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각 동마다 복숭아나무 한 두그루가 있다.
아파트 단지가 생긴후 몇 년뒤 심은 복숭아여서 나무들이 작다.
심은 뒤 비료도 준 적 없고 전지하며 관리를 해주지 않는터라 대부분 쓰러질듯 옆으로 누워 크지도 못한채 간신히들 버티고 있다,
우리동의 복숭아 나무는 내가 일찌기 톱으로 가지를 잘라준 적이 있어 다른동 나무에 비해 양지 바른 곳에서 균형이라도 잘 잡고 있는 셈이다.
봄이되면 매화 벚꽃 살구꽃과 더불어 난장이처럼 크지 못한 나무에서 해마다 피어나는 복사꽃을 보는 재미가 수월찮다.
꽃이 진 다음에는 자연의 섭리대로 어김없이 복숭아가 달린다.
과수원에서 자랐다면 크고 맛있는 복숭아를 수확했으련만 나무들은 관상용이 되어 점점 돌복숭아가 되어간다.
문제는 달린 복숭아가 연초록에서 연녹색빛이 비치는 찰라 깜쪽같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없어진 다음에야 올해도 어떤 녀석인지 또 털어 갔구나 정신이 버뜩든다.
한두개 남겨 주민에게 보는 즐거움을 주겠다는 여유란 전혀 없다.
많이 달려야 3십여개.
아직 딱딱해 그냥 먹을 수 없는 설익은 작은 복숭아를 왜 따가는 것일까.
푸른 빛의 설익은 복숭아를 커다란 청매실로 착각한 것은 절대 아닐거다.
복숭아에 술을 넣어 과실주를 담궈 보는 것일까.
복숭아 술을 담근다면 차라리 한철에 나오는 복숭아가 더 향취나고 맛을 낼 일이다.
처음에는 복숭아를 털어가는 사람에게 분노하고 속으로 욕해 보았으나 다 소용없는 일이다.
복숭아가 달려 있어도 내가 먹지 못할 일이고 관상용으로 남겨 놓아도 며칠이나 볼 수 있을까.
복숭아가 익기까지 기다려도 과수원 것처럼 크고 단물이 풍부한 맛난 복숭아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요긴하게 사용한다면 ,복숭아에 소주를 부어넣고 혼자서 흐뭇해 한다면 그 것으로 족하다고 마음을 바꿔먹는다
내겐 꽃이 핀 시절을 즐겨 좋았고 그 분께서는 복숭아주로 행복하다면 더 이상 내 마음의 평정을 잃을 일이 없다.
서서히 세상일에 끈을 놓아 가며 하찮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무언가 되보려 애써야 할 나이가 지나서 하루가 더 평안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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