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나기 박물관 앞의 조각 "포도주 마시는 사람"(내가 붙인 제목이다)-손에 든 잔은 소뿔로 만든 포도주잔 '칸치(Kantsi)"다.
시그나기를 찾은 이유는 성채도 있으나 시그나기 박물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시그나기 미술관에 니코 피로스마니의 그림이 제대로 전시돠어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2년전 트빌리시 국립 미술관방문시 수리중이어서 실망하고 나온 경험이 있어 이번엔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 Telavi를 우회하여 가는 길목이다.
코카서스산맥 가까이 있는 산골마을 Omalo나 Dartlo는 Mestia를 다녀온 후여서 더이상 가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시그나기 국립박물관은 작은 읍내에 비하여 전시 내용이 훌륭하다.
1층은 고고학 박물관박물관이다.
도기는 마치 청갈색이 어우러져 차라리 현대적 작품처럼 보인다 .
은제 접시또한 뒷바탕에 그려진 포도와 꽃은 감탄을 자아낸다.
무기류도 진열되어 짧은 창들과 ,긴창 도끼도 큰도끼 ,작은 도끼등으로 무기의 효율성을 보는 것 같다.
전쟁터에서는 무조건 길고 큰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16세기의 동제 접시들도 훌륭하다
2층은 미술관으로 니코 피로스마니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니코 피로스마니(1862-1918)
조지아 인중 남자이름으로 제일 많은 이름은 니코(Niko)이고 여자이름은 니노(Nino)일 것이다.
니코는 니콜라스에서 따온 것으로 Niko Pirosmani,혹은Niko Pirosmanashvili라한다.
조지아 시그나기에서 가까운 마을 마르자니(Marzani)에서 출생했으며 아버지,큰형의 사망으로 고아가 되자 두 누나가 시집간뒤 부유한 상인 집에 입양되어 1872년부터 1890년까지 함께 살았다.
10살때 입양되어 28세까지 산 셈이다.
그는 미술적 재능이 있었으나 정규 미술공부 대신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다.
그는 양아버지의 딸에 대한 연민이나 레스토랑의 가수와 이루지 못 할 사랑등 보통 젊은이들이 그렇듯 사랑에 빠졌다.
1890년 수도 트빌리시로 이주한뒤 철도 노동자,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돈을 받고 간판을 그리거나 빈한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민족성이나 영혼을 담은 그림을 그렸다.
1912년 유럽에서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으나 1916년 신문사의 혹평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는 사람들을 멀리하며 살았다.
1918년 5월 5일 주변에 지켜주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홀로 지하실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공동묘지에 묻혀 현재 그의 묘지는 확인 할 수 없다.
그는 프리미티즘( 원시주의:원시성을 추구하는 현대적 그림)의 대가로 그의 작품은 수도 Tbilisi 국립 미술관에 160여점,모스코바 "트레치아코프"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의 생전에 불유했던 삶과 소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는 그의 死後 러시아 대표시인 안드레이 보즈넨센스키(Andrei Vozenesensky)의 詩에다가 라투비아출신 작곡가가 부른 "백만송이 장미 (Millions of Red Roses)"로 태어 났다.
피로스마니가 레스토랑의 가수에게 차로 많은 장미를 실어 보내어 사랑을 고백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태어난 음악이다.
러시아에서는 사랑의 노래로 유명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심수봉이 불렀다.
니코 피로스마니를 생각하면 묘지를 모르는 모자르트나, 독학으로 배운 그림를 그리며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죽은 그리스 Theofilos Hadjimichael(1864-1934)가 늘 연상되는 조지아의 대표화가다
사진 촬영 금지라고 되어 있으나 그림을 다시 기억하고 싶은 대한 욕심이 앞서 규칙을 어겨본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은 후레쉬 없이 허용하는 걸 기본으로 삼아.
The Feast of Malakans.-피로스마니.조지아 풍습으로 술건배를 제의하는 것을 Tamada라고 한다.덕담을 하면서 돌아가며 하며 술은 한번에 마셔야 한다.
Doctor on Donkey-피로스마니
수확-피로스마니
Portrait of Tamar Tsitsishvill 1940
옛 사진을 보는 일은 즐겁다.
니코 피로스마니. 윗 왼편에서 둘째 그림은 피카소가 그린 화실의 '피로스마니"다.
의자가 조각작품 같은 미술관 내부
지도상에서 본 시그나기의 위치.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고 목표보다 방향이 더중요하다.
흑해와 카스피해 중간에 위치한 조지아를 한눈에 볼수 있다.
박물관 포스터.조지아 역사상 가정 황금기를 구가했던 타마라 여왕이라 건국왕 다비드와 함께 빠지지 않는 역사인물이다.
시그나기는 안개에 깔리며 걷힐줄 모른다.
박물관 한 곁에 자릴 차지한 전통 포도주 단지 크베브리(Kvevri).
안개가 걷히기는 커녕 더 짙게 내려깔렸다.
어제밤 호텔을 안내해준 레스토랑의 친절한 manager.아침에 우연히 만났다.
니코 피로스마니의 "당나귀를 탄 의사" 그림을 조각으로 형상화한 작품
레스토랑같아 정원을 보러 들어가 본곳.
어제 버스를 함께 타고 오며 나를 보았다는 아가씨.영어가 유창하다.
오늘 이곳에서 와인 품평을위해 오는 손님들을 위한 행사가 있다고 한다.
아마 그 행사를 돕기위해 온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레스토랑은 아니고 회관 비슷하다.
라다와 멜세데스 벤츠가 공존하는 사회
안개가 서서히 물러나자 손님을 태울 준비를 하는 마부
박물관 벽.
칼과 방패를 보며 전사자의 명단으로 짐작하는 벽에 새긴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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