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첫번째 터키 여행(2008)

에페스(Efes)에서 만난 노처녀

Jay.B.Lee 2008. 7. 29. 19:09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에페스 무료 픽업 버스를 이용하느니  오후 에페소를 가기로 했다.

셀축 오토가르에서 20여분 걸리는 곳이다.

오후면 단체 관광객이 많지 않을 것이고 사진 찍기가 아주 좋은 시간이다.

"돌무쉬"에서 내리자 "돌무쉬" 안내원 아저씨가 마지막 차가 6시임을 강조 한다.

입구에 들어서자 석관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곳에 안내판이 3개 세워져있다.

하나는 한글로,하나는 영어로,하나는 터키어로 된것이다.

삼성에서 만들어 기증한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곳이라 그 하나 하나가 국력의 상징도 된다.

에페스를 돌아본후 6시에 맞추어 출구로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출구에서 작으마한 아가씨가 혼자 나오는데 한국 아가씨다.

늦게 도착하여 왠 잔다르마(군인)가 안내 해준다 하여 잠시 안내를 받았는데 으슥한 곳에서 그 잔다르 녀석이 키스좀 하면 안되겠냐고 해서 놀란 가슴으로 도망왔다고

아직도 진정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오늘 셀축에 도착 하루도 묵지않고 밤버스로 이스탄불로 가야한다고 했다.

어차피 혼자 먹어야 할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버스표를 사기위해 오토가르에 함께 갔다.

메트로 (Metro)버스 대리점 을 피하고 "카밀코치"표를 사라고 권해주자 옆의 메트로 뚱땡이는 몹시 언잖은 모양이다.

터키 카페 정보란 불랙리스트에 오르지 말일이지.

앞의 입간판에 한글로 '저는 전직 경찰이었습니다.어쩌구 저쩌구...."

그 자체가 불신을  낳는 줄을 모르고 있다.

한국이 얼마나 정보가 빨리 돌아다니는 세상인데.

저녁을 셀축에서 유명한 피데 집에서 함께 먹었는데 아가씨는 현재 은행원이다.

집이 부천으로 출발 직전까지 근무하고 간신히 휴가 여행을 왔다는 것이다.

아직도 휴가를 내려면 직장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의 현실이다.

얘기를 재미있게 하는  아가씨는 "제 나이가 이제 37살이 되었어요" 하는데  깜짝 놀랐다.

"오 마이 갓 "소리가 절로 나온다.

30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아서다.

노처녀의 짐을 찾기위해 왈라비스 호텔에 들어가자 로비엔 한국인으로 넘쳐난다.

이곳 저곳에서 우리말이 들린다. 모두 인사를 나누었다.

시린제에서 만났던 남자 회사원들도 이곳에 묵고 있고.

아가씨는 내가 저녁 먹으며 속이 좋지 않아 며칠 고생했었다는 내 얘기를 기억하고 여행 가방에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 왔다는 누렁지를 봉투를 꺼내어 주었다. 

자기는 이제 필요 없으니 끓여 먹으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터키에서 누렁지를 끓여 먹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어서   심심할 때마다 누렁지를 간식으로 입에 불려 먹었는데  여행중 간식으로 최고다.

좋은 것을 하나 배웠다.

아가씨의 버스 시간은 밤 9시반.

오토가르까지 함께 나가 배웅을 해주기로 했다.

이스탄불로 혼자 밤에 총총히 떠나는  아가씨.

짐을 오토가르까지  들어주고  도착한 버스를 확인,버스에   짐을 실어주고 마지막으로 떠나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혼자 떠나온 여행,그래서 누군가  손을 흔들어 줄 사람이 있었다면 여행중의 기쁨이 될 것이다.

잠시나마 혼자가 아니었다는 그런 시간이 .

내가 샹느울파를 떠나던 날,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던 한국인 형제들이 고맙지 않았던가.

떠나기전  이름을 말해주었는데  부영이라고 했다.

버스표 살때 이미 제시하던 여권을 보아 알고 있다고 했더니 활짝 웃었다. 

내 이름과 이멜주소는 나중에 스페인 갈때 물어보겠다고 그녀가 이미 메모해 갔다.

이제 성은 기억을 못하지만 부영씨,부디 좋은 짝 만나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카디안 거리 혹은 항구거리라고 부른다. 길이 500미터, 폭 11미터인 이 거리엔 양옆으로 ?과  갤러리들이 늘어서있었다고 한다.

멘테레스 강의 범람으로 쌓인 퇴적물로 항구의 기능이 상실되고 말라리아와 지진으로 도시민들은 이곳을 버리고 떠났다고 .

2000여년전 도시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극장으로 수용인원 25,000명.로마 그리스 스타일로 지어졌고 현재의 모습은 트라얀 황제때의 모습 그대로다.

사도 바울이 선교중 은 세공업자들에게 수난을 당한 곳이다(행19:24)

산 기슭에 자연 스럽게 만든 부채꼴 극장은 바다에서 부는 바람을 타고 소리가 잘 들리도록 설계되었다.

사진의 한무리의  관광객들은 한국인으로 관광객중 제일 어린  예쁘게 생긴 여고생을 노래를 시켰는데  작은 목소리로 부른 노래소리가 정말  잘들렸다.

 

 대리석 거리. 마차도 통행하였다고.

 2세기초 줄리어스 아퀼라가  로마제국의 소아시아 집정관이었던 아버지를 기려 지은 도서관 .

그의 아버지는 70세에 당시 수도였던 에페소에 부임, 이곳에서 죽었다.

현재도 모습도 아름다운데 당시의 건물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네여자의 동상이 훼손된채로 아직있다.

지혜.미덕,지성,지식을 상징한다.

 도서관 옆의 마제우스와 미트리다데스의 문.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해방 노예였던 그들이 감사 표시로 지어 헌납했다.

 1-3세기에 지어졌다는 시청사(Town Hall).

아르테미스의 조각상이 발견 된 곳이다.(박물관 소장)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 하셨슴이로다.(시편:78)

 오데온.

소극장으로 시 낭송,음악회,시의회가 열렸던 곳.지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50명 수용 가능한 공중화장실.

대리석 으로 오픈된 화장실 은 매우 깊고 앞에는 수로에 항상 물이 흘러 뒷처리 하기 위해서 였다한다.

당시도 현재처럼 공중화장실  사용료를 내고 들어 왔을까?

 하드리안 신전.황제 하드리안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현재 도서관 다음으로 남아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트라이언 샘.

트라이언 황제에게 헌납돤 건물로 중앙에 황제의 동상이 있었고 그의 발아래로 물이 흘러 작은 연못을 이루었다 한다.

 헤라크레스의 문으로 부르는 개선문.4세기 당시는 2층으로된 건축물.

아치위에 있던 6개의 기둥중 남은 2개 기둥이다.

 도미티안 신전.

황제 도미티안을 위해 만든 신전으로 AD 86-96년 사이에 세워진 신전.

이길을 지나는 사람은 신전앞에 참배를 해야 했고 기독교인을 구별하기 위해 길가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신전앞에서 참배를 드리게 했다.

사도 요한이 참배를 강요당했던 곳이다.

 멤니우스 기념비

1세기 아우구스티누스 황제 시절 지어진 것으로 로마 장군 술라를 기념하기 위해 손자 멤니우스가 건립.

요즈음은 할아버지 묘도 찾지 않는 손자들이 많은 시절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비록 본인의 권력을 과시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부자들의 주택가 골목길에 소녀가 걷고 있다. 그 옛날 이골목에 어떤 사람들이 오가며 놀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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