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3월 .
논산 수용연대 휴게실
저녁 식사후 우리가 갈만한 곳은 휴게실 뿐이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그곳엔 홍일점으로 여직원이 있었고 유일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Forever with you
Green Green grass of home
Somewhere my love"등이 계속 흘러나왔다.
천정의 불들은 희미했고 그림자들로 움푹패인 우리들의 얼굴들은 좀비처럼 보였다.
음악만이 우리들에게 얼마전까지 사회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기억을 일깨워주는 유리한 고리였다.
며칠후 군번을 받고 훈련소에 투입되리란 기정 사실앞에서도 불안감들을 감추지 못했다.
입대 동기생인 고향 동창들과 나누는 대화는 공허했고 얘기들은 겉돌았다.
"그리움도 미움도 떠나버린 옛일인데
가슴속에 사무치는 슬픔은 왠일인지
영원을 맹세했던 그사연 없었던들
이다지 못견디게 괴롭지는 않을 것을
사랑이 주고 간 것 상처뿐이네"
수용연대 화장실 벽에다 대중가요 가사처럼 어느 예비 훈련병이 휘갈겨 써놓은 낙서다.
각자 일터에서 학교에서 영장을 받고 소집된 장정들.
우리들의 옷가슴위에 치약을 써놓은 중대,소대 번호는 마치 포로수용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수용연대에서 훈련소로 이동하는 시간이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
그리고 바로 29연대로 배치받아 훈련이 시작되었고 훈련1일차,2일차를 손꼽으며 35개월 11일이란 군 복무가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면 군대란 통과의례를 치루며 청춘도 사랑도 삶도 많은 변화란 과정을 겪은 셈이다.
화장실의 낙서 사연처럼 상처조차 치유된 긴 시간이었다.
-군 시절 메모장에서
*수용연대: 막 들어온 장정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신체검사등을 다시 받고 군번을 받아 훈련소로 옮기기전 2-3일 임시 대기하는 곳이다.
당시 인원에 비해 막사가 부족하여 침상에서 "칼잠"(바로 눕지 못하고 굴비 엮이듯 옆으로 누워)을 자야했다.
재수없는 사람들은 머리를 박박 깎은채 집으로 돌아가 치료후 다시 재검을 받고 입대해야하는 불편을 겪는다.
송별회를 하고 환송이 거창했던 사람일 수록 멋적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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