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난 아내가갑자기 오늘 김장을 하자는 것이다.
아내의 돌발적인 행동이 가끔 마음에 들지 않지만 특별히 할일도 없고해서 돕기로 했다.
아내가 요즈음 불면증에 시달리는 모습이 보기에 딱하다.
스트레스중의 하나인 밀린 숙제중 하나가 없어지면 조금 나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토를 달지 않았다.
제일 큰 스트레스인 딸의 혼사도 끝났고 해서.
아파트 단지안의 종합 상가에서 내가 일을 보는 동안 아내가 하나로 농협 옥외 김장 시장에서 해남산 절인 배추와 무와 대파,실파,알타리무,생강과 멸치 액젓을 구입했다.
아내가 시집간 딸 옷장을 정리하다 나온 은행에서 준 20만원짜리 현금 카드를 사용, 올해 김장은 공짜로 하는 셈이다.
물론 딸이 엄마 쓰라고 했다.
길건너 재래시장에서 생선 가게 에서 아내가 예쁜 주인 아줌마를 찾자 옆집 가게에서 주인이 자리를 비웠다고 대신 판다.
예쁜 새댁이 시집와 시어머니 대신 장사하기 시작한 집이라고 한다.
가격은 제대로 외웠는지 옆집 아주머니가 생새우 만원어치를 너무 많이 준것 같다고 한다.
거의 한판을 쓸어 왔으니까.
겉저리 묻혀 먹을 자연산 굴도 한봉지 샀다.
아내는 다시 농협 매장에 들어가 배와 깐 마늘과 어제 들어와 좀 시들해져 떨이로 나가는 청갓을 샀다.
산 것들을 모두 배달시키고는 집에 돌아와 식탁을 거실 가운데 놓고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대나무 소쿠리 광주리 양푼등을 꺼내 씻어 놓았다.
나는 김장에 대해 문외한이라 올해 <전과정 >을 지켜 보며 돕기로 작정을 했다.
몇년전 아내의 아파트 이웃들이 도와준다고 와서 해준 김장 때문에 김치를 먹을 때마다 고통스럽던 경험이 떠오른다.
그후 김장때는 힘들어도 혼자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했었다.
김장을 도와 준다는 것이 다른 일을 도와야지 양념 속을 자기들식대로 만들어 버려 그해 우리집 고유의 맛을 잃어 버렸었다.
특히 이웃들이 남쪽 사람들이면 조심해야 한다.
매운 것은 둘째치고 짠 김치를 먹는 것은 나에겐 큰 고통이었다.
아내는 교회 단골 떡집에서 사온 찹쌀가루로 풀을 쑤기 시작했다.
손목 아픈 아내를 위해 내가 대신 한참 저어 주어 풀쑤기를 끝냈다.
기다란 칼갈이로 쌍둥이표 식칼과 과도의 날을 세워 주었다.
점심을 먹고 후식까지 끝내자 김장 재료가 배달이 왔다.
깨끗하게 이중으로 비닐 포장한 절인 배추를 꺼내 광주리 대소쿠리에 그릇을 받혀 군인 줄세우듯 질서 정연하게 해 놓았다.
노란 배추속을 두어장 뜯어 먹어 보았다.
달면서 짜지 않게 잘 저려 진 것이 해남의 절인 배추는 과학이다.
예술이다.
고향 충청도 배추라고 주문하던 절인 배추와 이제 결별이다.
어정쩡하게 절여져 김치 맛이 감해졌다 했다.
비닐은 가위로 잘라 서너장은 식탁 위에 깔고 한장은 아내가 앞치마 대용으로 사용하고 버린다고 내 배에 묶어 주었다.
아내가 무를 씻는 동안 아내가 시키는 대로 대파 ,실파를 다듬어 놓고 깐마늘 꽁다리 밑둥을 과도로 잘라 내었다.
너무 크게 자른 다고 안사람은 타박이다.
버려야 마늘 두서너개 양이니 쉽게 하자고 아내를 구슬렸다.
아내는 다시마에 멸치를 넣어 육수를 만들고 나는 아내가 꺼내준 중국산 "Brown"믹서기로 생새우,마늘,무,생강,배를 갈았다.
효자가 따로 없다.
믹서기가 <효자>다.
옛날 부라운 믹서기에 비하면 단순한 기능에 씻기 좋게 잘만들어졌다.
식탁에 올려 놓은 양푼에 찹쌀 풀을 넣고 육수를 넣었다.
아내는 올 김치는 "싱겁게 해서 많이 집어 먹는 " 컨셉으로 잡았다.
너무 싱거우면 김치찌개는 어떻게 하냐고 묻자 나중에 끓일때 참치액으로 간을 맞추면 된다 한다.
한번 가볍게 간 생새우와 곱게 갈린 마늘 ,생강,무,배,고추가루를 넣고 잘 섞이도록 휘저었다.
