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이화여대 아르바이트생

Jay.B.Lee 2011. 5. 13. 07:49

가끔 집안에서  불필요 한 것을 찾아 버리는 것이 주변을 정리하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중 하나다.

마침 편지와 카드속에서 이화여대생에게서 받은 연하 카드가 눈에 보였다.

1986년과 1987년  회사에서는 두차례 여름 방학동안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을 받아야 했다.

우리가 일손이 필요해서 요청한 것이 아닌  회사의 일방적  할당이었다.

 회사도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반강제적(?)  권유여서  받아들은 것으로 안다.

전 두환 대통령 시절, 과외를 근절하기 위해 학생 아르바이트를 금지했다.

국보위를 거치며 언론 방송 통폐합,기업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삼청 교육대등 참신한 정책은  많았지만 학생 과외금지를 포함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독재 정권에 항의 하며 연일 터지는 대학생들의 불만을 조금이라도 무마하고자 고육지책으로  기업체에 아르바이트자리를 마련해 주는거였다. 

나는 딱히 회사에서 잘잘한 일만  시키기 보다  여학생에게 거의 OJT 수준의 교육을 시켜 주기로 방향을 정했다. 

후일 그네가 사회에 나와서 일 할 때 어디서든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였다.

국제 금융,무역 금융,외환 ,보험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던 부서로서  학생이 배울 것은 너무나 많았다.

직원들은 붙임성 있고 열심인 학생을 위해 외국 은행,관청등에 동행시키며  친절히 교육을 시켜 주었고  부서 회식에도 참석하고  젊은 직원들과 언니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아침,  부서엔 아르바이트 여학생으로 인해 활기가 넘쳤다. 

그녀가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간후 나는 그녀에게서 긴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평상시 막연히 생각했던 회사 생활의  이미지와 너무 다르고  직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감동을 했다는얘기다. 

그러나 여름 방학 동안 일한 곳의 자랑 얘기후  친구들에게서 돌아 온것은 비양과 질책 뿐이었다고 했다.

"매판 자본의 회사에서 일한 것이 뭐 자랑이냐?"고.

당시 일본 출장길 비행기 옆좌석에서 만났던 일본에 오래 근무한 영사 생각이 났다.

본국에 와서 일본의 좋은 점,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얘기하면

"흥 ,쪽바리 다되었구만"하고 한마디로 매도되던  시절.

그분은  그뒤엔 입을 다물기로 했다고 했다.

기술 도입 관계등 으로 인해 외국지분이 있었덨던 것을 학생들은 비난하고 있었던거다.

국산품 애용만이 나라사랑이요,외국 자본은 무조건  매판자본으로  간주하는 편향된 시각을 가진 세대였다.

또 국제 자본 ,금융시장에서의 자본 ,자본 자유화라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있는 동안 부서 직원들이 너무 따듯하게 대해 주셨고 참 많은 것을 배울수 있게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잊지 않았다. 

손희정-여학생의 이름이다.

88년 정도 졸업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45세정도 중년의 나이가 되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