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안전에 무감각한 사람들

Jay.B.Lee 2014. 5. 12. 20:51

오래전 아파트 같은 동에 나이드신 목사님이 한분 살고 계셨다

어느날 목사님 차 의 타이어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타이어에 무늬가 거의 없는  민대머리다.

차창에 'Post it'로 메모를 붙여 놓았다.

"타이어가 마모되어 위험하오니 빨리 교체하십시요-주민 드림."

우습게도 2주가 지난후 목사님의 차가 중형에서 중대형 신차로 교체되어 있었다.

교회에서 타이어 문제가 거론되었는지 눈치 빠른 장로들이 새차로 바꿔준 모양이다,

사실 내가 정말 붙이고 싶었던 메모는 이것이다.

"목사님,타이어가 마모되어 달리다 사고 날 경우 남의 영혼을 구하기에 앞서 남의 생명을 앗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있던  건물이 팔려 이사간 빌딩의 교회 아래층에 태권도 도장이 있다

요즘음  태권도 도장이란것이 어린이집 비슷한 수준이라 매번 수련생들을 픽업하고 데려다 주어야 한다.

도장 이름이 크게 그려진 스타렉스  차량 앞뒤 타이어에 아예 무늬가 없다.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관장과 이미 안면이 있는 터라  도장을 방문하여 충고를 했다.

만약 아이들이 타이어로 인해 사고라도 나면 보험을 떠나 소송에 휘말리는 것은 물론 이동네에서 영원히 태권도 도장 문을 닫아야 할거라고  겁을 주었다.

사실이기도 하고.

겁주는 것이  주먹보다 강하다

삼십여만원에 연연하다 큰 일 치루지 말라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며칠후 차에는 모두 새타이어가 장착되어 있었다.

부모들은 그런차에 아이들을 태우며 태권도 도장에 보내고 싶었을까?

 

 

아파트 단지에 초등학교가 있다.

 학교 옆을 지나는 아파트 주 진입로에 심은 나무들이 30여년을 지나는 동안 많이 자랐다.

학교 옆이라 아이들이 건너는 횡단 보도가 여간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중앙 화단 끝에 심어 놓은 향나무가 너무 자라 아이들은 오는 차가 보이지않고 운전자에겐 건너올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1년전 아파트 관리 사무소를 찾았다.

향나무를 뽑아 버리던지 가지를 전지해주길 바랬다.

담당자는 현재 아파트 진입로는 구청 도로로 되어 있어 아파트 관리소에서 함부로 자르거나 뽑지 못한다는것이다.

아이들 죽는 것보다 관할이 먼저라는 사고 방식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지.

그러나 일을 시키는 방법을 안다.

초등학교 교장을 찾자 여교장이  뜨아하게 맞는다.

아파트 주민이고 내아이들이 25년전 이학교를 다닌적이 있다고 인사를 건넨 다음  아파트  진입로에 있는 횡단 보도가 너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렇잖아도 평상시 생각은 하고 있었다고 입술에 침도 바르지않고 말을 한다

설사 생각을 했더라도 행동이 없다면 마찬가지다.

교장에게 관리 사무소에선 딴소리를 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학교장 명의로 구청에  공문으로 요청하면 즉시 조치될 것이 라고 제안을 해주었다.

일주일뒤 100여미터의 아파트 진입로 중앙 분리대의 시야를 가리던 나무가지들이 정리되고 문제의 큰 향나무는 전지한 것을 보았다.

 향나무 윗부분을 잘라 길을 건너는 어린이들은 다가오는 차을 잘 볼 수 있고 운전자들은 아이들의 다리를 볼 수 있게 밑을 확 잘랐다.

내 마음 같아서는 통채로 뽑아 버려야 했다.

공무원의  약점은 나중에 책임 추궁당할 것이 두려워 일을 하는데 있다.

 앞서 점검하고 미리 조치하기보다는 "민원"이 들어오면 검토하여 조치해주고 일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통상 말단  공무원 사회다.

 진정 아이들이 걱정 된다면 구청이고 학교고 누가 먼저 나서서 일을 해야했다.

하나의 예들에 지나지 않으나 모두 안전 불감증이다.

시간이 가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나 속도가 늦다.

세상은 분명 까다로운 사람들이 발전시키는 것이다.

 둥글게, 모나지 않게,누이좋고 매부좋은 방향으로 묻히다 보면  언제가 무슨일이 
또 터질런지 안타깝다.

향후에도 한국사회에서 살아 간다는 것이 서바이벌 게임의 일부라면 우리의 삶 자체가 비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