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발칸반도 부부 자유여행(2011

Rila 수도원(Monastery) 다녀오기

Jay.B.Lee 2011. 11. 21. 08:42

 

 

불가리아 의 명소를 꼽는다면  소피아. Veliko Tarnovo,Plovdiv,Rila 수도원 네곳으로 처음엔 한곳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전체의 여정을 그리다 보니 욕심을 버려야 했다.

중복되는 길을 피하고 우선 순위를 두자 Plovdiv를 빼기로 했다.

Rila 수도원은 소피아 남쪽 120키로 지점, 그리스 국경 가까이 있다.

숙소에서  세명이 가면 일인당 20유로 얘기 했으나 저녁까지 신청자가 없어 직원은 서로 10유로씩 손해 보는 안으로 우리부부만 갈 경우 50유로를 제안했다.

혼자 여행 할 경우는 당연히 대중 교통을 이용한다.

 이번엔 아내와 함께 한 경우라 가능한 다리 아픈 것을 피해야 했다.

 막 도착한 기사겸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타자 차안이 몹시 지저분하다.

다행히 차는 독일 오펠사 제품으로 헌차는 아니다.

잠시 고속속도로를 타는가 싶더니 2차선이다.

가이드  운전 솜씨는 좋은 편으로 수도원까지 가는 동안 틈만 있으면 추월이다.

운전 실력은 인정하겠지만 조마조마하다.

내가 너무 오래 운전을 해온 탓이다.

불안감에 차라리 밖을 보는 편이 나았다.

구릉과 구릉 사이에 자리한 그림 같은 동네를 지나다 보면 아직 갈아 엎지 않은 옥수수밭이 나오고  해바라기 대공줄기만 남은 광활한 밭이 펼쳐진다.

빈집과 스러져가는 폐가 사이로 가을 빛이  창연하다

길가에 옷을 길게 걸어 놓고 파는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단 두종류의 옷을 판다-운동복과 군복이다.

예비군도 없을 터이고 이웃과 전쟁도 없는데  왠 군복을 그렇게 많이 파는지

 

Rila 수도원 부근 St.John이 수행하던 동굴로 향했다.

 

동굴 가가이엔 작은 교회가 문이 굳게 닫힌채 있다.

 

그네들의 십자가. 밑의 통의 용도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돌틈 사이에 있는 종이들은 쓰레기가 아니고 기도 ,소원을 적은 기원문이다.

산에서 흐르는 성스러운 약수를 그냥 지나칠수 없다.

 

 

마침 한 여인이 돌로 눌러 놓은 준비되어 있는 봉지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기도문을 적었다. 그녀는 무엇을 간구했을까?

 가이드를 따라 성자 죤이 누워 잠자던 작고 비좁은 동굴로 들어가 간신히 하늘이 빠곰히 들여다 보이는 구멍으로 기어 올라 왔다.

죄르 짓지 않은 사람만이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구멍.

뚱뚱한 사람이 나오기엔 버겁다.

고로 뚱뚱한 사람은 죄인이다-탐욕이란 죄를 지은 죄.

 

 

 

 릴라 수도원 앞이다. 가이드는  수도원 주차장 아닌 150미터밑 공짜 주차장에 우릴 내려 놓고 2시에 만나기로 했다.

 

 

릴라 수도원 입구.입장료는 없다.

천정에 걸린 사슴뿔은 무슨 의미일까?

 

"876년에 태어난 성자 존(Ivan Rilski)은 수도사가 되어 25세에 영적 완성을 위해 수행을 시작했다.

몇년후 Rila Mountains으로 들어온 그는 자신을 신에게 바쳐 오로지 고행과 기도로 헌신했다.

그는 12년간을 차가운 동굴에서 살았으며 7년간은 바위를  침대삼고 하늘을 이불삼아 지냈다. 

그는 강한 신앙심과 기도로 악의 유혹을 견디어 내었다.

그는 불가리아 수도원의 설립자였고 946년 영면했다.

제자들이 마지막  말씀으로 들은 그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제자들이나 신부나 평신도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다.

릴라 수도원은 대대로 불가리아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힘을 주는 등대와 같은 장소다.

