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첫딸 시집 보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Jay.B.Lee 2015. 5. 22. 20:47

 

 

 

 

집에 전화가 왔다

아내가 전화를 받으며 환한 목소리로  웃으며 상대방에게 안부를 묻는다.

살아 있었냐는 말투다 

전의 직장 동료 아내에게서 온 전화다 .

오래전  해외에서 함께 주재원으로 근무한 동료의 부인으로  나이가 비슷하고  해외에서 같은 교회에 다녔던 터에 안사람들은 귀국후에도 끊이지 않고 연락을 하고 만나고 있었다.

전화 하는 내용을 들으니 큰 딸이 결혼하게 되나보다

딸이 셋으로 장녀의 나이가 금년  서른 일곱.

20여년동안  안사람과 다른 사람 셋이서 만나오더니 딸 들 혼사 문제로 대인 기피증에 걸려  이제 사람만나는 것도 두렵고 싫다고 했다한다.

안사람조차 만나고 싶지 않다고 연락이뜸한지   오래되었다.

그 부인은 자기 딸들이 어디가 못나서 딸셋중 하나도 시집을 가지 못했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남편은 그동안  해외에서도 이곳 저곳 책임자로 일했고 회사의  경영자가 된후 은퇴했다.

해외에서 남편이 전화하며 딸들의 결혼 진척 여부를 업무 체크하듯 물어 올 때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다고 한다.

 나중엔 딸들의 결혼때문 해외 보다 서울에 머문 시간이 더 많아지더니 나중엔 남편 혼자 해외에 머물렀다.

그들 가족은 강남의 큰 교회에 다녔음에도 남자가 많은 곳에서 인연이 생길까하여  딸 셋을   더 큰 교회로 옮기게 했다.

남자들은  많았으나 신랑감이 없다는 사실만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 욕심으로 ' 사자 달린 사위' 보길 원했다.

결혼 정보 회사를 이용했고 주위의 친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없었다.

우리도 중매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큰 딸의 직위나  장인 될 친구의 경력,종교등 그에 어울릴만한 신랑감을 소개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중엔 사자는 커녕 그냥 평범한 남자로 욕심을 줄여갔다.

남편이 늦은 나이까지 직장에 다녔고 스톡옵션까지 받아 점점 늘어나는 재산에도 불구 전혀 삶에 기쁨이되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져갔다. 

어느 날은 부부가 서로 잡고  여러번 울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개혼이다.

밑으로 서른 넷, 서른 둘의 딸들은 나중 문제다.

혼인 정보 회사를 이용하여 구한 짝이 마흔으로  같은  기독교인이라 더욱 다행 스러운 일이다.

말들은 자식들을 보고 그래 혼자 편하게 살아라 하지만 부모들의 마음은 실은 애간장이  타들어간다

딸가진 부모의 마음은 더욱 그런 법이다.

머지 않은 결혼식날 이젠 환하게 웃을  그들 부부의 얼굴을 기대한다

시작이 반이니 나머지 두 딸들의 좋은 소식도  기대한다는 축하의 말을 던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