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1989 캐나다 토론토 Cresview Public School (Grade 6th)수료 사진.
빽빽하게 주차한 차량 사이로 아파트 단지내를 조심 조심 돌아다니는 마이크로 버스중에 가장 눈에 많이 보이는 차가 영어 학원차다.
과거와 비교하면 어릴때 부터 영어를 저렇게 배울 수 있어 우리나라 장래를 위해 좋은 일이다.
후일 실제 영어를 사용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되던 간에 부존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고 말은 중요한 수단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외국을 여행을 하다보면 점점더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고있는 것을 실감한다.
인터넷 사용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영어를 더 가깝게 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행길에 만나는 한국 젊은이들이 영어를 곧잘 하는 하는 것을 보면서 어학연수,해외유학의 효과가 확실히 나타나고 있어 긍정적인 사실로 보인다.
영어를 배우는 나이가 언제가 가장 적당할까?
아들이 초등학교에 가자 태권도 도장에 가고 싶어 했다.
나는 좀더 기다려 태권도를 배울만한 힘이 생겼을 때를 기다리라고 했다.
초등학교 3년말에 태권도 도장에 보내기 시작했다.
탁아소,유치원에서 놀아야 할 꼬마들이 태권도를 배우는 것은 부모의 조급한 마음이지 효율적인 교육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청년시절 태권도 검정 벨트를 따고 조교노릇도 하며 수련생들을 지도해본 경험이 있어서다.
1988년 ,내가 해외로 발령을 받아 혼자 떠난후 5-6개월뒤 합류하게 될 가족들은 영어를 배워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생에게 겨우 영어의 알파벳정도를 한달 익히고 캐나다에 도착한 아이들.
거주지는 토론토에서 학군이 제일 좋다는 North York( 시)을 택했다.
마치 강남구 송파구 같은 곳으로 다른 곳에 비해 그곳 초등학교 에는 ESL( English Second Language)선생님들이 있어서였다.
재정이 빈약한시는 ESL선생님이 두학교에 한곳 정도 있어 학군과 직장을 고려 거주지를 택해야 했다.
영어(국어)시간외 다른 과목 한시간 ESL선생님에게 아이들은 별도로 영어 교육을 받았다.
한시간 동안 나비를 그리고 가위로 오리고 Butterfly에 관해 배우고 단어를 외우는 그런 교육이었다.
어느 천년에 영어를 배우며,아이들이 잘 따라 가는지 상담시간 궁금해 하는 나에게 ESL선생님은 몇년뒤에는 아버지 보다 영어를 잘하게 될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에 안심할수 없어 영어 과외를 시키기로 하고 소개 받은 학생들이 UT(University of Toronto)에 다니는 한국인 남매였다.
John과 Ann이다.
아버지는 우연히 동향인 청주분으로 공무원 생활하다 이민 온 분이었다.
자녀들은 한두살때 이민와 인사정도외는 한국어를 거의 못했다.
(부모들이 컨비니언스 스토어에서 밤낮없이 일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으면 그렇게 된다)
일요일 마다 20분 걸려 그네들의 집인 다운 타운에 가서 두시간씩 배웠는데 지루하지 않기 위해 한시간씩 남매가 번갈아 가르쳤다.
Ann은 영문학과에 재학중이어서 더 적격이었다.
아침 두시간 동안 나는 혼자 책을 읽거나 소파에 앉아 졸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와 30분을 쉬고 고속도로를 달려 모두 교회로 가는 것이 일요일의 일과였다.
골프를 덜 치는 한이 있어도 영어 교육을 소홀히 할수 없었다.
영어를 배운지 2년 2개월, 남매가 이제 영어를 그만 배워도 충분하다고 통보해 왔다.
그네말로는 우리 아이들들 같이 끈질기게 오래 영어를 배운 아이들이 없다고 했다.
보통 1년 정도면 말도 하고 쓰고 하니까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곳에 산지 한 4년이 지나자 그래도 아들 영어에는 한국어의 억양이 약간 남아 있는 듯 보였고 딸아이는 학교에서 Candian Born으로 취급받았다.
딸아이가 언어적 재능이 강한점도 있지만 3학년말,5학년 말에 영어를 시작했다는 차이를 들수 있다.
우리말을 맞춤법에 어긋나지 않게 잘 쓰고 기본적 언어적 사고가 형성된 시기가 영어를 가장 효과적으로 배울수 있는 때가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외국에서도 글로써 한국어를 배운 아이들은 잘 잊지 않는다.
말만 배운 어린 나이에는 한국어는 금방 잊게 된다.
중학교 ,고등학교때 영어를 배우는 것은 좀 늦은 감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일찍 시작한다고 한참 놀아야 할 어린아이들을 수십만원의 학원비를 들여 학원에 보낸다.
학원서 돌아와 영어 몇마디에 꼬부라진 발음을 곧잘하는 자녀를 보며 환호하며 본인의 한을 푸는 부모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태권도도 적정한 나이에 배우는 것이 체력과 맞물려 효율적인 시기가 있듯 외국어 자체도 그러리라 믿는다.
안 사람도 학교에서 성인을 위한 ESL코스를 4년 반 다녔다.
알아듣기는 잘하면서 발음이 딱딱해지고 말을 유창하게 못하는 것은 브라질, 특히 홍콩에서 이민온 아줌마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탓이다.
아내의 영어에 캔토니쉬(광동어)의 억양이 가끔 튀어 나왔다.
아들은 귀국하여 고교1학년에 들어갔고 딸은 중2로 들어 갔다.
나를 따라 해외에서 학교를 다녔으니까 자연스러운 이름으로 "조기 유학"을 하고 온셈이었다.
아들은 국제 대학원을 마치고 교환학생으로 파리 유학뒤 외국 회사에 입사 서울,말레지아를 거쳐 시카고에서 미국인들과 일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아들은 영어를 통해 취업의 기회가 많았고 넓은 세상을 많이 돌아다녔다.
딸은 우수한 영어 성적에도 불구, 입사를 위한 도움외 현재로는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 안타깝다.
이제 싫던 좋던 세상은 점점 더 좁아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국제화,세계화를 부르짖은지도 오래며 우리나라의 단일 민족 사회도 깨진지 오래다.
현재 미국,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필립핀,말레이지아,싱가포르,인도등에는 영어를 배우는 수 많은 아이들이 있다.
또 고생하는 부모들이 있다.
과거의 교육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주입식 ,집단적 교육이 우리 나라 발전을이룬 인재를 양성한 것처럼 걱정되는 부분이 낭비적 사교육비이긴 하지만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영어에 대한 광풍도 미래를 위해서는 매우 긍적적이다.
이제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외국 문화에 대한 경외감-이런 것들이 다음세대부터는 없어지고 영어로 무장한 그네들이 국제 사회에 당당히 서리라 믿기 때문이다.
1991-1992 Grade 9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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