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실수

Jay.B.Lee 2009. 3. 17. 14:13

80년 초 였다.

78년경 그룹사 시험을 통해 입사한  S가   있었다.

경북 출신으로  차분하고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가끔 죽이 맞는 사람과 사석에서깊이 있는  유모어를 나눌줄도 아는  친구였다.

문제는 그의 유모어를 이해 할 줄아는 사람이 나를 포함  두서녀명 말고 별로 없어 그의 수준 높은 유모어를 이해하라고 밑의 직원을 욱박지르며 웃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S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가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어 타인과 어울려 일을 하기엔 조금 부담이 가는 그런 타입이었다.

홀로 하는 일엔 부족함이 없으나 업무 성격상 중앙부처와   외부 기관과 많은 접촉이 부서라 많은 업무는 조금 피하여 그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를 하도록 배려했다.

그는 기독교 신자로 일요일 주일 성수를 꼭 실천하고 있었다.

그 당시  교회에 다니고 있지 않은 나였지만  그를 ,그의 신앙을 이해하려 했다.

단지 바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일년에   한번가는 부서 야유회에   한번만 일요일  교회를 빠지고  참석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성가대에 있어서,이런 저런 일로 변명하며 주님께서 하루 용서하실수 도 있었건만 그는 애시당초부터 생활의,신앙의 우선 순위를 변경시킬 마음이 없었다.

평소 일요일 에 벌어지는 특근을 포함 일요일의 행사에는 그는 예외로 시켜줄만큼 윗사람들이 모두" 깨인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인가 내가 출장이었는지,교육연수로  며칠간 회사를 비운 사이 회식이 있어 참석한 S가 술에 취해 옆에 앉았던 여직원을  술집 접대부처럼 자꾸 끌어 안고 입도 맞추려하고 해서  여직원이 울고 불고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다.

부서내에서는  여직원 성희롱(당시엔 용어도 없었다 )을 철저히 묵계적으로 금지하고  있던터였다.

 모두가 "신사들"이라 여직원을 향해 이상한 농담을 한다던지 엉덩이를 친다던지하는  성희롱 조차 용납하지 않던 분위기였다.

또 당시 여직원들은 조신해서 회식자리에서도 맥주로 건배 정도만 했을 뿐 술을 할줄 몰랐다.(20여년이 흐른 뒤에는 학교에서 기본으로 소주부터 배우고 오는 모양이었다)

남자직원들도 여직원들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여직원이 직장 상사나 동료에게 술따르는 일은 상상할 수없었다.

부서 신입시절부터 교육을 받아 여직원들은 술집 여자가 아닌이상 동료인 남자 직원에게조차 술따르는 것은 금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S가 일으킨 사건은  작은 충격이었다.

지금 같으면 노조에 보고하고 노조에서  걸고 넘어지겠지만 평상시와 너무 다르게 행동한 S의 행동은 술로 인한 실수로 인정되어 누구도 그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자신의 실수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S였다. 

자신의 평상시 쌓아온 이미지는 흐트러지고 자신의 신앙인으로의 자세도 흔들려 버린 것이다.

그의 경건함도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술과 동물적 정욕으로 사탄의 유혹앞에 무너져버린 그의  신앙이었다.

주님은 몇번이고 용서하겠지만 자신이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후 그는 승진하며 혼자 일하기 좋은 기획부서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우리만큼 이해심 많은 상사가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 담당 이사와 대판 싸우고 봉급장이로는 너무 일찍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후 S의 소식을 정확히 아는이가  없었는데  프리렌서 영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는 소문을 풍문으로만 들었다.

살아오며 한번의 실수로 명예를 잃고 돌이킬수 없는 길로 가거나 인간 관계들이 절연되는 등 얼마나 많았던가.

알면서 지은 죄,모르고 저지른 죄,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며 지은  모든 죄악들까지 함께 용서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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