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랫 만에 함께 만나는 친구들이었다.
중고교 동창으로 캐나다에서 25년전 종종 부부 동반해서 만나던 친구였다.
한 친구는 은행을 다니다가 캐나다 주재후 귀국하여 마침 캐나다에 진출한 국내 기업으로 자릴 옮겼다.
회시가 문을 닫고 떠난후에도 캐나다에서 살다가 자녀만 남기고 몇년전 영구 귀국하였다.
다른 친구는 회사 유럽지사에서 근무하다 캐나다에서 신학 공부를 한뒤 목사 안수를 받고 캐나다에서 목회를 했다.
1996년 국내 대학으로 옮겨 교목겸 교수로 근무하다 은퇴했다.
지금은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신학 대학에서 강의를 반년씩 하거나 가끔 캠보디아에 동생이 세운 병원에 가서 일을 도와준다고 한다.
동생은 형보다 먼저 토론토에서 목회하다 지금은 무료 선교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의사들의 무료 봉사 활동으로 캠보디아에서 이미 유명한 병원으로 성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마치 100년전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모습이다.
우습게도 스마트폰을 개통하며 카카오톡으로 연결되며 잊고, 잊혀지고 살았던 그들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자릴 마련햇다.
아무래도 조용히 담소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역삼동 한식집에 예약을 했다.
식사가 나오기전 친구 목사가 기도를 했다.
20여년전 토론토 친구의 목사 안수식 ,우리가 다니던 교회에 예배를 마치고 집 가는 길에 몇번 들렸던 친구가 목회하던 교회,옥스부리지 피크닉등이 마치 어제일처럼 지나간다.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온 여종업원이 우리에게 갑자기 자기를 위해 기도해 줄수 없냐고 청했다.
친구의 얼굴에 "목사"라고 써 있었나 보다.
그녀는 아들과 딸이 있으며 아들은 교회를 잘 나가고 있고 훤칠한 키에 운동을 좋아하더니 간호사가 된다고 간호학과에 다니고 있고 딸은 요즈음 교회를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위해 토요일,일요일도 여는 음식점에서 밤낮으로 일을 하고 하고 있다며 교회에 갈 시간이 없다고 했다.
무슨 사정인지 음식점에선 아이들이 있는 것을 숨기고 있다고 한다.
전후 사정을 들은 후 목사인 친구는 방문을 잠시 닫고 삶에 지친 어머니,한여인에게 모든 것 내려 놓고 우선 교회를 나가기를 기도 했고 그 자녀들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했다.
친구의 기도가 끝나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뜻하지 않은 자리에서 갈급한 영혼을 보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보았다.
노처녀같은 모습으로 열심히 사는 그녀를 보며 우리가 위로를 받았다.
마치 그녀를 만나게 하려고 그 집을 예약하시게 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번 주말 캠보디아로 떠난다는 친구.
한 친구는 중남미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지인을 돕기 위해 현재 무료로 가르쳐주는 이발 기술을 배우고 있다 한다.
모두가 또 다른 은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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