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소장한 크린트 이스트우드 작품의 일부
어린 시절 흑백 TV속에서 보던 로하이드에서 처음 크린트 이스트우드를 만났다.
당시 크린트 이스트우드를 기억했다기 보다 마카로니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에서 그가 TV 연속극 "로하이드(Rawhide)"의 형제중 하나임을 기억해낸거다.
황야의 무법자(석양의 무법자,석양의 건맨)에서 엔니코 모리코네의 참신한 음악에 열광했고 그 후 그의 추종자 되었다.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열심히 보았던 권선징악형의 서부극 패턴과 너무 달랐다.
황야의 결투,역마차,세인,라라미에서 온사나이,오케이 목장의 결투,하이눈 ,빅 칸트리 같은 영화와는 너무 다르고 주연 역시 케릭터가 다른 배우였다.
인간의 본능인 잠재의식에서 오는 잔혹함에서 환호했다고 할까.
이번에 출간된 크리린트 이스트우드 전기격인 두권중 하나인 "거장의 숨결"을 읽으며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세제오 레네오 감독이 허리우드의 규칙을 몰라 만들어진 것을 알았다.
한 장면에 총쏘는 장면과 맞는 자가 동시에 있어서는 않된다는 규칙이다.
허긴 유럽에서 만든 영화가 아닌가.그래서 유럽에서 성공했고.
허리우드 영화에서 백인과 흑인이 정사하는 장면을 찍어서는 않된다는 얘기보다 좀 황당한 규칙이다.
"거장의 숨결"에서 크린트 이스트 우드의 인텨뷰를 통해 족적을 따라간다는 것은 마치 추억여행 같았다.
어둠속에 벨이 울릴때(Play Misty for me-영화에서 사용한 주제곡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음악이 너무 좋았다.)에서 스토커의 공포를 맛보게 하더니 그의 영화는 계속 여러 장르로 발전해 갔다.
어린 시절 고생을 한 부친 아래서 자라선지 영화 제작에 있어서 특히 재정적 무리를 하지 않았다.
예산이내로 ,특히 리허설없이 많은 영화 장면들을 잘 찍었고 남이 무관심한 주제와 시나리오를 가지고 도전했다.
성공하지 못한 것이 있더라도 크게 실패한 영화는 없었다.
자신이 출연 ,감독하던 초창기 시절의 웨스턴 무비 "평원의 무법자"나 "Pale Rider"는 개인적으로 의미가 컸는지 몰라도 내겐 "Shane(아란랏드 반 헤브린 주연)" 아류로 비춰진다.
촬영장에서 배우들과의 관계에선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유모스럽고 퍽 다정한 인간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재즈를 좋아해 특히 색스폰 연주자 찰리 파커의 전기 영화(버드)를 만든 것은 성패를 떠나 그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더티 하리를 시작 미국 권총 Magnam의 위력을 보여주더니 적절한 시기에 형사역을 떠났다.
그후 꾸준히 많은 작품을 감독하고 출연한 작품중에"무법자 조시 웰스 ","용서받지 못한자 "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사선에서(음악:엔니오 모리코네)"밀리언 달라 베이비", "아버지의 깃발"."체인질링","Grand Torino"등이 내겐 특히 좋았던 작품이다.
살면서 어떤 작품을 특별히 하겠다는 계획보다 흐름속에서 마치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듯 남이 관심을 갖지 않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성공시키는 것을 보면 크린트 이스트우드에겐 남다른 예지력이 있다.
그것이 그의 색갈이 되었다.
1930년생 ,이제 84세의 노장이다.
남은 기간 동안 얼마나 영화에 관여할지 모르나 이제 그의 전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거장에 대해 살아 생전 정리해 두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의 작품들을 보며 지난 시간들의 일부를 영화를 통해 함께 "거장의 숨결"을 느낄 수 있던 것은 동시대를 살아온 행운이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게 되었고 몇개의 작품은 어디 파묻혀 있는지 찾지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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