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젖꼭지 우유병을 빼앗긴 외손자의 슬픔

Jay.B.Lee 2014. 6. 9. 08:03

 

 

 

 

 

외손자가 이제 27개월이 지났다.

우리와 함께 산지가 4개월이다.

주중엔 우리와 있다가 주말엔 자기네 집으로 갔다오는 반복적인 생활의 불편함에 서로 익숙해졌다. 

늘 함께 있는 동안 아이가 크는 줄도 모르다가 한번  높이 안아 올리다보면  묵직하다

손자가 크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외손자가 어찌나 말의 습득이 빠른지 여자아이들을 능가한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땐 영낙없는 어린애라 졸음이 오면 심통을 부리다 금새 잠이 든다,

따듯한 우유병를 빨고는 꿈나라로 간다. 

그 나이에 젖꽂지 우유병을 빠는 건  한참 늦은 것이라고 하는데 안쓰러워 그냥두었다한다.

간혹 딸이 출근한 뒤 깨어나 "엄마 보구싶어요" 할 때는 마음 한구석이 찡해온다

그래도 성격이 좋아 금방 다른 놀이에 잊고 만다,

며칠전 손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손자가 우유병을 빨고 잘 저녁시간 ,딸아이가 아이 앞에서 우유병 젖꼭지를 큰가위로 싹뚝 잘랐다.

 더 이상 젖꼭지병은 안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손자는 떨어진 고무 젖꼭지를 주어들고 붙이려 애쓰며 어찌나 오래 서럽게 철철 울든지 딸과 할머니인 아내가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처음 경험하는 '익숙한 것과 결별'의 슬픔이다.

 젖꼭지 우유병 대신 빨대로 마신다.

이제 포기를했는지 "할머니 ~우유 따듯하게 데워주세요"한다

우유를 오래동안 빨아 먹은 외손자를 보며 세살때까지 엄마 젖을 빨았다는 내 얘기가 생각난다.

나 자신은 기억할리 만무지만 가장 믿을만한 누나가 들려주고 증언한  얘기라 전설아닌 사실인 모양이다.

마침 밑으로 동생이 없는 동안 ( 동생과 5살차이다) 엄마젖을 독차지해 오래동안 먹는 특혜를 누렸다.

그 당시 젖을 뗄 방법을 생각해낸것이 엄마 젖꼭지에 *빨간 소독약을 발랐다고 한다.

처음 빨간 엄마젖을 보며  징그러워하기는 커녕 대뜸 입으로 빨아 뱉은 뒤 엄마젖을  먹었다는  나다.

그 다음 시도한 방법은  쓰디 쓴  노란 *긴계랍을  젖꼭지에 발랐다. 

그러나  쓴 맛에  몸을 사리기보다 입으로 쪽쭉 빨아 뱉고는 다시 엄마젖을 먹었다 한다.

내가 그렇게 독하고 영악한 애기였나.

혹 생존의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애기때의 내 얘기가  떠오르자  외손자가  않되긴 했다. 

다행히 우유 자체는 금한 것은 아니어서 마신뒤  곧 잠이 든다

머잖아 우유 젖꼭지 병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나 아이에게도 내재한 깊은 슬픔의 감정이 있다는게  놀랍다.

항상 아기로 남아 있을 수 없는 법.

외손자가  강하게 자라길 소망한다.

인생은 " A단조의 슬픔"이라는 말도 있고 고통의 시작임에.....

 

 

*빨간 소독약:

50년대 중반까지도 일본어 그대로  "아까징끼"라 불렀다

벤또(도시락),자부동(방석),호다이(붕대),아까징끼(빨간 소독약),와루바시등

국가에서 일본말 사용금지작업에 따라 생활용어들은 차차 없어져갔다.

특히 기술용어-건설현장,자동차업계,섬유사업분야 같은 곳은 그후에도 수십년이 걸렸으며 현재도 사용중인 곳이 있다.

 

*긴계랍

"금계랍"을 흔히 그렇게 발음했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키니네를 이르는 것으로 캡슐에 들었다.

무척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