아내는 양념에 꿀을 조금 넣고 작년에 만들어 두었던 청매실액을 가미했다.
마지막으로 멸치 액젓으로 전체적 양념의 간을 맞추었다.
팔힘이 드는 것은 내몫이다.
오른 팔이 아프지 않은 것을 보면 수술후 많이 나아진 덕분이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잠못자던 고통과 팔이 잘못 닿으면 으악소리 지르던 때가 일년전이다.
아내가 꺼내온 김장용 긴장잡을 끼고 우선 장갑을 깨끗이 씻었다.
아내의 재산 목록 중에 있는 일본제 "무생채 갈이"로 아내가 무생채를 끝냈다.
교회에서 비빔밥이나 불고기를 먹을 때 무조건 무생채는 안사람 담당이다.
맛솜씨의 비결에는 아내의 비장의 무기가 사실 한 몫한다 .
무생채,잘게 썬 갓,대파,실파 모두 넣고 잘 섞으니 배추속이 완성되었다.
아내는 김치속을 넣어 바르기 시작했고 나는 속을 퍼주고 김치 박스가 차면 옆을 깨끗이 닦아 뚜겅을 덮어 차곡 차곡 쌓아 두면 되었다.
무로 석박지 한통을 만든다고 양념속에 멸치액젓을 더 넣는 다.
무가 날거라 너무 싱거우면 안된다 한다.
총각김치엔 양념에다 발갛게 잘익은 대봉시를 넣어 담았다.
TV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잠시 아내에게 커피를 마시자 했다.
오늘 따라 내린 커피에 비해 달달한 일회용 커피가 맛있다.
옛날 땅속에 묻던 겨울 김치속에 들어간 쪼글 쪼글생태를 꺼내 먹던 어릴 때가 생각난다.
늦은 김장때 밖에서 찬 수도물에 배추를 절이고 맨손에 참기름을 묻혀 매운 고추가루를 비비시던 어머니 세대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 세대냐.
김치 담는 것도 귀찮으면 사먹으면 되지 않는가.
자기의 입맛만 적당히 타협하면 집에서 만드는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시대다.
김치통을 김치 냉장고에 차곡 차곡 넣었다.
처음 3박스,30키로 담는다는 것을 아들과 이번에 결혼한 딸과 사위가 있어 한박스,10키로를 추가 했다.
결혼의 진정한 독립을 감안 아이들에게 김치나 퍼 나르고 반찬 만들어 나르면 안된다는 평상시의 지론이 무색해졌다 .
키가 큰 사위가 보나마나 한입에 털어 넣으면 김치가 남아 나지 않을 것 같다.
인류가 제일 살기에 편리한 키는 153센티 미터라고 연구가들이 밝힌 적이 있는데 다들 큰 키만 좋아 한다.
어쩌다 보니 크지 않은 우리부부 에 비해 며느리는 170이 넘고 사위는 182센티니 우선 보기에 종자 개량의 전초전에서 성공적이다.
은행에 다니는 딸이 한가한 틈을 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사위에게서 문자 메세지가 왔다.
"장모님,김장하시기 힘드실 텐데 제가 무거운 것도 들어 드리고 도와드려야 하는데..."
아내는 답장을 보냈다
"박서방,박서방이 맛있게 먹을 것을 생각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네"
모두 Lip service뿐이다
잠시 쉬는 사이 아내가 씩 웃으며 그사이 동치미 한통을 담구었다는 것이다.
저녁식탁엔 생새우를 넣은 시원하고 칼칼한 무국과 자연산 굴을 넣은 배추 겉저리 한접시가 전부였다.
군시절 대민봉사로 벼를 수확해주고 논 바닥 물덤벙에서 "새뱅이(민물 새우의 충청도 사투리)"를 잡아 얼큰하게 끓여 먹던 생각이 난다.
달랑 겉절이 한접시가 그렇게 풍성할 수 없다.
인간의 연상작용이란 묘한 것이어서 매형이 가평 다녀오는 길에 사왔다는 ' 잣 막걸리'가 냉장고에 있는 것이 생각났다.
술을 전혀 못하는 아내가 맛을 본다고 달려들었다.
내년에는 일손을 더 줄이기 위해 씻어 파는 알타리,다듬은 실파로 하자고 한다.
혹시 하여 타이레놀 한알씩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도우미 역할을 충실히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보며 담근 김장이라 이제 남자인 나도 혼자서도 담글 수 있겠다.
그 동안 김장을 해 놓은 아내가 대견하고 위대해 보였는데......
잊지 않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본다.
'살아온,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앞동산의 눈 (0) | 2010.01.06 |
---|---|
크리스마스 (0) | 2009.12.26 |
치과 의사의 결혼 부주 (0) | 2009.10.26 |
닭과 낙지 (0) | 2009.10.10 |
만화 "사랑해"와 유아용 자동차 시트 (0) | 2009.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