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영국 출장길에 사온 것으로 길이 14센티가 못되는 치약이다.
호텔에서 잔돈 없애려 샀는지 공항에서 잔돈 털며 샀는지 모르는 치약이다.
알미늄 튜브에 영어로 Toothpaste 가 없다면 무좀 약으로 착각 할 만큼 무겁고 옛물건 같이 투박하다.
치약 뚜겅을 벗겨 칫솔위에 짜가지고 이를 닦는 순간 잊고 있던 60년전의 기억이 툭 튀어 나왔다.
바로 한국 전쟁중 어린 시절 사용했던" 치분 "맛이다.
요즈음 사용하는 가글 " Listerine "맛도 난다.
납작한 봉투안 에 들어있는 치분은 꼭 곱돌가루(활석)를 갈아놓은 듯 고와 칫솔에 물을 묻혀 치분 봉지에 칫솔을 넣어 한번 휘저으면 묻어 나왔다.
화~ 하면서도 비위가 약간 상했으나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아침마다 이를 닦았다.
그 후 크면서 신체 검사를 할 때마다 잇몸이 너무 약하다는 치과 의사말이 나중엔 나에겐 공포로 다가왔다.
치아가 다 빠진다면 생각해도 끔찍했다.
가끔 시골에서 올라 오시는 할머니께서 당시 <틀이>를 하고 계셔서 저녁마다 유리컵물에 담긴 틀이를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교훈이 되었다.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주 이를 닦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사이다 병을 "잇빨"로 따며 자랑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중에 고생할 거라고 짐작했다.
군대 가서도 시간만 있으면 하루 2-3회를 닦아 현재 그 덕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치아가 나쁜 아내는 결혼당시 옥수수처럼 가지런한 내 이가 부러웠다 한다.
사랑니를 25년전 외국에서 두개 , 18년전 한국에서 2개를 발치후 아직 나머지 28개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중 한개는 많이 상한 편이라 가끔 고생했는데 아플 땐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시원할까 싶어 뽑자고 해도 치과의사가 뽑아 주지 않는다.
"어디 자기 이만한 것이 있나요"하며 말이다.
지인인 칫과 의사는 10여년내 임플란트 대란이 일어 날 거라고 예측한다.
머잖아 가계 대출로 인한 대란이 닥칠 것처럼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돈된다고 마구 달려든 치과 의사들 때문 해박아 넣은 치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거란 예상이다.
왕소금으로 이를 닦던 시절이 있었고 칫솔이 뒤로 눕도록 사용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일년에 두세번 치과에 가서 점검을 하고 가볍게 크리닝을 하여 치석을 제거한다.
치분으로 이를 닦던 어린 아이는 이제 땅콩이나 아몬드를 조심히 씹어야 하고 갱엿이나 엿을 먹을 땐 이에 쩍 붙어 버릴까봐 노심초사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일깨우는 영국 치약의 촌스런 치분 맛이다.
집에선 치약과 오랄 B 칫솔을 보따리로 쌓아 놓고 사용한다.
지금은 가장 좋은 풍요의 시절이어서 치아도 덕을 많이 본 셈이다.
치통없는 세월만 남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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