 버스를 타기위해 돌아오자 웬 아시아 여인이 바이오린 연주를 하고 있었다.
터키인과 결혼하여 이 곳에 살고 있다는 그녀..그녀의 이름은 "코토모"라고 했다.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솜씨는 좋지 않은 연주지만 "아리랑"을 연주해 주었다.
그녀 앞에 2리라를 놓았다.
그녀가 터키인들을 위해" 위스크달라(이스탄불 아시아 지역, 지역명칭)"를 연주 하여 내가 리듬을 흥얼거리자
아시아 사람들이 자기들의 옛 노래를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이 노래가 60년전 한국전쟁당시 터키군들에 의해 한국에 전해왔다고 하자 나와 함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자던 아가씨.
함께 사진을 찍은 후 내가 사진을 찍겠다 하자 얼굴을 살짝 붉힌다.
히잡을 쓰지 않고 입은 티셔츠로 미루어 보아 상당히 현대적인 여성이다.
저녁 퇴근 시간에 Murat ,쉐나이 부부의 퇴근 시간에 맞추기위해 마을 버스를 타고 '크란퀘이'로 나왔다.
시장이 있어 잠시 둘러 보았다.
버섯을 가지고 장난치는 아저씨
시장엔 버섯철인지 깟따온 서너가지의 버섯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가 이젠 먹지않는 싸리버섯 종류도 있다.
검은 버섯의 색갈이 고양이나 강아지의 털처럼 고은 색을 지녔다.
크란퀘이에서 Muratdml집인 "카바뷕"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을 묻는 나에게 주민이 왜 택시를 타지 않냐고 권한다.
거리가 10여키로로 기름값이 우리나라보다 비싼 곳이어서 택시비 또한 비싸다.
영어를 할 줄아는 청년이 친절히 안내해주어 버스를 두번 타고 집 앞까지 미니버스로 도착 .
광장엔 전에 없던 커다란 병원이 들어섰다.
저녁,퇴근후 "쉐나이"가 정성스럽게 나를 위해 차려준 저녁.
터키에서 가장 많이 보는 "메지멕 초르바(Mecimek 스프)" .
걸죽하며 약간 매콤하게 만든 쉐나이의 메즈멕 스프처럼 맛난 스프는 그 후 먹은 적이 없다 .
남편 Murat의 말로 쉐나이는 요리하기를 좋아 한다고 한다.
너무 맛있어 아침에 또 먹을 수 있냐고 물어 남은 것으로 떠나는 날 아침 식사로 대신했다.
빵을 찢어 넣어 먹으면 더 맛있다.
터키인의 "살라타(셀러드)"는 북미와 달리 큼직하게 손으로 뜯거나 썬것이 아니라 거의"난도질" 수준에 가깝다.
처음엔 이상하더니 나중엔 먹기가 더 편함을 알았다.
오른쪽은 달콤한 체리시럽같은 데 달콤하다.
식사후 거실로 옮겨 나온 후식. "바클라와"
꿀을 넣어 만든 터키 후식으로 후시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다. 서양식 케익보다 훨씬 맛있다.
터키에선 남부 "가지안텝(Gaziantep: 시리아 국경과 60키로에 위치한 남부도시로 많은 Chef 들이 가지안텝 출신이다. )이 바클라와의 본고장으로 가장 유명하다.
쉐네이의 남편인 의사 Murat의 고향은 가지안텝이다.
1차대전시 영국 ,프랑스 점령군에 대항한 애국심을 높여 이슬람 전사를 의미하는 "가지'의 칭호를 부여했다.
터키인들은 그냥 <안텝>으로 부르며 지도상에서만 가지안텝으로 표시한다
이번 여행에 가지안텝과 Hatay(Antakya:성경엔 안디옥으로 표기)를 포함한다고 하자 Murat이 반가워한다.
3년전에는 쉐나이의 고향인 "Mardin(시리아가 가깝다. 쿠르드족 ,아랍인이섞여 산다) "을 방문한 적이 있다.
쉐나이"가 마련한 후식이 너무 미안할 정도 로 많았다.
포도,사과,배,천도 복숭아,바나나
또 준비한 작은 케익.
피스타치오 가루가 케익에 가득하다.
많이 먹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녀의 정성에 케익 한쪽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가족을 위해 가져간 선물을 꺼내 전달했다.
Murat 에게는 고급 가죽 장갑 ,딸 Sitem에겐 파우치와 쉐네이와 딸 (미들네임은 Merve)를 위해 알로에 천연 화장품 크림을 준비했다.
냉장고 자석을 수집하는 쉐네이에게 특별히 삼청동 "색상"에서 산 한국칼러가 가득한 냉장고 마그넷을 별도로 준비했다.
아들 Burak과 딸 Merve를 위해 특별한 선물인 젓가락 두세트씩 각각 준비 했다.
스시를 좋아하는 그들에게 특별한 기념품이 되리라 믿는다.
전주 예술대 교수가 만든 작품으로 옷칠에 천연 염료를 사용해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딸 Merve와 아들 Burak 과 통화하라고 전화를 돌려준다.
딸 Merve 는 하루 동안 나를 10키로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 "오륙쿄이'를 안내하며 정이 많이 들었었다.
Burak은 이곳에서 3시간 거리인 흑해 연안 도시 "종글닥"에서 의과 대학에 다니고 있다.
하루 5시간 밖에 못잔다며 하소연이다.
네가 택한 길 아버지를 따라 훌륭한 의사가 되길 바란다고 얘기를 나눴다.
후식중 쉐나이와 사진을 찍었고 ,쉐나이가 남편 Murat과 함께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사진이 없다.
셔터를 잘못 누른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 버스터미날에 나를 데려다 주었다.
어제 저녁 나의 건강을 고려하여 이번이 터키 마지막 여행이 될것 같다고 말해서일까
아침 이별의 순간 그녀의 눈에 눈물이 비친다.
Murat 과는 터키식으로 두번 끌어 안고 인사를 나누었다.
본격적 여행의 시작이 작별로 시작되는 건 슬픈일이다.
언젠가 한국에서 그들의 가족을 볼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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