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묵우(흑우) 김대환 선생

Jay.B.Lee 2014. 3. 25. 14:59

사진:김대한 선생의 아리랑 .

오래 보관해온 것으로 이제 선생이 떠난지 10년으로  표구해 놓을 때가 되었다.

서체는 김대환 선생만이 가진 유일한 필체다.

붓을 주먹으로 잡아 썼다.

사진:묵우(혹은 흑우란 호를 사용한다)김대환 선생의 음반이다.


김대환 선생이 별세한지 10년이 지났다.

소장하고 있는 김대환 선생의 연주음반을 보며 잠시 김선생과의 인연을 생각해 본다.

 친구의 소개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늘 검은 독일 병정같은  전투 핼멧에 검은 옷을 입고 당시 귀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일설에는 전두환 대통령 동생 전경환씨에게 세각 작품을 팔고  물건대금으로 청와대 경호실에서 쓰던 중고오토바이를  대신 받아 왔다고하는 얘기도 있었다.

여하튼 그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제삼 한강교를  달리는 모습은 여간 멋진 풍경이 아니었다. 

김선생이  오토바이를 타는 이유는 단순히 교통 체증없이 다니고 싶어서라고 했다.

김선생의  공연을 처음 접한 것은 1993년 서울 신라 호텔에서 열린 회갑 공연때다 

국악인들과의 해금 연주등 찬조 공연도 있었고 김선생에게 북을 배우던  도올 김용옥(참 좋아 지지않는 분이다)의 축사도 있었다.

그의 연주의 하이라이트는 정동 문화 일보 회관에서 공연한 "흙소리"다

무대위에 그의 펫보이(Fat Boy) 할리 데이비슨  1400을 올려 놓고 엔진 파열음에 맞추어 자유롭게 북채를 휘두르던 김대환 선생이었다.

지금도 그의 음반을 걸고 소릴 들으면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연주였다.

김대환 선생은 당시 국내보다 국외 -특히 일본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졌으며 워싱톤D.C 백악관 앞 공연에도 초청을 받았다.(마이클 잭슨,스티비 원더 등도 참가)

김선생은 국내보다  해외 에서 더 알아주는 타악기의 일인자였다

악기를 배울 때 "너같이 소질 없는 녀석은 처음 본다"는 소리에 오기로  그는 연습으로 극복을  했다.

다섯 손가락 사이로 북채를 세개씩 끼고 손가락에서 피가 베일 정도로 정도로 연습을 했다. 

 오죽하면 "연습은 구도의 길"이었다고 했을까.

현대 자동차에서 처음 <아반떼>를 론칭하던 시절, 안개속에 자동차의 자태가 들어나며 울려오던 웅장한 소리는  김대환 선생의 북소리다.

고양시청  전시장에서 사진 작가 김중만씨는 타 유명 예술인과 달리 김선생의 얼굴  대신  김대환 선생의 굽은 손가락 열개를 찍어  전시했었다.

2004년 김대환 선생이 한성대 한완상 총장에게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게 된날  참석했다.

어느날  김대환 선생이 갑자기 깎두기 국물이 먹고 싶다고 해서 친구와   독립문 근처 도가니탕집" 대성옥"(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들려 유명한 집이다)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그리고 김선생의 부음 소식을 들은 것은 3일후였다.

김선생은 항상 소박하고 가식이 없었으며 음악외엔 도통 관심이 없던 순수한 분이었다.

김선생의  추모 음악회에는 김선생이 가르치던 중앙대 연주단 ,일본의 지인들-Free Jazz연주자들이 착석하여 공연을 했다. 

김선생이 연주 작품외 남긴 세각-한톨에 283자의 " 반야심경"을 새긴 쌀은 1990년 기네스 북에  오른바 있다.

 그 쌀알을 보려면 인사동 김대환 기념관을 특별히 찾아 현미경 모니터로 확인이 가능하다.

텅그스텐을 가늘게 갈아 쌀 한톨에  마음으로 썻다는 글씨가 반야심경이다.

 지금도 기념관에 보관 중인 북채를 든 김선생의 의 대형 흑백 사진을 보면  금방이라고 튀어나와 둥둥 북을 울릴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미군부대 연주시절에 조용필도 함께 했었다.



김대환 선생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며"땅의 울림을 듣는다.심장의 고동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가 타고 즐겨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는   당시 4만 5천불을 주고 특수조립한 "할리"였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검은 재킷,검은 부츠,검은 안경을 쓴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생에 창춘이란 어느 특정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나이8-70을 먹든 80을 먹든 마음의 상태가 청춘이면 청춘이다.

내가 연습을 하고 있는 한 나는 청춘이라고 느낀다."-자서전' 연습은 장엄한 구도의 길이었다.'에서

중국의 세각을 보고 인간 한계에 도전한 김대환 선생의 쌀한알에 새긴 반야심경.

새기는 것 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쌀이 부서지는 것이라고 했다.

0.2미리 텅그스텐 핀으로1 mm두께의 폭에 6줄을 새겨 넣는 세각의 극치


흑우 김대환 자서전-"연습은 장엄한 구도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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