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산책

사라져가는 것들-마지막 호사,상여

Jay.B.Lee 2011. 5. 5. 20:36

 

사진:동숭 아트 센터 꼭두 박물관에 전시중인 상여-조선후기 대형 목상여를 재현한 것임

 

 

죽음이란 통과의례를 생각하는 것도 나이가 들어가면서였지 어린 시절엔 장례란 행사고 구경거리였다.

어디선가 상두꾼(상여꾼)의 애절한 소리와 요령소리가 들리면 쫓아 나가던 시절이었다.

불구경,싸움구경,장례구경-워낙 볼거리가 없는 시절이라 그랬다.

펄럭이는 만장든 행렬이 나가고 상제들이 상여를 따라  그 뒤를 이어 갈 때  길가에 축제 퍼레이드 구경하듯  지켜보곤 했다.

버스를 타고 시골 길을 가면 동구밖 가까운 밭 가운데 마을 상조회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상엿집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상엿집의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눈길 조차  피하던 어린시절이었다.

상두꾼 구하기가 어려운 시골 사정이라던 것도 옛말이고 산업화에 따라 꽃상여 조차  없어지고  지금은 영구차로가 대신 하게 되었다.

목청좋고 구슬프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상여의 선소리꾼, 요령잡이는  인기가 있어 이곳 저곳에 불리워 가던 시절이다.

 지금은 선소리꾼은  어디가고  상주에게 고인의 종교여부를 물어 본다음  슬픈 음악을 틀어주는 영구차 기사가 선소리꾼  대신이다.

상여가 떠나기 전 상여위에 올라탄 선소리꾼의  요령소리 따라  한동안 좌우로 흔들며 발을 맞추는 장면이 서곡인셈이다.

상두꾼들이 "어어허 ~어어하~"하고 장단을 맞추며 선소리꾼의 목소리가 청승맞고 애절하게 애간장을 다 녹일듯 구성지게 이별을 고할 때 상제가 아니라도 주위에 있는 사람까지 공연히 눈물이 나는 법이다.

요령잡이는  죽은 자에 대한 위로와  한 많은 세상에 결별을 고하고 살아남은 자들에겐 교훈을  남긴다.

상제들은 꺼이꺼이 울고  노제 뒤에 장지까지  따라가지 못하는 여자들은 떠나가는 상여뒤에 주저 앉아 몸부림 치며 울기 마련이었다. 

상여행렬이  한참 가다가도   다리나 좁은 논두렁에선 상여가  멈춰서서 가지않는다고 상제들에게서  돈을 받았내곤 했다.

상두꾼들의 노고를 생각해서 막걸리값 정도 추렴해 내자는 것이지만 슬픈 상제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위로의 행위기도 했으며 조상들의 지혜이기도 했다.

누가 썼을까 한국인의 아름다운 배웅이란 말을.

한국의 상여처럼 아름답게 산자와 죽은 자의 이별식을 치루는 나라도 없었다.

꼭두 박물관 옆에는 상여 전시를 하고 있다.

 

              

현재 보관하고 있는 75년전 증조모 장례식 사진이다.

장례식을 대단하게 치루었다는 증조모.

집앞에 노제시  하얀  광목을 길바닥에 쭉 깔았다는 어머님의 기억이다.

집안에서 그 다음  마지막으로 상여로 장례를 치루어 떠나신 분은  할머님이시다.

맑고 푸른 금강 상류,강을 건너 좁은 논두렁길을 상두꾼들이 V자 대형을 지어 가던때가 벌써 어슴프레 45년전이다.

 확대경으로 들여다 보면 상여꾼들은 12명 이상이고 상제중 두사람이 당나귀를 탔다.

종조부와 백부로 짐작한다.조부께서는 당시 이미 작고하셨다.

지금 살아계신 당고모는  장례행렬이 가다 멈추게 했는데 이사진을 찍기위해 멈추게 하였다고 기억하셨다.

조문객들이 타고온 두대의 버스와 두대의 승용차도 보인다.

 

인간 세상이 한 조각 꿈인 것은 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그대로 보내다니 이 슬픔을 어찌 가눌 수 있으리

 늙은이 어린 아해 모두 나와 언덕에 서 가는 이 영결할 제

구슬픈 상여 소리 서러운 울음 소리 눈물 바다를 이루네-최명희 지음 "혼불"에서

 

 

 

....열두 상두꾼이 멘 상여,상두채에 올라 서서 앞소리를 하는   서서방의 가락은 여전히 아낙들을 울려놓았다.

제 설움에 울고 인간사가 서러워 울고 창자르르 끊는 것 같이 가라과 구절이 굽이쳐 넘어가고 바람에 날리어 흩어지는 상두가에 눈물을 흘린다.

어나라 남천 오허넘

명정공포 우뇌상에

요령소리 한심허다

멀고 먼 황천길을

인지가면 언제오나

어하넘 오하넘

어나라 남천 어하넘

이길을 인지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리

활장 겉이 굽은 길을

살대 같이 내가 가네

 

북망산천 들어가서

띠잔디를 이불삼고

쉬포리를 벗을 삼고

가랑비 굵은 비는

시우 섞어 오시는데

어느 누가 날 찾으리

어하넘 어하넘~

 

만장이 바람에 나부낀다.

오르막 길에서 상여는 기울고 갈가마귀가 우짖으며 앞장선다-박경리 "토지'제 1부 2권에서

 

 

 

 

 

 

 

 

 

보통 12명의 상여꾼들이 멘다. 32명이 메던 상여도 있었다고한다.

상여꾼들이 메었던 광목은 장례를 마친후 상여꾼들이 나누어 가진다.

"혼인날 보다 더 곱게 구미어 멀리 타고 가는 가마.그것이 상여였다" -최명희 지음  "혼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