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이별 그리고 안락사 준비

Jay.B.Lee 2009. 3. 10. 23:49

 

 

 

 

사진:두이와 딸(1996년경)

 

우리집 개는 숫컷으로 이름은 "듀이"다.

원래 강아지때 하도 눈이 초롱초롱하고 예뻐 딸이 이슬같다고 영어 이슬(Dew)에서 이름을 따와 듀이가 되었고 부르기 좋게 "두이"가 되었다.

두이가 우리집 식구가 된것은 94년 1월이니까 이제 16살이 된셈이다.

족히 사람나이로 팔십은 되었다.

욕셔 테리어종으로  몸집이 좀 큰 편에 속한다.

두이가 우리집 식구가 된것은 93년 가족들이 해외에서 귀국하였을 때 안사람은 그리운 우리나라로 왔으면서도 생활 환경의 변화로 우울해 했다.

교회도  전에 다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겼을 뿐 친구도 이웃도 모두가 그대로인데 외국생활에 적응하던 때의 긴장감이 없어설까.

아이들도 아파트 단지에서 가까운 학교에 다녀 해외처럼차로 데려다 주고 데려오던 일도 없어져 하는 일이 많이 줄었었다.

나도 한국에 돌아온 뒤 직장 분위기에 휩싸여 외국처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 없었다.

아내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나는 안사람에게 강아지를 키우길 권했고 마침 지인으로 부터 강아지를 얻어 왔다.

강아지가 오면서강아지의 재롱으로 집안이 밝아졌고 강아지 뒤치닥거리에  아내의 표정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우리집 식구로 자리 잡자   집안의 서열상 두이로 인해 내가 마지막이 되었다.

그 서열이란 아내의 관심도를 기준한 것이다.

아들.딸,두이 ,나 의 순서다.

처가 식구들은 자식사랑들이 지나쳐 아내가 내가 마음에 안들어도 아이들 때문에 집나갈 염려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분양된 강아지의 엄마를 포함 이제 두이의 윗대나 아랫대나 모두 죽고 두이만 살아 있다.

처음 집에 데려 왔을강아지때부터 별도의 훈련없이 화장실에서 오줌, 똥을 알아서 잘 가렸다.

 세탁소아저씨와 슈퍼마켓 배달아저씨가 오면 짖어대고 손님이 오면 꼬리를  흔드는 등우리의 손님에게 예의를 잘 지켰다.

그리고 애견 센터 아저씨가 털깍으러 데리러  오면 쥐죽은 듯 행동하는 아주 인간을 차별하는 녀석이었다.

손님이  오는 날이면 집안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혹 구역예배로 교회식구들이 모일 때도 방해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사람 먹는 것을 즐겨 먹다보니 식성이 나를 닮아갔다.

면류-국수,라면,자장면을 즐겨 먹고 토마토,사과,배,오린지,귤,감을 잘먹었다.

 딸기와 포도는 단것은 잘 먹고 조금 신것은 그냥 뱉어버리곤 했다.

 야채로는 삶은 양배추를 고기만큼 좋아해 양배추쌈을 먹을 때는 두이도  양배추 쌈으로 포식했다.

일회용 커피를 또 좋아 했다.

두이가 자라면서 알게 된 것은  자폐증 증상이 조금 보인다는  것이었다.

산책길에 개를 만나면 큰개든지 저보다 작은 개든지  눈을 마주치지 않고고개를 외면했다. 

고양이를 봐도 무서운 것 없이 고개를 돌려 그저 안보면 그만이었다.

옛날 시골길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는 쳐다 보지 않고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린채 길을 막 건너던 아주머니 같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반갑게 매달리는  법도 없었다.

식구중에는 아들을 제일 좋아 했다. 아들은 한번 안아주지 않고 간식을 준적이 없어도 아들만 오면 그렇게 반가워했다.

 아마 제일 괴롭히지 않으니까그런것 같았다.

목욕시키고 병원 데려가고 약먹이고 먹을 것을 주어도 나는 그저 괴롭히는 사람 정도로 간주되는 듯했다.

늘 엄마를 찾고 안보이면 딸방이나  안방에 들어가 두발로 서서 혹시 침대에 자고 있나 둘러보고 확인이 되면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두이가 나일 먹으며 이제는 청력을 거의 잃었고 시력도 95%정도 상실했다.

더 불쌍한 것은  후각조차 잃어 코 앞에 음식을 주어도 냄새를 못맡는다.

몸에는 검버섯이 전신을 뒤덮었고,피부엔 혹이 많아 혹뿌리 영감이 되었다.

