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통증이 점점 심해져 우리나라에서 어깨에 관한한 제일 유명하다는 마디병원("뼈마디"에서 나온 말로 기억하기 좋고 짧은 기막힌 이름입니다)에서 MRI를 찍었습니다.
어깨뼈에서 힘줄(회전 근개)이 떨어져 수술이 가장 빠른 치료법이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밤에 두서너번씩 통증으로 잠이 깨어 잠못이루는 밤의 고통에서 빨리 헤어나고 싶어 망서림없이 가장 빠른 수술일자를 잡았습니다.
32번째 결혼 기념일이 수술날짜가 되었습니다.
수술실에 누워젊은 의사 선생님께 "늘 하시는 수술이어도 저에겐 처음이니 최선을 다해 주십시요"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마취로 인해 그뒤는 기억이 없습니다.
수술이 잘되었다는 의사의 얘기를 듣고 나사를 몇개나 박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통상 3개에서 5개를 박는다고 했습니다.
나의 경우엔 5개라 합니다.
수술후에는 오른쪽 어깨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을 "ㄴ"형태로 구부린후 견지하는 바구니만한 보조기구를 끌어 안고 3주간을 지내야 합니다.
잘 때도 끌어 안았다가,세웠다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수술후에도 간헐적으로 오는 통증도 있고.
팔이 불편하니 아주 오래전 다니던 직장에서일이 생각 납니다.
80년초 회사에서는 사옥을 짓느라 임시로 종로구에 몇개의 빌딩을 임차하여 근무하던 시절입니다.
회사가 점점 커지자 할수 없이 년초 그룹 신규 공채를 기다리다 못해 경력직 사원을 뽑았습니다.
그때 저희회사에 S가 3년 경력 사원으로 입사하여 저희과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K대를 나온 그는 열심히 일을 했고 성격도 유순하여 기존 직원들과도 잘 어울리며 근무를 했습니다.
어느날 회사 엘리베이터어에서 내린 할머니를 발견하고 제가 누구를 찾아 오셨냐고 물었습니다.
S를 찾아 오셨다기에 S사원을 불러 할머님이 찾아 오셨다고 얘기해주자 살짝 어두워지는 그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후에도 또 한번 찾아오신 것을 보았습니다.
서너달후 S는 결혼한다면서 혼인날짜와 장소를 직원들에게 알리고 청첩장도 돌렸습니다.
그리고 며칠후 갑자기 왼팔에 기브스를 하고 회사에 출근하여 시내 버스에서 떨어져 골절상을 입어 결혼식을 미루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1개월 반뒤 기브스를 푼 S는 새 청첩장을 주면서 과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다.
회사 근처 다방에 마주 앉아 그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난 5년간 교제한 여자가 있었고 유치원선생님으로 시간이 있을때 유치원도 종종 방문하여 일도 도와주고 해서 유치원 학부형들도 전부 결혼할 사이로 알고 있었다 했습니다.
이번에 결혼하는 여자는 유치원 선생이 아닌 에어로빅 강사라 했습니다.
당시 에어로빅이 막 붐을 이루던 시기입니다.
언제 만난 사람이냐는 질문에 5개월전에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 결혼 날짜 잡기전 3개월전입니다.
어떻게 결혼 소식을 알았는지 유치원 선생의 남자 형제들이 결혼식장에 와서 난동을 부려 결혼식을 망쳐 놓겠다는 정보를 듣고는 겁이나 결혼식을 연기해보려는 고육지책으로 멀쩡한 왼팔을 기브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 결혼하는 신부는 에어로빅 강사가 맞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조용히 치룬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신부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S의 마음을 사로잡은 섹시한 에어로빅 강사일 것으로 생각한 선입관과는 먼 지극히 평범한 신부였습니다.
무엇이 그가 갑자기 5년간 사귀던 여자를 걷어차고 에어로빅 강사에 빠져 결혼을 하게되었는지 묻지 않아 알수는 없었습니다.
충격으로 집에 들어누운 상심한 막내딸을 위해 S의 마음을 돌려 볼려고 사무실까지 몇번 찾아온 나이드신 어머니의 안타깝고 슬펐던 얼굴.
요즈음은 청첩장을 돌리고도 결혼을 깨는 일도 종종 발생하나 당시로서는 주간지에 나도 될 작은 사건이었습니다.
그후 S에게 보여지는 신뢰감의 결여 및 우유부단함은 직장동료들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왔는지 몇개월후 또 다른 직장을 구해 퇴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오른손이 불편하여 왼손으로 키보드를 만져도 이제 큰 불편이 없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밥먹을 때는 좀 흘려가며 먹을만 합니다.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 화촉을 밝히는 혼인식에는 팔을 푼뒤에 참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수술로인해 저 자신에게는 장애자들의 불편과 고통을 이해하며 타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 볼수 있는 귀중한 경험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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