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중에 오랜동안 해군 병원서 근무하다 지방 도립 병원 원장을 했던 15살 손위인 형님이 있었다.
워낙 성격이 쾌활하고 우스게 소리를 잘해 형제들이나 환자들을 늘 즐겁게 해주던 형님이다.
아버님이 두번 째 뇌졸증으로 쓰러지신후 도립 병원에 2개월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계시다가 집으로 모셔 돌아가신후 얼마 지나서다.
사촌 형님은 어느 날 얘기중에 형님이 옛날에 효자들을 많이 만들어 주었다고 위로를 해주었다.
당시 시골에서 노인들이 쓰러지면 그래도 큰 종합 병원인 도청 소재 도립 병원으로 온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어 보이는 환자의 가족에게 아무래도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이송시킨다고 했다.
서울의 큰 병원에 도착하면 병원측에서는 너무 늦었다고 시골로 가시는 편이 좋겠다고 권해 결국 시골 집에 도착하는 동안 거의 일주일이 소요되 대부분 부모님들은 기도가 막혀 돌아가시고 만다는 것이다.
그것을 만일 입원시켜 뇌사상태로 살려두게 되면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요 형제자녀들이 너무 힘들어 모두 싸우게 되고 우애는 깨어지고 결국 부모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불효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 도착하여 돌아가시게 되면 너무 아쉽고 슬픈 마음에 자식들은 모두 효자가 된다는 것이다.
요즈음 92세된 장모님을 모시고와<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 하나 밖에 없는 딸 도리를 하느라 힘들어 하는 안사람을 보며 30여년전 사촌 형님의 농담반 진담반 얘기가 생각이 났다.
12년전 차남인 내가 3년여 어머님을 모시며 간암으로 돌아가시기까지 어머니의 수발을 들었던 아내였다.
경제력이 없는 부모님 세대는 우리가 마지막까지 옆에서 보살펴 드리겠지만 우리가 늙었을 때 우리 자신과 자식들을 위해 생의 마지막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는 것이 최선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살아온,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피-Intelligentsia (0) | 2010.05.16 |
---|---|
악수 (0) | 2010.05.05 |
음악 감상 (0) | 2010.03.31 |
법정 스님과 조주선사 (0) | 2010.03.23 |
작은 아버지-가족사 (4) (0) | 2010.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