썩은 이를 하나 뽑아준 뒤에도 입에서 냄새가 나고 귀에서도 조금씩  진물이 흘러 자주 약물로 닦아주어도 냄새가 난다.

눈 각막은 건조증으로 매일 안약을 넣어주고  눈곱을 닦아 주어야 한다.

아직 다행이라면 식욕은 비교적 좋은 편이고  변도 좋다는 것이다.

오줌은 아직도 잘가리나  똥은 화장실 앞 거실 마루에 싸놓기가 일쑤다.

누나네집에도 개를 키우고 있는데 부잣집개의 호사를 철저히 누리고 있다.

매일  철저한 산책,조금만 이상있으면 병원이요 개전용으로 따로 고기를 삶아주고 사람 먹던것을 나누어 주는 우리와 다르다.

조카가 결혼 하면서  가족사진 촬영시  누나네 개는 검정 턱시도를 맞춰입고  사진까지 찍었다.

누나네 개를 보고 올 때마다 우리집개 두이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옷은 맞추어 주기는 커녕 제대로된 옷도 사주지도 않고 얻어다 입히거나 그랬다.

사랑만은 그런데로 주었는데 개가 알기나 할까.

 누나네 개는  자기가 사람인양 조카를 제일 경쟁자로 알고 안방에서도 내좇으려 열심이다. 

그런점을 보면 우리두이가 더 낫지 않나 싶다.

우리집 두이는 자기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며칠전 외국에서 온 길고 단단한 작은 포장 박스를 발견 주어다가 집에 보관해 두었다.

두이를 넣어 보니 꼭 맞는다.

관으로 쓰면 꼭 알맞는 상자였다.

이불집에 흰무명을 판다고 하니 얼마후엔 구입해둘 예정이다.

박스를 쌀 보자기도 구해 두었다.

어느 날 딸이 밤늦게 들어온날 두눈이 갑자기 벌겋게 달아오르더라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잠든 시간 거실에 두이가 잠자던 자리에  보이지 않고 깔고 자던 모포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두이가 그날 불켜놓은 자기방에 모포를 뒤집어 쓰고 기어가 그곳에 누워 자던 것을 모르고 내가 안락사시킨줄 알고 기겁을 한 것이다.

동물 병원에 안락사 방법을 이미 물어 놓았다.

두이의 상태를 설명하자 때가 오면 데려오라고 했다.

맡긴 사람들이 다음 날 울며 불며 다시 올까봐 죽이지 않고 하루 이틀 둔다는데가 동물 병원이라는데 그런일이 없도록 신중을 기할것이다.

화장을 맡기면 동물병원에서 대행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직접 화장장에 가져 가고 싶다.

서울 주변에 동물 화장장으로 허가 받은 네곳중에 제일 가까운 곳이 경기도 광주다.

365일 오픈, 아침 9시30분부터 저녁 7시 까지 영업하고 일반 개별 화장은 약 20만원,장례식,염습을 포함한 개별 납골당까지 해서는 70만원이다.

조문객을 받기도 하는데 개를 키우던 사람의 친지로 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친구 부부를 초청할수 있겠다.

미국에 두아들을 보내고 시추 잡종  두마리(아비와 아들)를 자식처럼 키우는 친구 부부다.

아비개가 죽으면 화장을 한뒤 구슬이 나오면 목거리를 만들어 차겠다는 특별한 친구다.

복제까지 할수 있다면 좋겠다더니 씨를 받아간 집에서 강아지가 태어나자 아비와 똑같은 강아지를 얻어와 복제의 소원은 푼셈이다.

화장을 한뒤에는 위법이지만 아파트 앞 두이와 함께 오르던 작은 동산에 뿌려줄 계획이다.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이 되어도 단지내의 두 동산은  영구 보존 된다.

안락사를 결정못해 개에게 고생만 시켰다고 남을 나무랬던했던 내가 이제 입장이 바뀌고 말았다.

때가 오면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안사람을 처가로 보낸날,그날이 금요일이었으면 좋겠다.

워낙 눈물 많은 딸이 퉁퉁 부은 눈으로 다음 날 출근하길 바라지 않아서다.

우리집 개 두이는 다행이다.

마지막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줄 내가 있어서다.

이미 나에겐 가까운 사람들과 많은 이별을 하지 않았나.

우리에겐 또 다른 이별을 할 때가 오고 있다.

이르거나 조금 더 늦거나 .

안락사 하기전 안 사람 이 기도하듯 자다가 하늘 나라로 갔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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