리라 수도원의 예배의식은 전 불가리아  수도원의 모범이 되었다.

본 수도원은 수도사들이나 ,교사,화가,나무 조각가,아이콘 화가및 평신도들에게 영적인 힘을 배우는 요람이다.

당신께 지금 부터 영원까지  세세토록 영광만이 임하소서"  -대충 이런 내용의 설명문이 붙어 있다.

 

927년 최초 건축 1,469년 복구 하였으며 오스만 투르크 통치 시대에도 문화와 언어를 간직했다.

1833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즉시 재건하였다.

이반 릴스키의 유골은 980년 소피아로 옮겼다가 헝가리의 지배시 항가리로,반환후엔  불가리아 제국시대  Assen 1세는 Tarnovo(당시의 수도)로 옮겼다.

1469년 ,500여년만에  돌아왔다.

4층으로 된 수도원엔 300여개의 수도사를 위한 방이 있다.

입구 오른 쪽에는 2차 대전중 불가리아내의 유대인을 구명을 위해 애쓰다 나치에 의해 독살당한 것으로 추측되는

  Boris 3세의 무덤이 있다.

심장만이 묻혀있다 한다.

 

입구에 들어가며 왼쪽 수도원 건물이다.

 

입구에서 들어와  뒤돌아본 수도원 건물

 

1830년 지어진 Nativity Church .

             

 

             성모,그리스도의 탄생화 1,200개가 있다는 교회의 벽화(Mural)

             

 

 

 

수도원 정원 마당은 기이한 설계로 보기에 편편치 않다.

 

 

교화 옆에는  아이콘류를 파는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다.

 

교회의 뒷면.흐렐리요 탑.

 

 

 

이곳에도 약수(성수)가 나온다.

 

교회의 뒤

 

 박물관 입구 벽화

박물관 개관 시간 08:30-16:30

 

 

 

 

스페인 세르비아 성당의 기둥 양식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북문으로 나가는 천정위의 그림이 매우 해학적이다.화가가 사자를 보지 못해 사자의 얼굴이 사람얼굴 처럼 되었는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해 그렸는지 앞발도 사자 발은 아니다.개처럼 기둥에 묶였다 중간에 끊어진 사슬이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뜻한 걸까 ?1862년 이란 년도가 선명하다.

 

릴라 수도원의 유일한 식당이다. 우체국도 있다.줄서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식사후 가보았는데 손바닥만한 둥글고 납작한(호떡보다 얇고 작다) 빵을 살짝 데워주면 밖에 있는 초코렛 시럽에 Sugar Powder(분가루처럼 날린다)를 뿌려 먹는 간식이다.식사후 사먹어 보았는 0.5유로(800원)

 

한 여름엔 사람이 가득찰 옥외 식당 .이곳 유일한 식당으로 완전 독과점 체제다.아니면 수도원 오기전 20키로 지점에 있는 마을이 식사를  할수 있는 곳이다.반 지하와 일층으로 되어 있  다.

              

 

깔끔하고  정결한 식당,그러나.....

              

 

 

 

내가 시킨 불가리아 전통 소세지 .

전통이란 말에 약해진 자신이 후회 되었다.

옆에서 다른 사람이 먹는 돼지 목살로 할 걸 그랬다.

터키에서 여행하다 온사람들이 돼지 고기를 마음 껏 먹고 가는 곳이 불가리아다.

야채를 먼저 먹다 생각이 사진을 찍었다.

맥주 안주에 적합 해 보이는 소세지는 그릴에 구워 냄새는 좋으나 맛은 종이장 씹는 것처럼 뻣뻣하다.

즐겨 먹지 않으나 보들 보들한 소세지에 익숙한 우리다.

맛없다는 영국식 아침에 나오던 야들야들하고 맛있던  소세지가 갑자기 생각난다 .

더 죽을 맛은 그럴 듯한 식당이 흡연 금지 지역이 아니어서 웨이터녀석들과  손님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 였다.

국가/국민 수준 의식의 차이란 간단하다.

흡연과 화장실문화다.

우리나라가 저급한 대열에서 빠져 나와 얼마나 다행인지

 

마지막으로 돌아본 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